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도 다녀간 힐링 맛집 '오느른'

내돈내산 폐가 리모델링 프로젝트 방송 화제

2021.04.2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방송캡처


지난 27일 방송된 ‘제33회 한국PD대상’을 봤다. 많은 방송관련 시상식이 있지만 ‘한국PD대상’은 연출을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이 뽑아주는 상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디지털콘텐츠부문 수상작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MBC의 ‘오느른’. 지난 여름 유튜브를 통해 나른한 힐링을 전한 채널이었다. 항상 카메라에서 얼굴을 숨기며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어딘가를 찾아가던 연출자 최별PD의 얼굴이 보였고 그 순간 그 김제의 넓은 들이 겹쳐보였다.

‘오느른’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멀쩡한 집을 구해 살던 한 MBC 시사교양PD의 이야기다. 최PD는 폐가 또는 구옥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연예인을 통해 지켜보려던 기획을 준비 중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이 프로젝트가 통째로 날아갔다. 회사는 아예 다른 아이템을 구해오라고 말했고 애지중지하던 아이템을 날린 최PD의 퇴사욕구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 순간 그는 집을 샀다.

채널의 첫 영상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을을 찾은 모습이 나온다. 그는 진짜 4500만원, 자기 돈을 들여서 ‘내돈내산’ 폐가를 보여준다. 폐가의 창으로 보이는 들녘의 모습이 너무 여유롭고 동네는 조용하다. 누구나 귀농이나 귀촌을 떠올리지만 이를 실행하는 것은 막상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빚을 들여 이 계획을 실행했다면 의아함은 더 커진다.

‘오늘을 사는 어른들’이라는 뜻의 ‘오느른’은 그 다음부터 천천히 시골생활에 적응하는 최PD의 모습을 담고 있다. 폐가는 자재를 뜯어보고 여기저기 살펴볼수록 더욱 난감한 속살을 드러냈다. 뒷마당 밭에는 쓰레기가 가득했으며 목조로 된 지붕은 대부분이 썩어있다. 최PD는 ‘세컨드 하우스’로 계획했던 김제의 집을 위해 결국 상암동의 집을 팔게 되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써가며 리모델링을 시작한다. 

사진출처=방송캡처


하지만 그 사이사이 시골의 정취를 즐기는 일을 잊지 않는다. 꽃을 이용한 전을 해먹기도 하고, 농사일도 해본다. 과일도 따본다. 그러다 또 지치면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들을 바라본다. 그가 친구로 칭하는 동네 어르신들은 정말 개구진 친구 같은 모습이다. ‘오느른’의 콘텐츠는 이렇게 시골의 속도로 조금씩 터전을 바꿔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한다면 ‘시골생활 적응 겸 폐가 리모델링 브이로그’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결국 최PD는 시사교양국을 나와 유튜브 채널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최초로 MBC 소속 유튜버가 된다. 채널 역시 11개월이 안 되는 시간 동안 28만의 구독자가 모였다. 지금도 채널에는 꼬박꼬박 콘텐츠가 올라온다. EBS의 ‘셀럽’ 펭수가 다녀가기도 했고, 상도 받았다. 그의 실험이 열매가 돼 조금씩 대중들에게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TV 속 세상은 처음에는 ‘가짜 같은 가짜’였다. 대본이 있고 설정이 존재하며, 출연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이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리얼한 연기를 보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가끔 ‘이게 진짜가 아닌가’ 속곤 했다. 그러다 ‘진짜 같은 가짜’의 시대가 왔다. 딱 요즘인 것 같다. 가짜를 가짜처럼 보이면 안 된다. 최대한 ‘리얼’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설정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대중들은 ‘리얼’을 강조하는 프로그램, 심지어 다큐멘터리까지도, 대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 실망감을 떨치지 못한다. 우리가 공감을 하는 그 감정의 원천에는 그들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음을 아는 일종의 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진짜의 삶을 TV에서 보려 해도 이는 결국 가짜에 가깝다. 카메라를 들이대다 제작진이 철수하면 결국 그 공간과 사람은 진짜로 남아있을지 몰라도 프로그램은 결말이 있는 이야기로 기능한다. 결말은 ‘극(劇)’의 속성. 결국 가짜의 속성이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오느른’은 여기에서 반 발짝 더 나간다. ‘가짜 같은 진짜’인 것이다. 사실 직장인이 ‘내돈내산’으로 4500만원을 주고 폐가를 산다는 설정은 거짓말 같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 폐가를 고치는 모습은 마치 요리 프로그램에 “이렇게 15분만 주무르면 이렇게 돼요”하면서 이미 만들어진 요리를 맞이하는 심정처럼 의심으로 가득 차 ‘진짜 자기 힘으로 고칠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최PD는 이 작업에 진심이었다. 그는 회삿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아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있으며 아예 거주지를 김제로 옮겨 거기에 살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다 치워도 제작진이 처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정을 통한 브이로그, 과시를 위한 브이로그에 질린 시청자들은 거짓말 같은 진실이 살고 있는 ‘오느른’ 채널에 조금씩 감복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어쩌면 프로그램이 가질 수 있는 최고 단계일지 모른다. ‘진짜 같은 진짜’는 그냥 우리의 삶이다. 편집을 거치지 않고 자막도 없는 우리의 삶은 굳이 TV를 보지 않아도 체험할 수 있다. ‘오느른’은 전개는 어떻든 간에 설정과 그에 대한 책임을 제작진이 오롯이 지면서 TV 프로그램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MBC도 조금씩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상을 준 게 아닐까.

어쨌든 ‘오느른’은 오늘날의 TV들에 말하고 있다. ‘가짜 같은 진짜’가 요즘에는 더 맞다고. 여기저기 모두 리얼을 부르짖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이 기가 막힌 현실은 도리어 너무 한 편의 동화 같아 볼 때마다 그 신선함에 정신이 번쩍 든다.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