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 눈빛 하나로 표현되는 서사의 다채로움

2021.05.21 페이스북 트위터

김서형, 사진제공=tvN


tvN 토일드라마  ‘마인’(극본 백미경, 연출 이나정)에서 김서형이 연기하는 정서현은 마치 온실에서 자란 대지의 나무 같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들리는 이 말의 뜻은 다양한 면면의 공존이라 해석하면 좋을 듯싶다. 강한 인상에서 나오는 외양의 올곧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실리를 먼저 생각하는 행동, 반면에 정작 그런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면의 갈등 때문에 그렇다. 재벌로 나고 자란 그는 남의 이목을 이유로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진짜 성정체성을 억누르고 산다. 인정(人情)보다 명성을 중시하고, 실리를 위한 상황 판단이 본능적이다. 하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그의 이면엔 남들은 몰라야 하는 혼돈과 아픔이 공존한다. 이런 정서현의 모습은 김서형의 얼굴을 통해 시청자의 눈앞에 진실되게 그려진다. 날렵한 턱선 위로 드러나는 눈빛의 깊이는 바라보기만 해도 관망하는 이를 압도한다.

'마인'은 재벌가인 효원그룹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치정극이다. 정서현은 효원가의 첫째 며느리이자,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인물이다. 능력 없이 모나기만 한 남편 한진호(박혁권)를 대신하는 두뇌이자, 사고만 치는 시어머니 양순혜(박원숙)와 시누이 한진희(김혜화)의 문제를 수습하는 해결사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발산하는 카리스마는 자칫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보일 수 있다. 효원가를 찾은 성난 시누이를 오히려 주눅들게 만들어 쫓아내고, 아랫 사람을 막 대하는 시어머니에겐 "그러지 말라"며 훈계한다. 강자 앞에서 더 강해지는 그야말로 '센 언니'다. 

하지만 홀로 있을 때, 그리고 진짜 연인을 마주할 때 서현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온갖 것의 불안을 담은 듯한 진짜 얼굴은 그의 정서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센 언니'의 모습은 가면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할 정도다. 과거 연인을 회상하는 얼굴은 또 다르다.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만으로 상황의 아련함을 오롯이 전달하며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절절하게 이입시킨다. 김서형은 백지같은 얼굴 위에 미세한 감정 변화를 세심하게 칠하며 서현이라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김서형, 사진제공=tvN


오랫동안 '국민 악녀'라는 수식어로 불렸고, 그 탓에 오랜 기간 세고 억센 캐릭터들만 연기해야 했던 배우. 그러나 김서형이 맡은 역할들은 대부분 '단순 악'이 아닌 서사 구조가 까다로운 인물들이었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는 부모의 부재로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인물이었다. ‘기황후’의 황태후는 궁중 암투 속 온갖 눈치를 보며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두드러진 광대와 날카로운 턱선, 치켜올라간 눈매는 김서형을 강한 인물로 보이게 했지만, 외양보다 더 진한 눈빛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다 담은 듯했다. 그래서 남의 불행을 키우며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는 ‘스카이캐슬’의 김주영처럼 비현실적으로 욕망하는 인물을 그해 가장 사랑 받는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과 함께 김서형은 얼굴 속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과거의 그가 자신이 가진 외향의 거침으로 근본적인 불안을 내지름으로 표현했다면, 지금의 그는 낮지만 분명한 어조로 캐릭터의 깊이를 채우고 있다. "올곧게 길을 걸어간 사람은 결국 보상받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는다.” 최근 한 매거진 인터뷰에서 김서형은 이런 말을 했다. 28년간 걸어온 그의 행보는 정말 그랬다. 그리고 성실함으로 쌓은 보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인' 속 서현의 얼굴도 이러한 김서형의 올곧음이 묻어난다. 뼈대있게 구현한 김서형표 서현은 '마인'을 그저그런 치정극이 아닌 웰메이드 인생작으로 탈바꿈시킨다. 여자 주인공의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단순 흥미 장치가 아닌, 깊이 있게 관철할 수 있는 것도 김서형이라는 배우가 쌓아온 신뢰 덕분 아닐까. 단 4회 만에 상승세를 탄 '마인'의 빠른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


CREDIT 글 | 한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