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라만봐도 '아이들은 즐겁다'

2021.04.23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9소년 ‘다이’(이경훈)는 즐겁다. 아픈 엄마는 병원에 누워있고, 아빠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집을 비우기 일쑤다. 하지만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도 사귀고, 받아쓰기 100점도 받았다. 그래서 다이는 오늘도 즐겁다. 하지만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너무나도 마음 아픈 일, 마지막 인사를 위해 다이와 친구들은 어른들 몰래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슬픈 여정이지만 울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이기에, 그리고 엄마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다이는 마냥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는 허5파6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무채색의 색감과 단순한 그림체로 눈을 사로잡는 웹툰은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와 컷 연출력을 통해 완결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9.95라는 기록적인 평점을 유지 중인 명작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콘텐츠가 대세라지만, 대개 액션이나 판타지 등 장르적인 특성을 품은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이 흥행공식. 어른들의 셈법을 뚫고 스크린을 찾아온 ‘아이들은 즐겁다’의 유니크한 등장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작으로 자리잡은 웹툰을 영화화한다는 건 부담이 많은 작업이다. 하지만 웹툰 ‘아이들의 즐겁다’만큼 영화화에 딱 맞는 작품도 드물다. 에피소드 형식의 구조이기에 각색을 통해 새로운 내용을 삽입하기 수월하고, 현실 속의 소재이기에 1990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현재로 끌어올려도 이질감이 없다. 덕분에 웹툰이라면 가장 큰 고민이 될 CG에서도 자유로운 편. 나아가 원작 팬들이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인 캐스팅 역시 아역이라는 특수성 속에 새로운 얼굴을 발굴, 기존 배우들이 품고 있을 이미지를 배제할 수 있었다.


관객들과 마주하는 ‘아이들은 즐겁다’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관찰형 시선이다. 카메라 워킹의 기교를 최소화하고, 어른들의 서사를 최대한 배제한 채 그저 아이들의 뒤를 오밀조밀 따라간다. 원작의 담백한 그림체와 닮아 있는 것이 원작 팬이라면 더욱 기뻐할 지점. 무엇보다 관찰이란 대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행위이지만, 그로부터 부여된 객관적인 시선은 인물과 상황 속에 자연스럽고도 강한 몰입을 선사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무도 모른다’에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사회적 범죄를 아이들의 입장에서 성장 드라마로 치환할 수 있던 것도 바로 관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사실 성인의 시점에서 본다면야 지하철 몇 번 타면 도착할 수 있는 병원 가는 길이 뭐 그리 대수로울 일인가. 그저 물가에 내놓은 듯한 아이들의 안부가 걱정될 따름이다. 하지만 조용히 아이들의 행동과 상황을 뒤따르다 보면 어느새 어른의 입장은 지워지고, 자연스레 그들이 품고 있는 심상에 다다른다. 그곳엔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친구들이 뛰놀고 있다. ‘아이들은 즐겁다’가 선물하는 동심의 노스텔지어다. 가난에 치이고 학업에 시달리는 것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낸 일, 하여 어른들의 시선에서 물러났을 때 아이들도, 그리고 관객들도 즐거워진다. 

물론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엄마와 홀로 아들을 키워야 할 아버지의 처지는 실로 딱하다. 허나 그 또한 냉정하게 생각하면 어른들의 사정일 뿐, 한창 뛰어놀 아이들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처럼 너무 빨리 철이 들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이미 각자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과 친구, 그리고 가족을 치유할 줄 안다. 하여 슬픈 이야기임에도 영화는 신파로 흘러갈 틈이 없다. 어른들의 사정에 선을 긋고 아이들만 오롯하게 바라보고 있기에 ‘아이들은 슬프다’가 아닌 ‘아이들은 즐겁다’라는 역설의 묘미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사실 ‘아이’라는 것은 영화의 가장 큰 무기이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아역 배우의 연기를 작품의 입맛에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이에 이지원 감독은 시나리오를 없앴다. 연기의 기교에 쉽게 물들 수 있는 어린 배우들이 미리 인물을 분석하고, 감정 연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매번 촬영에 앞서 장면과 감정, 대사에 대한 이야기로 오랜 시간을 할애했지만, 그러한 교감 덕분에 아이들은 긴 대사는 물론 롱테이크신 같은 어려운 신을 훌륭히 소화할 수 있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작품을 관통하는 연출력부터 어렵다는 아역들의 핸들링까지, 이지원 감독의 역량이 여러 곳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2016년 단편 ‘여름밤’으로 청룡영화상부터 미장센 단편 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까지 그해 단편 부문을 모조리 휩쓸었던 저력이 충분히 느껴진다. 아버지와 엄마를 연기한 윤경호와 이상희는 관객이 관찰자에 머물 수 있는 구심점이 됐다. ‘다이’를 보며 피어났을 수많은 감정들을 내적으로 갈무리했기에 어른보다 아이들의 사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더불어 눈길을 끄는 건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이진아다.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도전적인 캐스팅이었겠으나, 독창적인 시선과 맑은 음색의 음악 세계가 작품이 품고 있는 감성과 딱 맞아떨어진다.

‘아이들의 즐겁다’ 속엔 화려한 영상도, 자극적인 갈등과 서사도, 눈물 뽑는 신파도 없다. 하지만 순수 무자극의 힐링 에너지가 따뜻한 봄볕처럼 아름답게 살아 움직인다. 개봉일은 때마침 5월 5일 어린이날. 어른들의 사정보다는 아이들의 즐거움이 더 중요할 날, 아이들과 함께 보기 딱 좋은 가족 영화가 탄생했다.

권구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