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옥,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한 '청춘'

'철인왕후'서 코믹과 정극 오가는 '명불허전' 연기

2021.02.18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지난 14일 막을 내린 tvN 주말극 ‘철인왕후’(극본 박계옥, 연출 윤성식)는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 집계로 마지막회가 17.4%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는 철종의 아내 철인왕후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현재의 남자 영혼이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조선시대로 간다는 판타지 설정이 있었고, 조선시대 왕궁의 모습을 지나치게 축약해 표현하는 바람에 역사왜곡 논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퓨전사극의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작품이 됐다.

물론 어느 드라마가 다 그렇듯 초반에는 코믹터치로 그려지던 인물들이 중간 이후부터 극 안에 감춰진 음모가 드러나는 상황에서는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를 갖고 움직인다. ‘철인왕후’는 철종이 비운의 왕이 아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은 개혁군주였다는 설정으로 끝이 났다. 백성을 위하는 왕이 최고의 왕이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서 드라마는 지나치게 가벼워서도, 또 지나치게 무거워서도 안 된다.

베테랑 연기자로서 ‘철인왕후’에서 중심을 잡았던 이가 바로 극중 왕의 할머니 대왕대비 순원왕후 역을 맡았던 배우 배종옥이다. 배종옥은 극중 철인왕후(신혜선)가 코믹한 분위기로 등장할 때는 그를 의아해하면서도 코믹하게 받아줬고, 극이 왕권과 권세가 있는 가문의 대결로 치달을 때는 표독함을 강조해 긴장감을 배가했다. 극에는 또 하나의 악역 김좌근 역 김태우가 있었지만 그는 시종일관 비정했고 날카로웠다. 결국 극이 코믹과 정극을 오가는 큰 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고참급 연기자였던 배종옥의 유연한 연기가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제공=tvN


우리는 배종옥이라는 연기자를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우리 나이로 58세, 환갑을 지척에 둔 여자연기자가 흔히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로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20대 때는 '도시인' '여자의 방' 같은 드라마에서 '신세대'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할말을 다 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도시여성의 표상이었다. 또한 30대 때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김지수처럼 순수한 모습도 있었고, 드라마 ‘호박꽃 순정’ 강준선처럼 팜므파탈의 모습도 보여줬다. ‘그들이 사는 세상’ 윤영처럼 깐깐한 모습과  ‘천하일색 박정금’의 박정금처럼 수다스럽고 억척스러운 모습도 자유자재로 오갔다. 보통 연기자가 일정 이상의 나이를 먹게 되면 빠져드는 전형성에 빠지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의 행보를 더듬어 보면 그러한 경향은 더욱 진하다. tvN ‘60일, 지정생존자’, MBN-드라맥스 ‘우아한 가’ 등의 현대극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연기했지만 영화 ‘결백’에서는 기억을 잃은 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할머니를 연기했다. 영상과 연극 등 매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도 있어 지난해 막을 내린 코미디 연극 ‘꽃의 비밀’에서는 코믹스러운 모습을 강조한다. 어떤 형태로든 의미있는 역할로 1년에 한 작품 이상을 꾸준히 해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배종옥의 행보는 연기 안에 갇히지도 않는다. 2014년 SBS ‘룸메이트 시즌2’를 통해 처음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했던 그는 2016년 MBC ‘복면가왕’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는 가명으로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아는 형님’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꼭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다. 2019년에는 서른 살이나 어린 지코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코가 막연히 떠올렸던 이미지에 있던 배우였지만 후배의 제안에 그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드라마 '우아한가'(왼쪽 윗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결백', 드라마 '철인왕후', 연극 '꽃의 비밀'.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로 가는 중이다. 안방극장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미 TV라는 매체에서 벗어나있는 젊은 세대는 다양한 상상력과 장르를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형’ 드라마로 옮겨가고 많은 채널들은 그들의 기호를 맞추려하고 있다. 하지만 한 편에는 아침드라마,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중장년층의 관성에 기댄 천편일률적인 플롯의 드라마들이 양산되고 있다. 중장년 이상의 배우가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하게 시류에 편승하거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박제해놓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배종옥은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중력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그는 그의 이름을 건 연기학원의 원장이기도 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우는 언제나 작품에 투신해야 하고 그 한계는 정해놓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계속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비록 그를 하나의 정해진 이미지로는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그가 한 명의 치열한 배우였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철인왕후’는 그 연기의 넓은 폭을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2021년 그가 할 도전, 맡을 배역이 자연스럽게 기대된다. 그는 또 어떤 새로운 도전으로 세월의 속도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