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지연, 겁쟁이가 최고가 될 수 있던 이유

2021.03.10 페이스북 트위터

차지연,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15년차 배우 차지연. 공연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최고라 일컫는 배우다. ‘예쁘다’ ‘잘생겼다’와 달리 ‘멋있다’는 말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때론 이 한 마디에 예쁘다와 잘생겼다가 모두 포함되기도 하고 보다 넓은 의미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진짜 괜찮은 사람을 볼 때면 감탄사처럼 ‘멋있다’는 말이 나오기 마련인데 차지연이 그렇다. 

그는 맡은 역할에 따라 예뻐보이기도 하고, 잘생겨지기도 한다. 때론 연약하며, 어떨 땐 한없이 강인하다. 좌중을 압도하는 폭발적인 가창력, 생동감 있으면서도 섬세한 연기력, 몸짓, 손짓 하나에도 집중하게 하는 무대 장악력까지 모두 갖춘 그는 걸작을 볼 때 느끼는 탄과 여운을 눈에서 선사하는 살아 숨 쉬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는 공연계에서 늘 톱으로 불리며 언제나 대작에 타이틀롤 첫 번째로 꼽혀왔다. 이력이나 실력에 대한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그는 ‘대체불가’의 입지적인 배우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변화지 거듭하니 존재감이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연말 코로나19로 인해 침체기에 빠진 공연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연극 ‘아마데우스’는 다시 한번 차지연의 진가를 알 수 있게 해준 작품이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의 극본을 원작으로 한 ‘아마데우스’는 타고난 재능을 지닌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그런 그에게 질투를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던 살리에리의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차지연은 살리에르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 평단과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뮤지컬 ‘더 데빌’과 ‘광화문 연가’에 이은 세 번째 ‘젠더프리 캐스팅’이다. 하지만 경험자 차지연에게도 살리에르 역할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젠더프리 캐스팅’이어도 여자 배우가 남성의 캐릭터를, 그것도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점이 굉장히 두려워서 처음엔 고사했어요.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죠.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하는 부분이 ‘젠더프리 캐스팅’이에요. 이런저런 작품에서 ‘젠더프리’ 배역을 해왔기 때문에 쉽게 결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늘 작품 선택에 신중해요. 이번 작품은 더 그랬어요. 혹여나 거부감이 들거나 결이 안 맞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하루하루 더욱 절실하게 연습했고 성실하게 임했어요. 물론 모든 작품을 성실하게 하지만 ‘아마데우스’는 더욱 성실하게 했어요. 조심스럽게 접근한 만큼 관객분들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셔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차지연,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처음 차지연의 살리에리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역시나 ‘젠더 프리’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무성(無性)의 성향이 짙던 ‘더 데빌’, ‘광화문연가’ 속 캐릭터와 달리 진짜 남자를 연기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 그러나 공연을 마쳤을 땐 ‘젠더 프리’로 향했던 시선이 살리에르라는 인물 자체의 생애로 옮겨갔다. 살리에리는 음악을 지독히 사랑했고, 열정을 따라가지 못한 재능 때문에 늘 열등감을 시달리며 격정적인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갔던 인물이다. 차지연은 바로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춰 살리에르라는 인물을 해석하고, 공감에 기반한 감정들로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살리에르의 마음을 십분 공감했어요. 충분히 아름답고 재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만 보면서 자학하잖아요. 누구나 스스로를 작게 보고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살리에르가 안타까웠죠. 저 역시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 단점만 보면서 스스로를 못난이 취급하고 사랑해주지 않던 세월이 길었어요. 모두 살리에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배우로서 재능이 타고난 듯 보이는 차지연은 살리에르보단 모차르트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간 맡았던 역할만 봐도 주체적으로 운명 개척하려는 인물들이 많았고, 무대 위 모습들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실제 차지연은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하는 의심쟁이에 겁쟁이다. 15년간 늘 압박감에 시달리며 무대에 올랐고, 그것을 동력으로 성실함을 우선으로 하는 습관을 들였다.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해요. 그래서 작품 때마다 무서워하고 겁내고 두려워하죠. 그런 감정이 커질 때는 문제가 발생할 정도예요. 10년 넘게 했으면 자신감을 가지고 편하게 할 수 있는데 한 작품도 그러지 못했어요. 재연, 삼연에 참여하더라도 새로운 걸 찾아내 보여드려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들이 있어요. 저의 심각한 병이죠. 그래서 주변 분들이 고생을 해요. 반면 그렇다 보니 작품을 할 때마다 겸손한 자세로 타협하지 않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성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라는 생각이 제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요.”

차지연,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스스로를 겁쟁이라 밝힌 모습과는 달리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데뷔 후 처음으로 드라마 출연을 확정하며 무대에서 안방극장으로 연기 영역을 넓힌 것이다. 오는 4월 9일 방송 예정인 SBS 새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에서 지하 금융의 큰 손인 ‘대모’ 역을 맡았다. 웹툰이 원작인 ‘모범택시’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차지연은 이제훈, 이솜, 김의성 다음으로 출연 배우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극중 악의 축을 담당하는 인물인 만큼 비중 있게 그려질 전망이다.


“‘모범택시’에서 맡은 역할은 어둠의 세계를 장악하는 대모예요. 미스터리한 인물이죠. 악행을 아주 편하게 저지르는데 대모 입장에선 그 악행들이 그냥 일상일 정도로 센 캐릭터예요. 일단 분위기로 압도해야 하는 캐릭터라서 잘 전달 될지 모르겠어요. 캐릭터에 걸맞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드라마 촬영은 처음이다 보니까 현장 스태프와 소속사 식구들이 많이 챙겨주고 있어요. 행복하게 감사하게 찍고 있어서 제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잘 와닿았으면 좋겠어요. 웹툰 원작 속 캐릭터보다 좀 더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데뷔 15년 차를 맞은  차지연은 지난날을 회고하기도 했다. 인간적으론 후회가 많은 삶을 살았다고 털어놓은 그는 ‘좋은 배우’에서 ‘좋은 사람’으로 다가설 것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날들은 인간적으로는 후회가 많이 돼요.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걸 너무 무서워했어요. 그때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많은 분들과 편하게 관계를 맺고 작업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갖추고 있기에 이제라도 좋은 사람으로 인연을 잘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도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번엔 가수다. ‘뮤지컬계 디바’ ‘젠더프리의 선두주자’ 등 변화무쌍한 것이 바로 차지연의 매력.를 톺볼 가치가 있는 천생 예술가다. 
 
“사실 소속사에선 모르고 있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언젠가 좋은 곡들이 많이 쌓였을 때 뮤지컬 넘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으로 찾아뵐게요.”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


CREDIT 글 | 한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