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능을 쥐락펴락하는 '밈' 열풍

예능의 주도권은 이미 방송국을 떠났다

2021.04.1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매주 수많은 부캐(부캐릭터)를 생산하고 있는 유재석이 요즘 한창 빠져있는 일은 남성 보컬그룹 ‘MSG워너비’를 만드는 일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자신을 “‘환불원정대’를 만들었던 제작자 ‘지미유’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 이름은 ‘유야호(野好)’, 들을 좋아한다는 뜻이지만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유야호’는 최근 각종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는 밈(Meme) ‘무야호’의 변주다. 최근 유튜브 등지에서 화제의 밈으로 번져가고 있는 ‘유야호’는 2010년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오마이텐트’ 특집에서 유래했다.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에 나선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등 멤버들이 한인교민회를 찾고, 거기서 ‘무한도전’을 안다고 하는 어르신을 만나지만 어르신은 ‘무한도전’의 구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야호~”라고 얼버무린다.

방송 당시 이 장면은 그렇게 의미도 없었으며, 잔재미를 주는 한 장면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MBC의 유튜브 채널들이 과거 비연예인 출연자들이 ‘무한도전’에 나오는 모습을 편집해서 올렸고 지금 누리꾼의 눈에는 ‘무야호’가 주는 일종의 허무와 B급의 정서가 딱 맞게 다가온 셈이다.


사실 이러한 밈의 유래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 자체가 조금 부질없는 행동이긴 하다. 밈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왜 좋아하는지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힘들지만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을 짓게 되고 반복을 통해 학습된 코드들이 또 누리꾼들의 재해석과 편집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진다. 그리고 심지어 기성의 방송들도 밈의 코드를 차용한다. 이것이 지금 ‘밈’이 가진 위력이다.

밈은 그리스말로 모방을 의미하는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다.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들여왔다. 밈은 다양한 영역이 있다. 영상 한 장면이 될 수 있고, 대사가 될 수 있으며 대중들에게 기이한 재미를 주는 하나의 캐릭터나 코드가 될 수 있다. 

사실 밈은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특정한 의도를 갖지 않는다. 그저 잠시 재미있으면 되는 일인데, 최근 이 밈이 한국 대중문화에 여러가지 큰 흐름을 만들었다. 비의 ‘깡’ 신드롬은 대표적이다. 2017년 발표된 이 노래는 비가 자신의 성공을 약간의 허세끼를 넣어 표현한 곡이었지만 곡 자체의 난해함, 컨셉트의 기이함으로 발매 당시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이한 코드를 누리꾼들이 직접 커버영상으로 소화하면서 ‘깡’은 다시 주류로 나섰다. 비는 각종 광고와 방송출연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배우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 김영철의 “사딸라” 등도 그 상황과 캐릭터가 주는 순간적인 매력으로 밈으로 올라섰다.

브레이브걸스, 사진제공=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최근 밈은 또 한 건의 큰 사고를 쳤다. 팀으로는 2011년 데뷔했고, 지금의 멤버로는 2016년부터 활동해 긴 무명의 터널을 걷고 있던 한 걸그룹을 대세로 건져올렸기 때문이다. 브레이브걸스는 올 상반기 가요계가 보인 가장 놀라운 재발견 중 하나다. 이들의 2017년 발표곡 ‘롤린(Rollin’)’의 인기를 만든 건 기획사도 방송사도 팬들도 아닌 하나의 영상이었다. 그것도 뮤직 비디오나 공연 영상이 아닌 댓글영상이다. 브레이브걸스라는 걸그룹과 해병대 장병들의 열광적인 반응, 대중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기이한 장면이 댓글을 통해 그 이유가 소개되면서 누리꾼들이 이를 밈으로 소비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진짜 노래가 좋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미 브레이브걸스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예능을 모두 섭렵한 대세 중에 대세가 됐다. 마치 과거 EXID가 멤버 하니의 ‘직캠’으로 역주행을 시작했듯, 지금의 누리꾼들을 사로잡으려면 제대로 된 밈의 성격을 내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실제 지금 예능을 보면 인터넷의 밈을 적극적으로 CG나 자막, 캐릭터 등으로 일궈내려는 시도를 많이 보인다. 과거 온라인의 창작물들이 지상파에서 인기가 있는 요소들을 들여왔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는 거꾸로 대중들이 자료의 광대한 바다인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요소들을 길러내 밈으로 소화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금의 방송가 밈의 열풍을 조금 부질없다고 보고 있다. 밈의 속성상 대중화되고 누구나 공감하는 코드가 되면 정작 열광적인 소비자들은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또다시 그들은 자신만의 코드가 담긴 밈을 찾아 떠나고 주류에 편입된 밈은 힘을 잃는다. 그래서 방송가가 무차별적으로 온라인의 밈을 쫓는 일이 창작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 높으신 PD 양반들이 마음속으로 상상했던 ‘이 세상 모든 재미는 내 손에서 만들어지고 인기는 방송국에서 생겨난다’는 자신감이 이제는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밈도 끊임없이 변한다. 밈과 지상파 예능의 술래잡기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