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 박보검이라는 존재 자체가 개연성

2021.04.1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제부턴가 박보검이라는 배우에게 흥미를 잃었다. 처음엔 관심 있게 지켜보던 배우였다. 영화 ‘블라인드’, ‘차이나타운’에서 작은 캐릭터 안에서도 돋보이게 연기를 잘하는 이 잘생긴 배우의 행보가 꽤 궁금했었다. ‘응답하라 1988’의 택이 캐릭터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될 배우임을 짐작했다. 하지만 그가 연이어 드라마 주연을 맡고, 수많은 광고에서 매끈한 외모를 한껏 드러내며 춤추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관심이 식었다. 그의 연기력이나 매력과는 상관없이, 스타의 길로 저 멀리 달아난 듯해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는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 제작 STUDIO101, 티피에스컴퍼니)을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 가장 우려되었던 건 복제인간이라는 한국영화 역사상 전에 없던 캐릭터였다. 과연 영화가 복제인간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박보검은 이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영화 ‘불신지옥’에서 심은경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이제훈과 수지를 영리하게 활용했던 이용주 감독이기에 나름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쏟아지는 혹평들을 보며 기대보단 걱정 쪽으로 마음의 무게추가 좀 더 기울었다.

 

영화의 뚜껑을 열고 나서는, 잃었던 박보검에 대한 흥미가 다시금 채워졌다. 연구소에서 스크린 속 바다를 바라보며 오도카니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서복의 뒷모습에서부터 이미 어떤 서사가 그려졌다. 외롭고 처연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복제인간.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 신비로움과 인간성을 동시에 지닌 양가적 존재. 박보검은 이러한 쉽지 않은 복제인간 캐릭터를 섬세하고도 단단하게 연기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서복’은 유전자조작과 세포복제로 태어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전직 요원 기헌(공유)의 관계를 다룬 영화다. 서복은 영생을 꿈꾸는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으러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은 신하 서복의 이름에서 착안했다. 죽음을 앞둔 기헌이 영생의 키를 쥔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감독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 기저에 숨은 두려움과 뒤틀린 욕망에 대해. 나아가 생명윤리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묻는다. ‘서복’의 호불호는 이 지점에서 나뉜다. 감독이 이러한 철학적인 물음을 서복의 입을 통해 관념이고 추상적인 대사로 전하기 때문이다. 이를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표정으로 표현해야 할 배우로서는 만만치 않았을 연기였을 터. 박보검은 “왜 죽는 게 두렵죠? 어차피 다 죽는데”, “왜 당신은 나를 구하려 하나요”, “나는 갈 곳이 없어요”, “저는 무엇을 믿어야 두렵지 않을까요”라는 대사를 적당히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그 덕분에 좀처럼 공감하기 힘든 복제인간이라는 캐릭터는 어느새 ‘어딘가 존재할 법’한 존재로 다가온다. 박보검의 연기가 곧 개연성인 셈이다. 기헌이 사준 옷과 운동화를 지긋이 응시하고, ‘엄마’라는 단어를 무덤덤하면서도 낯설게 내뱉고, 세상을 향한 의문과 회의로 가득한 눈빛을 드러내는. 그리고는 끝끝내 자신의 운명을 택하고야 마는. ‘서복’은 박보검이 출연한 작품 중 가장 독특하지만, 가장 또렷이 기억될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서도 서복의 여러 표정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물론 ‘서복’이 그린 서복과 기헌의 관계는 종종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둘 사이를 규정하는 단어가 브로맨스인지, 연민인지, 우정인지 의아한 순간마다 박보검과 공유는 세밀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붙들어 맨다. 보여주고 말하는 캐릭터 서복에 비해 그에 반응하는 인물인 기헌은 자칫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공유는 이를 차분히 제 것으로 소화했다. 엔딩에서 그가 뱉지 않고 삼켜낸 눈물 역시 오래 마음에 남을 장면이다.

 

오래 전 박보검과의 인터뷰에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신인임에도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태도가 신선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차갑고 단단한, 확신한 신념 같은 것이 보여 짐짓 놀랐던 기억이 영화 ‘서복’을 보고 나니 다시금 떠올랐다. 그가 잘생기고 순진무구한 청춘 스타가 아닌, 어렵더라도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한다는 것을. 그러고 싶어한다는 것을 ‘서복’을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가 전역 후 얼마큼 더 성장한 연기를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김수정(칼럼니스트)

 



CREDIT 글 | 김수정(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