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도 장르다!', 김순옥 임성한이 증명한 팩트

2021.03.18 페이스북 트위터

'펜트하우스' 시즌2, 사진출처=방송캡처


막장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욕하면서 본다’는 뻔한 수식어로는 막장 드라마의 세계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다매체에서 숱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막장극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눈에 띄는 선전을 기록하는 것을 두고, 단순히 ‘자극적이기 때문’이라고 도식화할 순 없다. 스마트폰과 함께 더욱 스마트해진 소비자들은 그저 많은 자극을 준다고 현혹될 만큼 우매하지 않다. 결국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들에게 ‘섬싱 뉴’(something new)이자 ‘섬싱 스페셜’(somethine special)이 있다는 의미다. 분명 요즘 막장극은 진화하고 있다.

#재미있으니까 본다!

임성한, 문영남 작가를 잇는 ‘막장 막둥이’라 불리는 김순옥 작가가 집필하는 SBS ‘펜트하우스’의 시청률은 20%대 중반이다. 시즌1 마지막회 시청률은 30%에 육박했다.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을 불고 온 TV조선 ‘미스트롯’ 시리즈의 시청률이 30%대 였던 것을 고려할 때 ‘막장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임성한 작가가 6년 만에 선보인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또 어떤가? 1회부터 채널 역대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데 이어 10% 고지를 밟았다. 평균 시청률도 8%대로 준수하다.  

시청률은 곧 인기를 뜻한다. ‘펜트하우스’와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보는 이들은 "재미있으니까 본다"고 입을 모은다. 세상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콘텐츠는 없다. 결국 충성도 높은 시청자를 더 많이 모으는 콘텐츠가 자본주의 시장 기준으로 볼 때 더 나은 콘텐츠라 해도 무방하다.

‘펜트하우스’는 욕을 참 많이 먹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않고,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학교폭력도 아무렇지 않게 재미를 위한 도구로 배치한다. 그러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도 수차례 받았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김 작가는 앞선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등을 통해 입증됐듯 캐릭터 구축 솜씨가 빼어나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 된 민소희나, ‘역대급’ 악녀로 꼽히는 연민정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리고 이를 연기한 배우 장서희, 이유리는 스타덤에 올랐다. ‘펜트하우스’에서는 김소연, 이지아 등이 재발견됐다. 이처럼 선명한 색을 가진 캐릭터를 이를 연기할 깜냥이 되는 배우에게 맡기는 것이 김 작가의 안목이다. 굳이 스타를 고집하지도 않아 드라마 제작 단가까지 낮출 수 있으니 제작사와 방송사도 고마울 따름이다. 

적절한 반전과 복선 배치 또한 김 작가의 전매특허다. ‘누가 살인을 했나’를 두고 끊임없이 시청자들이 추리하게 만들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진짜 죽었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니 "김순옥 작가의 작품은 끝까지 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임성한 작가는 또 다른 결을 가졌다. 임 작가 작품의 특징은 ‘일대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펜트하우스’는 최상류층이 사는 펜트하우스에서 여고생이 떨어져 죽는 처참한 사건을 발단에 두고, 그 배경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임 작가는 주로 가족극을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결혼작사 이혼작곡’ 역시 각각 30, 40, 50대 부부의 삶에 ‘불륜’이 똬리를 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라 ‘더 피부에 와닿는다’고 임 작가의 팬들은 입을 모은다. 

여기에 임 작가는 특유의 소스를 뿌린다.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고 이를 나눠 먹거나 레시피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임 작가의 세계관 속에는 명언이나 속담도 많다. 어린 아이들까지 훈장님 같은 대사를 쓸 때는 ‘어린 아이답지 않다’는 핀잔과 동시에 ‘그게 임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임 작가 역시 시청자들도 두뇌 게임을 벌이며 소위 ‘밀당’을 한다.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죽음에 이르게 되면 시청자들은 ‘임 작가의 데스노트가 시작됐다’고 아우성이다. "암세포도 생명이에요"라는 대사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표현이 있듯, 임 작가가 쓰는 작품의 대사 한 줄 한 줄이 도마에 오른다는 건 그의 영향력을 알리는 방증이다. 물론 임 작가가 이런 여론과 언론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진 않는다. 하지만 마치 여러 반응에 답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대사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설정들은 시청자들을 더욱 그의 드라마로 끌어들이는 중력과 같다.

'결혼작사 이혼작곡', 사진출처=방송캡처


#시대가 변했다!

막장이라는 표현은 2000년대 들어 쓰이기 시작했다. ‘막다른 길이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뜻을 가진 막장은, 결국 이 이상 자극적일 수 없을 정도로 표현 수위가 높은 작품이란 의미다. 살인이나 폭력과 같은 강력 사건이나 불륜과 같은 비도덕적이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개연성이 없을 때 통상 ‘막장’이라 부른다.

지상파 3사가 방송의 전부이고, 방송의 도덕률을 강조하던 시절에는 방송 심의도 더 까다로웠다. 표준어 사용이 강조됐고, 지금과 같은 신조어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그리고 SNS의 대중화는 다양한 표현과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의 욕구를 넓혔다. 그 결과 막장 코드를 가진 작품들을 수용하는 범위 또한 커졌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이 넷플릭스에 수출된 건 상징적이다. 중장년층이 즐기는 통속극이라 치부되던 임 작가의 작품이 젊은층이 선호하는 세련된 작품의 집합소로 불리는 넷플릭스에 공급됐고, 또한 영화 ‘승리호’를 제치고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가장 많이 선택된 콘텐츠 1위 자리에 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임 작가의 작품이 가진 독특한 코드가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속에서 오히려 차별화됐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한 외주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해외 작품을 보면 국내 작품은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다. 불륜 코드 또한 근친상간까지 아무렇지 않게 다룰 정도로 수위가 높다"며 "결국 다양한 OTT(Over the top) 플랫폼이 론칭되고 다양한 작품을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되며 막장극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밈’(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재미있는 콘텐츠) 현상 또한 막장 드라마의 인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가수 겸 배우인 비가 발표한 ‘깡’이 다양한 패러디를 낳으며 뒤늦게 인기를 얻는 이런 현상은 ‘B급 문화’을 활성화시켰다. 예를 들어 MBC 드라마 ‘모두다김치’에 삽입됐던 ‘김치 싸대기’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고, 또 다른 MBC 드라마 ‘사랑했나봐’에서 쥬스를 마시던 남성이 충격적 이야기를 듣고 이를 주르르 흘리는 장면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됐다. 객관적 기준으로 본다면 모두 상식에서 벗어난 설정과 연기지만, "재미있다"는 입소문과 함께 소위 ‘짤’(재미있는 장면 일부를 발췌한 콘테츠)로 형성되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막장극 역시 몇몇 충격적인 설정과 장면으로 하이라이트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중장년층보다는 젊은층 사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며 그들을 막장극의 팬들의 끌어들이는 결과를 빚고 있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대는 대중의 시청 행태 역시 완벽하게 바꿔놓았다. 굳이 TV 앞에 앉아서 1시간 통한 정주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거나, 유튜브 등을 통해 전문 유튜버들이 액기스만 짜깁기한 장면으로 작품을 몰아보며 재미있는 요소만 좇기도 한다"며 "물론 작품의 개연성과 서사 구조도 중요하지만 자극적 설정과 장면, 그리고 흥미로운 대사가 많은 막장극이 어필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라고 말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