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마르지 않는 이야기 항아리 든 재담꾼

2021.07.15 페이스북 트위터

장항준, 사진제공=SBS


최근 농담처럼 연예계에 떠다니는 ‘대한민국의 3대 남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수 장윤정의 남편인 방송인 도경완, 가수 이효리의 남편인 음악인 이상순 그리고 드라마 작가 김은희의 남편 영화감독 장항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내의 입지와 유명세가 너무나 커 그 반사이익을 보면서 편하게 살아간다고 일컬어지는 이들이다. 장항준 감독은 실제로 직접 이 ‘3대 남편’을 토크에서 소개했다. 이들의 입지는 농담처럼 마냥 편하지는 않다. 현재 모두 방송가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이가 바로 장항준 감독이다.

요즘 TV를 자주 보는 10대라면 장항준의 모습에 다소 혼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가수도 아닌 것 같고. 개그맨이라고 보기에는 또 무게가 있는 것 같고. 그가 1996년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작가로 데뷔하고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통해 연출에 데뷔했으며 2011년 SBS 드라마 ‘싸인’을 통해 드라마 연출에도 데뷔한 연출자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까지 대한민국 방송가는 수많은 연출자, 작가출신 출연자들을 배출했지만 이 안에서도 장항준은 가장 이질적이다.

영화감독이라는 이미지는 보통 굉장히 학구적이고 편집증적이다.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굉장히 부스스한 머리에 까탈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고 뭔가 빈틈이 없는 언변을 구사할 것 같다. 하지만 장항준은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굉장히 수다스럽고 허술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 아내가 있고 아내의 덕에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하지만 거기에 별로 조급증이나 열등감은 비치지 않는다. 그는 어느 자리에 앉아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며 마주 앉은 상대들의 눈을 빛나게 하는 말솜씨가 있고, 실제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온 삶의 행보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운 형태의 예능인, ‘디렉테이너(디렉터+엔터테이너)’의 탄생이다. 장항준은 ‘아는 형님’ ‘무한도전’ 등에 패널로 나가 감독이 아닌 순수한 패널로서 방송분량을 뺄 수 있는 예능인이며 다양한 영화관련 프로그램을 수다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능력도 있다. 최근에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인정받아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스토리텔러 그리고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영화감독인데 예능에서 옆사람이 웃기는데 긴장을 하고, 악평이라도 스스로가 거론되는 일을 좋아한다. 대중들은 조금씩 장항준이 재잘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장항준의 걸어온 길을 보면 오히려 최근 모습이 영화감독이라는 거창한 이미지보다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지 못하는 공부로 서울예전 연극과에 들어가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방송국 막내작가로 일하면서 SBS 초창기 예능 ‘좋은 친구들’ 등에서도 활약했다. 그 당시 예능작가 후배로 들어왔던 김은희 작가와 결혼했고 곤궁한 시절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장항준, 사진출처=스타뉴스DB


그가 연출했던 작품들도 보면 보통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패배자 또는 열외자의 낙인이 찍혀버린 이들의 일탈을 다룬다. 그 일탈도 사회문제와 연결되는 정도까지의 심각함도 아니고 코믹함에 잘 버무려지는 정도다. 장항준은 딱 그 정도의 정서로, 그 정도의 규모를 갖고 계속 이야기를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점점 그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해갔다. 남자에게 마초, 상남자, 꼰대 등의 이미지는 시대착오적인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오히려 공감을 포함한 폭넓은 교감, 스스로의 성공이나 입지를 과시하지 않는 털털한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자존감 등은 지금 시대가 원하는 남성상으로서의 장항준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진 최근의 예능 판도 역시 장항준의 시장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는 분명 연출도 하고 있지만 정말 매체를 가리지 않고 뛰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이야기는 카메라를 보고 하는 일방향적인 모양보다는 앞에 상대를 앉혀놓고 시시때때로 그 감탄하는 리액션을 같이 따다주는 토크형태에 알맞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에서도 개그우먼 장도연이나 방송인 장성규와 함께 나오지만 연출자 특유의 세심한 묘사로 당시 이야기의 생생함을 전달해주고,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에서도 막상 범죄 전문가 아니지만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해오면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디렉테이너’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였지만 막상 장항준에게는 감독도, 예능인도 아닌 그 경계를 사뿐히 딛고 오르는 이야기꾼의 경지가 더욱 어울릴 것 같다. 이 이야기가 정제된 촬영과 편집을 통해 가공되면 영화나 이야기가 되고 상대를 앉혀놓고 직접 전해주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면 방송이 된다. 그의 이야기, 수다는 끊이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수많은 지인과 절친들과 함께 와인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그의 모습은 때로 요즘처럼 활발하게 대중에게 선보일 수도 있고, 연출에 집중할 때면 두문불출, 안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중의 눈과 귀에 가닿는다. 너무나 물 같아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우리는 장항준이 풀어놓는 이야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