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가 걷는 꽃길은 그 누구도 '돈 터치'

새 디지털 싱글 ‘어떤X’로 컴백

2021.03.23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피네이션




"미국 버터 느낌을 원하더라."

가수 제시(33)는 자신의 데뷔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지난 2005년 제시카 H.O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 이후 힙합 그룹 업타운의 객원 여자 보컬로 활동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중이 그를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제시는 "트레이닝도 안 받고 연습생 기간도 거치지 않고 바로 앨범을 냈다"며 "미국 버터 느낌을 원하더라. 한국 문화를 아예 몰랐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제시가 한국으로 건너와 가수 생활을 시작한 지 16년째다. 하지만 아직 그의 한국말은 서툴다. 그는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한국말을 못하냐고 하더라.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안녕하세요’밖에 못했다. 완전 미국 여자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어눌한 한국말이 그를 스타덤에 올리는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라곤 제시도, 대중도 몰랐다.

제시의 시작은 강렬했다. 데뷔 당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면 ‘제2의 보아’를 노린다는 문구가 가득하다. 보아가 일본에서 ‘오리콘의 신성’으로 떠오르며 ‘넘버 원’ 등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때다. ‘제2의 보아’라는 수식어를 얻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던 시절이다. 

이를 노리고 대형 음반제작사인 ㈜도레미미디어는 제시를 발굴해 데뷔 앨범과 뮤직비디오 등에 총 8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했다. 실제로 보아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작곡가 황성제가 2년 간 공들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내진 못했고 이후 업타운에 객원 멤버로 활동하며 실력과 인지도를 쌓았다. 2009년 발표한 ‘인생은 즐거워’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대중에게 꽤 사랑을 받았으나 지속적이진 못했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이 뜸해졌다.

사진제공=피네이션


제시의 가수 경력은 새로운 소속사에서 2014년 다시 시작된다. 그해, 래퍼 제이켠·보컬 제이요와 함께 그룹 럭키제이를 결성해 다시 무대에 섰다. 17세에 데뷔 후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선 제시의 랩과 보컬은 한층 안정적이었고 음악성도 인정받았다. 그러다 그에게 본격적인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시선과 편견을 딛고 할 말은 하는 ‘센 언니’ 캐릭터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며 덩달아 제시의 입지가 넓어졌다. 이 와중에 2015년 방송된 Mnet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그의 강렬한 캐릭터와 탄탄한 랩을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 9월에는 아예 제목부터 ‘쎈 언니’인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고 걸 크러시한 매력이 제시의 주무기로 자리매김했다.

17세까지 미국에서 자랐다지만, 제시는 한국어 습득력이나 구사력이 더딘 편이다. 데뷔 당시 제시카는 언론 인터뷰 도중 "맘속에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빙빙 돌면서 입으로 튀어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면서 "어서 빨리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지금보다 방송 심의 규정이 더 엄격해 TV 프로그램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금기시됐다. 그러니 한국어가 서툰 제시가 예능에 출연할 기회도 적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며 제시의 위상도 바뀌었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며 입담보다 각 연예인이 가진 캐릭터를 중시하는 문화가 퍼졌다. 서툰 한국어 때문에 말실수를 하고, 답답할 때마다 특유의 추임새와 함께 영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제시는 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방송인 유재석과 함께한 MBC ‘놀면 뭐하니’에서 "헤이∼ 컴온"이라고 내뱉는 추임새는 유행어가 됐고, 솔직함을 넘어 직설적인 그의 말투는 대중을 환호케 했다.

예능 출연은 가수로서 그의 입지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시의 첫 음악프로그램 1위는 단독 앨범이 아닌 프로젝트 앨범을 통해서였다. 그의 첫 고정 예능인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결성한 프로젝트 걸그룹 언니쓰가 발표한 ‘셧 업’(Shut up)으로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놀면 뭐하니’에서 엄정화·이효리·화사 등과 함께 한 환불원정대가 발표한 ‘돈트 터치 미’로 가요계를 석권했다. 제시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진제공=피네이션


그는 지난 17일 새 디지털 싱글 ‘어떤X’(What Type of X) 발매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환불원정대와 함께 한 무대와 활동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모든 세대가 함께한 그림을 본 적이 없다. 너무나 영광이었다. 너무 기분 좋았고 끝난 후에도 눈물 나더라"며 "유재석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면서 느낀 건 ‘서로 감당이 된다’는 것이다. 오빠는 나를 뒤에서도 잘 챙겨준다. 오빠와 함께 있으면 내가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오빠가 나를 더 챙겨주고 싶은 것 같다"고 환불원정대로 활동했던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프로젝트 걸그룹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어올린 제시는 단독 앨범을 통해 본색을 드러냈다. 이효리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눈누난나’는 지난해 가요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여성 솔로곡 중 하나였다. 가수 싸이가 이끄는 가요기획사인 피네이션으로 이적 후 그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제시는 ‘눈나난나’로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눈누난나’로 데뷔 후 15년 만에 처음 음악으로 인정 받았다"며 "그동안 인기가 없진 않았지만 음악으로 인정받는 게 처음이라 뿌듯하고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진짜 열심히 해야지"라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어떤X’로 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팝 록 장르인 ‘어쩐X’는 ‘눈나난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눈나난나’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제시는 주저하지 않는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건 제시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시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제 매력은 ‘자신감’인 것 같아요. 자신감이라는 게 태어나면서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다 저를 사랑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저는 노력하고, 그만큼 저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들이 (저를) 어떻게 사랑해요. 저는 거울을 보면서 ‘나는 최고다’, ‘아임 더 베스트(I’m the best)’라고 말해요."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