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2', 활자에 갇힌 현대사의 빗장을 풀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비극적 사건 조명

2021.04.0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꼬꼬무2' 방송 캡처


슬프게도(?) 대부분이 아는 사건들이다. 연륜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모른 척하면 그만이겠지만, 어쩌나. 그 시대를 관통했기에 기억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나처럼 어렴풋이 기억하는 사람들과 전혀 생소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유혹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다.



‘꼬꼬무’ 시즌 1 예고를 보며 대체 무슨 프로그램일까 의아했다. 출연자는 왜 그리 많으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본방송을 기다리게 만들었고, 결국 방송을 다 보고 나선, 감탄하고 말았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도 이야기가 되면 흥미진진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영리한 제작진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이야기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매주 한 시간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오래돼 정확하진 않지만, 그 시작은 활을 매우 잘 쏘는 소년으로부터였던 것 같다. 이 소년은 아주 어릴 적 파리들이 눈을 물어 잠을 잘 수 없다고 어머니에게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어머니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주자 그것으로 파리를 전부 쏘아 맞혔다고 했다. 황당해도 이렇게 황당할 수가. 알고 보면 이 이야기는 주몽의 이야기로, ‘삼국유사’의 내용이었다.

 

당시 선생님의 이야기는 주몽에서 유리 왕자, 박혁거세로 이어지며 나를 매료시켰다. 당시 배웠던 국어, 산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들었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국사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또래 사이에서 조금은 아는 척을 할 수 있었으니. 좀 더 과장하자면 지금껏 역사라면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막론하고 찾아보고 재밌게 즐길 수 있게 된 건 다 그때 그 선생님의 이야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진출처='꼬꼬무2' 방송 캡처

 

그것이 ‘청자’로서의 추억이라면 ‘화자’로서의 추억도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점방과 살림집이 붙어있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세련된 형태를 떠올리면 거리가 한참 멀다. 적산가옥으로 계획 없는 증축으로 모양새가 한옥도, 양옥도 아닌 이상한 형태였는데, 문제는 여름이면 너무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추운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점방에 딸린 작은 방에서 지냈는데, 여름밤이면 점방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더위를 식히곤 했다. 차가 다니는 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한참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당시 그 길에는 지나다니는 차도 드물었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모기향을 피워놓은 그 돗자리 위에서 나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할머니,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또 많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마 주로 만화책에서 읽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래봤자 초등학교 저학년, 얼마나 이야기를 잘했을까만은, 어르신들은 내 이야기에 참 즐거워하셨다. 어린아이의 재롱이 귀여우셨을 테고, 호응은 찰떡같았다. 화자는 청자가 얼마나 받쳐주느냐에 따라 유능한 화자로 거듭나게 마련이다. 어르신들의 추임새에 우쭐해지고 신난 나는 밤마다 또 무슨 이야기로 어르신들을 재미있게 해드릴까 고민하며 열심히 만화책을 봤고, 친구들의 농담을 새겨들었다.

 

‘꼬꼬무’가 이야기꾼 혼자 진행하는 프로였다면, 아마 재미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개성 다른 이야기꾼과 매번 바뀌며 이야기를 듣는 이들의 열렬하고 생생한 호응 덕분에 식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재미의 날개를 달았다. 시즌1이 너무 짧았기에 아쉬웠던 나는 행여 시즌2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나 같은 시청자들이 적지는 않았던가 보다.


사진출처='꼬꼬무2' 방송 캡처

 

‘꼬꼬무’의 힘은 스토리텔링과 현대사라는 데 있다. 단군 할아버지부터 조선 시대, 근대까지의 역사는 무수한 콘텐츠로 재생산되며 익숙해졌지만, 현대의 사건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고 새로운 영역이므로. 더욱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범죄 사건을 넘나드니 더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 뒤에 가려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감동을 더한다. 


특히 지난주 방송한 ‘4000일간의 추적: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은 비통을 넘어 분노가 일었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와 이를 듣는 청자의 분노와 울분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다. 아직도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1인 시위'를 한다는 피해자 오빠의 인터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며 긴 여운을 선사했다. 이렇게 안타깝고 억울하게 희생됐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을 추모하고 명복을 빌 기회를 주는 것이 이 프로의 역할인 듯싶다.

  

잠깐의 손가락 노동으로 세상 모든 것을 검색하고 알 수 있는 시대. 그래서 이야기는 더 소중하다. 점점 얼굴을 맞대고, 상대의 표정과 반응에 맞춰 신이 나고, 위로받는 이 사소한 소통이 줄어든다. 굳이 같은 공간에 마주 앉아 있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 서로의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던 우리의 일상이 달라진 건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마주 앉아 주고받는 이야기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꼬꼬무’가 반갑고 고마운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현주(칼럼니스트) 

 

 



CREDIT 글 | 이현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