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비교불가한 ‘SMCU의 시작'

2021.06.01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에스파 '넥스트 레벨' 뮤직비디오 캡처


‘메타버스(Metaverse,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세계)’

 

과거 게임 산업에서나 주로 사용되던 개념인 메타버스는 이제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가장 핫한 키워드로 각광받고 있다.


K팝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그룹 에스파(aespa, 카리나, 지젤, 윈터, 닝닝)는 가상의 아바타 ‘아이(ae)’가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데뷔 당시부터 각 멤버들에 대응하는 아바타를 함께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그 덕분에 ‘메타버스 걸그룹’으로 주목을 받은 에스파지만 데뷔 당시에는 여러 가지 우려도 있었다. 일단 에스파에 앞서 비슷한 콘텐츠를 보여준 K/DA와 비교하며 흉내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고, 누군가는 그 옛날 ‘사이버 가수 아담’을 소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려는 우려일 뿐, 알다시피 에스파는 데뷔부터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데뷔 싱글인 ‘블랙맘바(Black Mamba)’는 유튜브 1억5000만뷰(이하 5월 29일 기준)를 넘어섰고, 후속 싱글인 ‘포에버’(forever)는 약 4100만뷰를 기록 중이다.


가장 최근에 발매한 ‘넥스트 레벨’(Next Level)은 더 뜨겁다. 유튜브 공개 24시간 만에 4000만뷰를 넘어섰으며 발매 14일차인 현재는 약 8300만뷰를 기록 중이다. 각종 국내 음원차트에서도 대부분 일간 TOP3 안에 이름을 올리며 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자 그럼 누군가가 ‘에스파의 성공한 이유가 메타버스 때문인가?’라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한 대답은 ‘아직은 NO’다. 에스파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컨셉트를 시도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의 성공은 SM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의 명성과 각 멤버들이 지닌 신선함, 매력 등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와 에스파가 지금까지 ‘가상세계’와 관련하여 보여준 것이라곤 각 멤버의 아바타와 세계관의 일부 설정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메타버스’를 먼저 언급하고 주목한 이유는 그 가능성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현실세계와 연계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다양한 사례로 충분히 증명됐다. 즉, SM엔터테인먼트가 에스파를 앞세워 구축하려는 세계가 완성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출처=에스파 '넥스트 레벨' 뮤직비디오 캡처

 

SM엔터테인먼트가 SMCU(SM Culture Universe, SM의 모든 아티스트가 연결된 확장 세계)를 엔터테인먼트의 미래이자 자사의 비전으로 규정하고 그 세계관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에스파는 그것을 위한 첨병인 셈이다.


그렇다면 SM엔터테인먼트가 그리는 SMCU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SMCU가 완성이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에스파를 통해 공개된 몇몇 설정과 유사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는 해볼 수 있다.


일단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SMCU는 크게 세 가지 롤모델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SMCU’라는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이다. 2008년 MCU의 첫 작품인 ‘아이언맨1’이 나온 이래 MCU는 영화사상 가장 성공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MCU는 단순히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영화나 드라마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공유하는 세계 그 자체를 가리킨다. 즉, 원작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되 그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MCU의 특징이다.


SMCU 역시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에스파를 시작으로 기존의 다른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나간다는 계획이며, 그것을 연결하는 도구는 ‘CAWMAN’(카툰의 C, 애니메이션의 A, 웹툰의 W, 모션그래픽의 M, 아바타의 A, 노블의 N을 따서 만든 신장르 개념)이 될 전망이다.


두 번째는 고릴라즈(Gorillaz)다. 보컬 겸 키보디스트 2D와 기타리스트 누들, 베이시스트 머독, 드러머 러셀로 구성된 이 영국 밴드는 블러의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휴렛이 만들어낸 가공의 밴드다. 그리고 이들의 앞에는 늘 ‘전세계 가장 성공한 가공의 밴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렇다고 에스파나 SMCU가 직접적으로 고릴라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고릴라즈는 가공의 밴드를 어떻게 활용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는지 대한 일종의 표준을 제시해 두었기에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가공 밴드와 가수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출처=에스파 '넥스트 레벨' 뮤직비디오 캡처


일례로 고릴라즈의 멤버들은 모두 실제와 혼동될 만큼 정교한 배경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며, 또 현실의 인물과 만나거나 인터뷰도 진행하는 등 제 4의 벽(※주: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경계)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지금은 데이먼 알반이 직접 라이브를 하지만(※이마저도 밴드의 매니저인 데이먼 알반이 멤버들을 가둬 놓고 대신 공연을 하는 것이라는 설정이다.) 초창기에는 고릴라즈 멤버들만 영상으로 출연해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에스파 역시 아바타나 세계관의 설정 등에서 이 같은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릴라즈의 이와 같은 정교한 설정과 스토리,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아바타들의 활동 영역, 오프라인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방식들은 에스파와 SMCU에서도 재현될 확률이 높다.


