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가 소환한 김정민의 록발라드, 응답받을까?

2021.06.14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MBC


MSG워너비 프로젝트를 시작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이 한동안 잊혔던 장르를 깨웠다. 1020 세대에게는 가수보다 배우로 더 익숙한 김정민을 통해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록발라드 시대를 건드렸다. 


록발라드는 숱한 남성들에게 추억이자 로망이다. 천정을 뚫을 듯한 고음과 절절한 멜로디로 무장한 록발라드 넘버는 그들의 ‘노래방 18번’이었다. "소싯적 록발라드로 여성들 깨나 울렸다"는 남성들도 적잖다. 그 당시, 우리는 록발라드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라면 록발라드!


‘놀면 뭐하니?’를 진행하는 방송인 유재석은 "지미유에게 엄정화가 있다면 유야호에게는 김정민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 시대를 관통한 적잖은 남성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한 마디다. 

허스키 보이스를 앞세운 김정민은 25세 데뷔 후 ‘슬픈 언약식’, ‘마지막 약속’, ‘무한지애’, ‘붐붐붐’, ‘마지막 사랑’ 등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당대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섰다. 스스로도 "길거리를 지나가면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기획사에서 돈을 많이 벌었고, 저는 정해진 돈만 벌었다. 다행히 그 돈으로 부모님과 살 수 있는 집을 샀다"고 밝힌 바 있다.

‘슬픈 언약식’의 정규 집계된 판매량만 98만 장이다. 당시 ‘길보드 차트’라는 해적판 카세트 테이프가 대거 팔려 나간 것을 고려하면 100만 장을 훌쩍 넘겼다는 의미다. 지금은 몇몇 글로벌 팬덤을 갖춘 아이돌 가수들에게만 허락된 수치다.

사진제공=MBC



엄밀히 말해, ‘록발라드’라는 정식 장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록을 좀 더 부드러운 스타일로 부르거나, 파워 발라드의 한 갈래라 보는 것이 옳다. 1970∼80년대만 해도 백두산, 시나위, 부활 등 국내 록그룹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방송사의 영향력이 커지며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로커들이 보다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록발라드가 대세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부활의 ‘사랑할수록’(1994)과 신성우의 ‘서시’(1994),김정민의 ‘슬픈언약식’(1995)이 그 포문을 연 후 다양한 록발라드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재훈은 ‘널 보낸 후’과 ‘비의 랩소디’를 김경호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금지된 사랑’을 불러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들 모두 로커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슬프도록 아름다운’의 K2, ‘이미 슬픈 사랑’의 야다, ‘Endless’의 플라워, ‘Don’t cry’의 더 크로스, ‘You’의 김상민 등이 쏟아져나왔다. 

록발라드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고음’이다. 언급된 가수 모두 고음을 소화하는 능력을 따졌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들이다. 폐부를 찌르는 고음으로 애절한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부분이 백미였다. 록그룹 스틸하트의 ‘She’s gone’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한국 남성들에게 록발라드는 요즘 세대의 힙합과 랩가사와 같은 시대적 상징성을 띤 장르였다.
 
#록발라드의 흥망성쇠

그 시절, 왜 록발라드가 인기를 끌었을까? 이는 기본적으로 발라드 장르를 좋아하는 한국 대중의 정서와 관계가 있다. 한국에 여러 록그룹이 있지만 이 중 하드록을 주무기로 삼으며 대중적 지지를 받는 그룹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의 수요층이 얇기 때문이다. 결국 이지 리스링(easy-listening) 계열의 노래를 즐기는 대중 영합 차원에서 로커들도 록발라드로 전향했다는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박완규는 먼저 록발라드 장르로 거취를 옮긴 김경호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특히 그가 핑클의 ‘나우’를 리메이크해 부르며 춤을 춘 것에 대해 "로커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얼마 후 박완규 역시 김경호의 같은 길을 가게 됐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중 가수로서 대중이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비판받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사진제공=MBC


록발라드의 인기는 노래방 대중화와 궤를 함께 한다. 1990년대 초반 노래방 문화가 생기며 온 국민의 가수화(化)가 이뤄졌다. 대중은 듣는 노래와 보는 노래에 이어 이제는 ‘부르는 노래’를 선호하게 됐다. 특히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찬사를 이끌어 내는데 고음보다 좋은 무기는 없다. 쉬운 멜로디와 고음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춘 록발라드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록발라드는 언제부터 쇠퇴했을까? MGS워너비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놀면 뭐하니?’는 남성 보컬 그룹의 대명사인 SG워너비를 다시 소환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록발라드를 주류에서 밀어낸 주축이 바로 그들이다. 2000년대 초 등장한 SG워너비는 R&B를 기반으로 한 미디엄 템포, 소몰이 창법을 앞세웠다. 쉽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로 집중하며 고음보다는 솔(soul)에 집중했다. 이와 맞물며 록발라드의 대표주자였던 김경호가 성대결절로 활동을 중단하고 그 배턴을 이어받았던 그룹 버즈가 해체되는 등 주축 가수들이 이탈하며 록발라드의 인기 역시 시들어졌다.

최근에도 엠씨더맥스, 국카스텐 등 걸출한 보컬을 필두로 한 그룹들이 록발라드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가요계의 주류라 보기는 어렵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이미 가요계는 아이돌 위주로 재편됐다. 여기에 최근 2∼3년은 트로트가 강세였다. 가요계 스스로 트렌드를 창출하기보다는 ‘미스터트롯’ 시리즈를 통해 트로트가 주목받았던 특정 계기를 발판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사례가 늘었다"며 "록발라드 역시 MSG워너비 프로젝트와 함께 다시 한번 대중에게 각인될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