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서, 명장들을 매혹시킨 묘한 매력의 정체는

2021.07.1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제이와이이드컴퍼니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얼굴이었다. 화제리에 끝난 tvN 토일드라마 ‘마인’(극본 백미정, 연출 이나정)으로 인상적인 안방극장 데뷔식을 치른 배우 정이서는 ‘묘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한 ‘천생배우’감이었다. 언뜻 보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인상에 쉽게 눈길이 가지 않다가도 조금만 움직이고 말을 하면 뭔가 남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와 호기심을 솟아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런 알 듯 모를 듯한 매력이 극중에서 재벌집 도련님 한수혁(차학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필살기로 작용했다. 요즘 시대 상상도 못할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탄 ‘신데렐라’가 된 김유연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할 만큼 치명적이다. 


‘마인’은 재벌 효원그룹을 배경으로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복마전인 재벌가 사람들의 이면을 담은 드라마. 정이서는 극중에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재벌가 메이드로 취직한 김유연 역을 맡았다. 부모님의 빚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고초를 겪은 김유연은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결코 주눅 들지 않은 강단 있는 인물. 운명적으로 ‘효원가 왕자님’ 한수혁(차학연)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들면서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선사했다. '쎈 캐릭터'들의 전투 가운데 유일한 숨쉴 공간 역할을 했던 이들의 사랑은 후반부로 가면서 드라마가 주인공 서희수(이보영)와 정서현(김서형)의 서사에 중심을 두면서 비중이 줄어들어갔다. 드라마 종방 직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이서는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연과 수연이 사랑을 이뤄가는 에피소드들을 더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죠. 그러나 유연에게는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해도 만족해요. 후반부로 갈수록 대본이 너무 재미있게 나와 저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어요. 두 선배님들의 명연기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어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사히 촬영을 끝난 것만으로도 정말 만족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걸작 ‘기생충’에서 인상적인 신스틸러로 등극하고 몇몇 독립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안방극장에선 생짜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정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김유연 역할에 캐스팅됐다. 대본을 통해 처음 접한 재벌가 모습들은 매우 신기한 세상이었다. 극 초반 주집사(박성연)가 한수혁을 ‘도련님’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을 때 유연이 폭소를 터뜨리는 심경이 이해됐을 정도.


사진제공=tvN


“캐스팅되기 전에는 메이드 일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 유연이 어떻게 메이드 일을 받아들였을까 궁금했는데 작가님에게 이야기 들으니 재벌집에서 메이드 일을 하면 한 달에 400만~500만원 정도 번다고 해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는 보수가 높더라고요. 유연에게는 그냥 꿀 알바로만 받아들여졌을 거예요. 그러니 눈치 보거나 주눅이 들 이유가 없이 당당히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문화에 익숙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실제 저도 처음에 ‘도련님’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너무 생소해서 민망하더라고요. 요즘 누구도 잘 쓰지 않는 단어잖아요. 유연이 웃음이 나온 게 이해가 갔어요.”


유연과 수혁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사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현실세계에선 이루어지기 힘든 설정. 불면증이라는 공통된 애로사항 때문에 방을 바꿔 자면서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된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경은 달라도 서로가 ‘거울 속의 나’란 사실을 깨달아가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어찌 보면  사회적 약자만 상처를 받을 게 뻔한 상황. 그러나 산전수전 공중전을 이미 겪은 유연의 당찬 성품이 ‘온실 속의 화초’ 같던 수혁을 성장시켜 ‘진짜 왕자님’으로 만들어주고 두 사람의 관계를 강하게 결속시킨다.


“저는 드라마 속에서 유연과 수현이 계단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어떤 운명적인 이끌림이 느껴지면서 두 사람의 서사가 시작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어요. 방을 바꿔 잔다는 건 굉장히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두 사람 내면의 아픔에 중점을 두면서 연기를 했어요. 유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은 가난의 굴레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고 수혁은 효원가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서로 색깔은 다르지만 삶의 무게 때문에 생긴 불면증에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이해했어요. 신분상승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는 건 알아요. 아무리 본인이 순수하다고 주장해도 그렇게 볼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해요. 저도 결말부에 신데렐라가 된 유연이 계속 행복할지 그 이후의 삶이 매우 궁금해요.(웃음) 촬영 전 수혁 역을 누가 연기할까 진짜 궁금했어요. 차학연 배우가 수혁 역에 캐스팅됐다고 들었을 때 기대감이 많이 들었어요. ‘아는 와이프’ 등 그분이 출연한 드라마들을 많이 봤거든요. 촬영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정말 많이 의지가 됐어요.”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마인’의 두 주인공 이보영과 김서형은 촬영장에서 정이서에게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산과 같은 존재였다. 평소 존경해온 두 배우의 연기를 지켜볼 수 있는 촬영장은 산 교육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대본을 한번 더 읽고 고민하며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두 선배님들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짜릿하고 재미있었어요.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었어요. 정말 내가 대본을 읽었을 때 상상치 못한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들을 보여주셨어요. 제가 진짜 좁은 시야로 연기를 하고 있었구나 자성을 할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김서형 선배님은 정말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세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빛이 나시죠. 이보영 선배님은 같은 소속사인데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많이 기다려주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정말 든든했어요.”


정이서는 최근 드라마와 영화 제작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유망주 중 하나. ‘마인’ 촬영 이전에 이미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과 이재규 감독의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촬영을 마쳤다.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내달린 그는 잠시 쉴 법도 한데 아직 배가 고프단다. 작품을 할수록 연기가 더 재미있어지기 때문이다. 봉준호에 이어 박찬욱, 이재규 감독까지. 명감독들의 선택을 받는 본인의 매력이 뭔지 묻자 정이서는 쑥스러운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주위에서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 매력이 뭔지 제가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제까지 매 작품 아주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헤어질 결심’에서는 아주 보이시한 형사 역할을 연기했어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고등학생을 연기해요. ‘마인’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예정이니 못 알아보실 수도 있어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차기작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열심히 찾아봐야죠. 아직 안해본 역할들이 더 많으니 도전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퀸즈갬빗’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그 작품처럼 굵직한 여성 서사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



CREDIT 글 | 최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