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안녕" 아이유, 스물아홉 봄날의 졸업식

아이유의 13년, '믿고 듣는' 성장의 기록

2021.04.02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아이유 '라일락' 뮤직비디오 캡처



'젊은 날의 추억'을 노래한 '라일락' 뮤직비디오는 아이유의 20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기차 플랫폼에 들어선 아이유는 발표곡들이 목적지로 적혀있는 시간표를 확인한 뒤 기차여행을 시작한다. 20대 마지막 축제를 열듯 화려함에 취하기도, 정체모를 남성들과 다툰 뒤 얼굴에 상처가 나기도 한다. 마치 지독한 성장통을 겪은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선 짧은 꿈을 꾼 듯 옅은 미소를 짓는 아이유를 배경으로 꽃잎이 흩날린다. 마치 밀가루 대신 꽃가루를 뒤집어쓴 졸업식처럼. 올해로 스물아홉 살이 된 아이유가 화려했던 20대의 마지막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열여섯 나이에 데뷔한 아이유는 유독 긴 20대를 보낸 것 같다고 했다. 뮤지션에게 10년 이상의 활동 경력이 별것 아닐지 몰라도, 아이유의 성장 스토리는 여느 가수들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소녀가수가 아이돌로, 국민가수를 넘어 아티스트로 거듭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년 만의 정규앨범 'LILAC'은 비록 아이유의 개인적인 얘기를 담았지만, 앨범 속 적힌 모든 말들은 그의 20대를 지켜봐온 모두에게도 충분한 공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아이유 '라일락' 뮤직비디오 캡처


곡마다 일기장 한쪽을 읽는 듯한 새 앨범은 그의 지난 생각을 그대로 투영한다.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해온 아이유는 이번 앨범의 작사가와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타이틀곡 '라일락'은 '스무 살의 봄'(2012), 미니 4집 타이틀곡 '스물셋'(2015), 정규 4집 '팔레트'(2017), 싱글 '에잇'(2020)으로 이어지는 나이 시리즈로 지금만 들려줄 수 있는 현재의 아이유, 29세의 감성을 기록했다. 20대의 끝자락에 느끼는 감상을 노래로 풀어낸 만큼, 점점 깊어지는 감정폭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변화한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녹여낸 점도 인상적이다. 수록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좇다 보면 온전히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는 앨범이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의 정점은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프로듀서' 아이유의 디테일에 있다. 우선 아이유가 창작자 역할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 보컬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음악 구성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한번도 마주 한적 없는 작곡가들을 한데 모아 비트, 멜로디를 분배하고 작업하는 'A&R' 역할을 해냈고, 곡마다 가창을 다르게 운용하며 탁월한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보여줬다. 유튜브 내에서는 또 다른 부캐 '이지동'이란 인물을 설정, 신입 '마케터'로 활약하기도 했다. 서정적인 표현과 은유로 가득한 '작사가' 아이유의 역량도 여전하다. 

사진출처=아이유 '라일락' 뮤직비디오 캡처


폭넓은 보컬 스펙트럼을 보여주듯 앨범의 10곡은 10가지 언어와 다른 색깔로 표현됐다. 진성과 가성, 강약을 조절해 감정을 세분화한 '라일락'의 보컬은 히트곡 '좋은 날' '너랑 나' '하루끝'의 그것과 닮아있고, 악동뮤지션 이찬혁이 작곡한 수록곡 '어푸'에선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 대듯 리드미컬한 보컬 운용을 선보였다. 또 뮤직비디오에 기차역장으로 카메오 출연한 정재형의 등장이나, '좋은 날' 도입부 노랫말을 바꿔 넣은 가사 등 히트곡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할 만한 장치를 곳곳에 넣어 묘한 연결성도 전달하고자 했다. 이외에도 수록곡 '아이와 나의 바다'에선 폭발적인 고음을, 나얼이 선물한 '봄 안녕 봄'에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자신보다 키가 큰 기타를 연주하던 열여섯, 마냥 오빠가 좋다던 열여덟, 모든 게 수수께끼 같았던 스물셋, 이제 좀 알 것 같다던 스물 넷, 후회없는 20대의 끝 스물아홉까지, 많은 이들이 아이유의 성장스토리를 지켜봤다. 선배 뮤지션들이 주목하는 기특한 소녀 가수가 어느덧 진짜 자기 얘기를 하는 스토리텔러,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모습을 말이다. 이제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시킬 정도로 단단한 여유도 생긴 듯 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스물아홉의 봄날, 후회없이 20대를 보냈을 아이유는 앨범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물세 살의 아이유도, 스물다섯의 아이유도, 작년의 아이유도 아닌 지금의 저는 이제 아무 의문 없이 이 다음으로 갑니다."

박영웅(대중음악 칼럼니스트) 


CREDIT 글 | 박영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