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름으로‘ 반성을 모르는 이에게 겨누는 총구

5월 18일 광주는 여전히 사과 받지 못했다

2021.05.04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이정국 감독이 30여 년 만에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시 이야기한다. 이 감독의 데뷔작 ‘부활의 노래’(1990)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장편 극 영화. 데뷔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다시 같은 소재로 관객을 찾아온 건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거 청산이 오롯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대리기사로 살아가던 오채근(안성기)은 소중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단골 식당에서 광주 출신의 진희(윤유선)를 만나며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된 그에게 ‘왕년의 투 스타’인 박 회장, 박기준(박근형)의 호출이 찾아온다.

오채근이 품고 있는 과거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광주’와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서사가 흘러가는 만큼 사회적 상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의 정체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감독 역시 적당한 시점에서 퍼즐 조각을 제시하며 적절한 몰입을 이끌어 낸다. 속도가 빠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긴장감이 상당하다.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가장 어려운 숙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재미와 함께 끝까지 정주행할 수 있는 이유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무거운 소재에 대해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다는 건 이미 지난 2017년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으로 증명한 바 있다. 다른 색채인 건 분명하지만 ‘아들의 이름으로’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관객의 숨 쉴 구멍을 열어놨다. 오채근이 행하는 작은 선행들이 바로 그것.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나오는 행동일 수도 있겠으나, 분명 그 온도는 따뜻하다. 영화가 주장하는 ‘반성’이 반드시 대단할 필요도 없다는 것, 허나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영화는 반성해야 하는 대상을 아래서부터 위로 가파르게 치고 올라간다. 결국 오채근이 들고 있는 총구의 끝자락은 ‘각하’라고 불리는, 실명을 언급하길 피하는 ‘볼드모트’에게 닿아 있다. 오채근이 행하는 최후의 징벌이 열린 결말로 끝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 개운치 않은 뒷맛이겠으나 그 원인은 영화가 아닌 아직까지도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깔끔하게 매조짓지 못한 우리 현실 사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반성’이라는 거시적인 테제를 꼭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로 만들었던 한정적인 집단에만 들이댈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명언으로 ‘반성’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제시하는 것도 같은 이치. “반성하지 않아도 용서하면 된다”, “교회에 가면 다 용서해 준다”는 박기준의 파렴치한 대사는 반성에 인색한 이 사회의 단면이며, 극중 등장하는 학원 폭력은 인류에 대물림되는 폭력과 그에 대한 항거를 상징한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 하여 반성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행해야 할 양심이며 책임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나아가 광주 민주화 운동를 바라봄에 있어 좌우 논리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는 건 현 사회에게 바라는 또 다른 반성이다. 오채근의 단골 식당에서 손님들이 벌이는 좌우 이념 언쟁이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질 때, 실어증에 걸린 피해자의 억장은 무너져 내린다. 각자가 개인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기에 앞서 실제 피해자에 대해 얼마나 진심이었나를 생각해야 할 부분. 아직 우리 사회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술안주로 올리기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수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 우리의 양심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건, 배우 안성기의 진정 어린 연기 덕분이다. 연기는 물론 외적으로도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마땅하다는 걸 몸소 실천하고 있으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 10월 건강 이상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현재 건강한 모습으로 관객과 마주하고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들의 이름으로‘가 촬영된 건 2년 전의 일,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다행히도 영화가 바랐던 모습으로 시나브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3월 16일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계엄군과 유가족 간의 화해 자리를 마련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눈물을 흘렸던 시간, 그간 진압 작전에 대한 증언은 있었지만 가해자가 발포 사실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5월 18일 광주는 사과와 반성에 목마르다. 영화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명언, 아우구스투스의 “악행에 대한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다”라는 말과 함께 현재 우리의 양심은 어떤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월 12일 개봉. 러닝타임 90분. 12세 관람가.

권구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권구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