세 번째는 역시나 K/DA다. K/DA는 글로벌 히트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캐릭터인 아리, 아칼리, 카이사, 이블린으로 구성된(※주: ‘MORE’에 참여한 세라핀은 객원 멤버이다.) K팝 걸그룹으로, 현실에서도 (여자)아이들의 미연(아리)과 소연(아칼리), 자이라 번스(카이사), 메디슨 비어(이블린) 등 각 멤버를 담당하는 가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아바타와 가수들은 단순히 설정이나 목소리를 담당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한 무대에서 함께 공연을 펼치기까지 했다.


리그오브레전드라는 인기 IP(지적재산권)와 K팝이 만들어낸 시너지는 엄청났다. 2018년 공개된 K/DA의 데뷔곡 ‘팝/스타스’(POP/STARS)는 유튜브에서 약 4억 4천만뷰를 기록하고 있으며, 2020년 공개된 EP 앨범 ‘올 아웃’(ALL OUT)의 타이틀곡 ‘모어’(MORE)는 약 9650만뷰를 기록 중이다. 현재까지 ‘메타버스’의 개념에 가장 정확하게 일치하고 큰 성공을 거둔 그룹이 바로 K/DA이다.


성공한 선례라는 건 후발주자에겐 양날의 검이다. 후발주자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비교도 피하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에스파 역시 K/DA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었고 일부 콘텐츠의 유사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에스파가 K/DA를 무작정 모방했다는 뜻은 아니다. 에스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클립 ‘Black Mamba’(블랙 맘바)를 공개하고,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나 뮤직비디오에 ‘떡밥’이라 불리는 복선을 깔아두는 등 K/DA와는 다른 방식으로 서서히 세계관을 넓혀 가고 있다. 결정적으로 K/DA가 리그오브레전드라는 인기 IP(지적재산권) 위에 K팝을 더해 탄생시킨 세계관이라면, 에스파는 반대로 자신들을 시작으로 SMCU라는 새로운 IP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의 차이가 있다.


닝닝(위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젤 윈터 카리나.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여기까지 종합해보면 SMCU는 ‘MCU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해 그 안에서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주역으로 활동하며, 또 이들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SMCU에서만의 배경 스토리와 자아를 지니고 있다. 그것들을 CAWMAN(카툰, 애니메이션, 웹툰, 모션그래픽, 아바타, 노블)을 통해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정리된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는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여러 기술들이 콘텐츠에 적용되고, 소비자들이 직접 아바타를 생성해 아티스트 아바타를 만날 수 있는 가상세계 플랫폼이 함께 구축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는 다른 비슷한 사례를 통해 유추해 본 예측에 불과하고 이후 SMCU에는 또 어떤 새로운 설정과 스토리, 기술과 플랫폼이 추가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SMCU가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 시작이 중요하다. MCU 역시도 그 시작을 알린 ‘아이언맨’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스파는 SMCU의 시작이라는 중책을 맡아 인상적인 첫발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MCU의 아이언맨처럼 에스파 역시 SMCU의 간판을 맡게 될 확률이 높은 이유다.


인터넷 우스갯소리 중 ‘SM엔터테인먼트 8년 주기설’이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8년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아이돌의 세대교체를 이뤄낸다는 속설이다. 속설이라고 하지만 1세대 H.O.T.(1996년 데뷔)를 시작으로 2세대 동방신기(2004년 데뷔) 3세대 엑소(2012년 데뷔)까지는 모두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비록 보이그룹은 아니지만) 우연찮게 또 8년이 지난 2020년, SMCU라는 새로운 시도와 함께 에스파가 데뷔했다. 과연 에스파가 이번에도 이 기분 좋은 징크스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지금까지는 그 전망이 밝아 보인다. ‘세대교체’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를 동반해야 가능한 법이다. 


최현정(칼럼니스트) 



CREDIT 글 | 최현정(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