'카틀라', 무더운 여름밤 아이슬란드서 온 편지

2021.07.21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대체 이 작품은 뭘까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 호흡에 8개의 에피소드를 끝냈다. 아이슬란드어로 제작된 영화 아닌 드라마를 처음 보는 흥미로움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엔드 크레디트를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카틀라’라는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다.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를 통해 덧씌워진 아이슬란드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라는 것이다. 그 만큼 아이슬란드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물론 가보지 못한 필자조차도, 시규어 로스, 오브 몬스터즈 앤 멘, 뷔요크 등과 같은 뮤지션의 음악 때문이라도 꼭 한번은 밟아보고 싶은 땅이다. 그래서 할리우드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 아이슬란드는 빙하의 나라로써 굉장히 신비하고 희망적인 어떤 땅으로 그려진다.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시리즈 ‘카틀라 KATLA’는 과거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았던 그리 좋지 않은 시선으로 이해될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어떤 판타지적 이미지를 단박에 깨트려버린다. 카틀라는 실존하는 아이슬란드의 화산 이름이다. 필자도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2010년에 분출하여 많은 비행편에 영향을 주었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말이다. 이 당시 출장길 비행편이 막혀 굉장히 고생한 기억이 있다. 카틀라 역시 2016년 폭발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만큼 유명한 실제 화산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시리즈는 빙하 밑에 묻힌 화산이라 하여 빙저 화산이라 명명되는 카틀라의 폭발을 기반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화산재에 의해 비크라는 작품 속 마을은 폐허가 되고 필수적 인원만 그곳에 거주하게 된다. 등장 인문들에게는 서로의 사연이 다 있다. 한 여인은 실종된 언니 때문에, 한 남자는 20년 전 사랑했던 여인 때문에, 또 어떤 남자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 때문에, 어떤 부부는 사고로 잃은 아들에 대한 기억의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들 앞에 그들이 다시금 돌아온다. ‘카틀라’는 총 8개의 에피소드로 완결되는 일종의 미니 시리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굳이 시즌 2가 제작되어야만 될 명분을 찾지 못하기에 하는 추측이다.


아무튼 ‘카틀라’는 기억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자가 치유’되기 어려운 어떤 상처의 치유를 그려낸다. 언니의 실종으로 피폐해진 동생에게 언니가 돌아오고,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노인에게 아리따운 시절의 사랑이 회귀한다. 이렇게 ‘카틀라’ 속 카틀라 화산은 누군가 극복하려 해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기억을 인간과 동일한 모습에 담아 마을로 돌려보낸다. 그래서 시리즈 초반은 굉장히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동시에 대체 이들이 왜 돌아오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한 채 에피소드들이 진행된다. 혹자는 답답함에 시청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시청자는 아이슬란드 특유의 음울함 속에 푹 빠져 단숨에 전 에피소드를 섭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접근이 용이하게 풀어 말하자면, ‘카틀라’는 일종의 ‘체인질링’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체인질링은 기본적으로 납치한 아기 대신 약한 아이를 대신 놓고 간다는 요정 이야기다. 이것이 확장되어 때로는 악마로 그려지기도 하고, 게임이나 코믹스의 캐릭터로까지 범주를 넓히기도 한다. ‘카틀라’ 속 체인질링은 도플갱어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르게 말하면 섬세하고, 정서적이라고 할까? 동일한 기억을 가진 주체로서 타자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동일하다. 시리즈는 죽은 이의 부활, 현재 인물의 과거형, 현재의 현재형 등으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 복제물을 등장시킨다. 그래서 회를 거듭할수록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에 대한 모호성이 거듭 강조된다. ‘카틀라’를 시청하는 내내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물음표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 말인 즉, 꽤나 존재론적 사유를 지속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에피소드 중반부부터 ‘카틀라’는 구하고자 하는 답변에 대한 실마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어떤 장면은 충격적이고, 어떤 장면은 슬프기 이를 데 없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사연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 않던가. 그 사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어떤 것으로 묻어버리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카틀라’는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미스터리물이나 스릴러 장르의 가면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 SF적 탈을 착용하기도 하지만, ‘카틀라’가 종국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완벽하고 완전한 실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에의 확인이다. 여기에 아이슬란드에 대해 기술했던 판타지가 한 몫 더 거든다. ‘카틀라’의 아이슬란드는 눈부신 빙하에 의해 하얗게 채색되었던 판타지에 새까만 화산재를 끼얹어 굉장히 음울하고 스산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청하는 내내 ‘카틀라’의 아이슬란드는 회색빛이다. 이미지에 얹히는 사운드는 무겁기 이를 데 없다. 가장 근래 접했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에도 노미네이트되었던 영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의 극단적 반대편에 있는 게 바로 ‘카틀라’다. 이 작품 속에는 잘난 주인공도 없고, 히어로적 캐릭터도 없다. 모두가 하루 하루를 그냥 살아갈 따름이다. 대신 모두의 가슴 한 구석에는 풀어야 할 응어리들이 있다. 그걸 풀어주기 위해 돌아온 게 카틀라가 보낸 체인질링이지만, 그것이 굳이 시원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화산은 계속 그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고 과연 인간이 행복해질까? 나와 네가 동시에 공존하는 미칠 것 같은 답답함. ‘카틀라’는 이걸 공포스럽지 않게 굉장히 철학적으로 잘 풀어낸다. 무더운 여름 밤, 아이슬란드의 황량함으로 더위를 날리고픈 이라면 한번쯤 만나보길 바란다.

 



CREDIT 글 | 이주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