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타운', 어떻게 희생까지 사랑하겠어?

일탈을 꿈꾸는 기혼남녀의 로망 해소

2021.06.08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해방타운' 방송 캡처



유난히 고단한 날, 그 방을 찾아간다. 현실엔 없지만, 그 어딘가 있는 내 방.


일단 볕이 잘 드는 큰 창이 있고, 한편엔 책상이 있다. 그 뒤로 책이 가득 꼽힌 책장이 있다. 반대편엔 큰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책상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싶을 때 앉는 자리라면 그 테이블은 그림을 그리고, 차 마시고, 음악을 들을 때 앉는 자리다. 창가엔 잎이 큰 화분도 있다. 또 차가 종류별로 가득 든 서랍장도 있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한 찻잔과 찻주전자가 놓여 있다. 창 옆엔 언제나 원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제법 좋은 오디오도 있다.


어차피 상상이므로, 그 방은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하다. 어느 날엔 술이 종류별로 가득 든 술장고를 들였다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기 전 해 질 녘, 코끝과 피부를 간지럽히는 달싹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발코니도 생겨난다.


아이 셋을 키우는 내가 ‘내 방’을 갖겠다는 건 사치다. 남편과 함께 쓰는 안방이 있지만, 불쑥불쑥 나만의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그렇게 방 한 칸 정도만 허락된다 해도 황송할 텐데, ‘집’이라고?


JTBC에서 지난주 시작한 프로그램 ‘해방타운’ 얘기다. 기혼자들이 집을 떠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누려본다는 관찰 예능이다. 사실 그간 우린 너무 많은 이들을 관찰해 왔다. 혼자 사는 사람들, 아이 키우는 부모들, 부부들…. 그런데 또 관찰 예능이라니. 남 사는 것 보여주는 것 말고 방송에선 더는 할 게 없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냥 보아 넘길 수는 없는 ‘특정 층’이 있으니! 바로 나 같은 기혼자일 것이다.


사진출처='해방타운' 방송캡처


그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그 사람과 결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사랑에 씌어 우린 결혼이란 걸 한다. 아내와 남편이 되고, 며느리와 사위가 되고, 또 엄마와 아빠가 되는 동안 나에게선 점점 멀어진다.


부모가 되면 일단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나의 시간은 온전히 아이를 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부모가 되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숭고한 사랑 앞에 결코 입 밖에 내선 안 될 것만 같은 ‘희생’이란 단어를 마음에 품고, 시키지도 않은 자기반성과 자기 위안을 되풀이한다. ‘나도 쉬고 싶고, 자고 싶고, 먹고 싶은데, 그런데 나는 엄마니까, 아빠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


그렇게 ‘나는 엄마니까,’ 라고 끝없이 최면을 걸어도 통하지 않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딱 하루만,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잠시라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순간이 간절했다. 그때마다 나를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려놓지 못했구나 싶어 서글펐다. 그런 마음의 파란을 겪었고 여전히 진행중이기에 ‘해방타운’이 얼마나 반갑고 또 그 주인공들이 얼마나 부럽겠는가. 특히 같은 엄마이기에, 장윤정과 윤혜진의 감정에 고스란히 이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생기 넘치는 표정을 보며 함께 신나 한 것이 분명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낮잠을 자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친구를 만나는 소소한 일상이 그렇게 대단한 즐거움인지 솔로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면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잠자리에 드는 그들의 마음을 엄마가 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고급 오디오로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듣고 반해 온종일 그 노래를 듣지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선뜻 오디오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장윤정의 마음도….


사진제공=JTBC


이제 1회를 보았기에, 앞으로 주인공들이 어떤 ‘해방 라이프’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가족을 두고 떠나왔다는 것을 빼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은 기존 솔로들과 별 다를 바 없을 것이기에 차별점이 없다면 나 같은 시청자는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부디 대한민국 기혼들의 ‘해방’이라는 숙원 성취에 걸맞은 특별한 경험과 감동을 제대로 전달해 주기를.


그런 점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질 기혼남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고대하는 것은 기혼 남녀 누구나 같겠지만 그 풍경은 사뭇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 장윤정과 윤혜진은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서 벗어난 해방이지만, 허재와 이종혁의 해방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지만 비로소 간섭(?)에서 벗어난 독립의 성격이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서두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결혼이란 새장과 같다. 밖에 있는 새들은 필사적으로 새장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새장 안에 있는 새들은 한사코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M. 몽테뉴)


새장으로부터 해방을 맛본 새들은 다시 새장을 그리워할까. 개인적으론 부디 ‘떠나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됐다’는 상투적인 결론은 사양한다. 물론 내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이현주(칼럼니스트) 




CREDIT 글 | 이현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