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의 '미나리' 홀대, 오스카까지 이어질까?

미국 영화이면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아이러니

2021.02.04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판씨네마


"바보 같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 측이 3일(현지시각)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발표한 것을 두고 현지 유력 매체인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비판했다. 왜일까? ‘미나리’라는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한 데다 그들의 평가 기준 역시 매우 편협했기 때문이다.

#‘미나리’가 왜 외국어영화인가?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미나리’는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들의 정착기를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윤여정, 한예리 등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영화 ‘버닝’으로 잘 알려진 스티븐 연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영화사 플랜B가 제작한 명백한 미국 영화다. 플랜B는 ‘문라이트’, ‘노예 12년’ 등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배출한 명문이다. 

그러니 뉴욕타임스가 "리 아이작 정은 미국인 감독이고, 이 영화는 미국에서 촬영됐으며, 미국 회사가 자금을 지원했다"며 "(이를 주관하는) HFPA가 바보같아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물론 HFPA도 할 말은 있다. 이 단체는 영화 속 대화의 50% 이상이 비(非) 영어로 구성될 경우 외국어영화로 분류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는 한국어 대사가 많을 수밖에 없고, 영어를 쓰는 관객들은 자막으로 그 뜻을 이해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HFPA는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을 뒤집는 증거를 보여줬다. 미국 온라인 매체 인사이더는 "골든글러브는 후보작 명단 아래 영화를 만든 출신 국가를 써놓아 상황을 더욱 우습게 만들었다"며 "‘미나리’를 만든 나라는 ‘미국’으로 나온다"고 일침을 놓았다. 주최 측이 직접 ‘미국 영화’라 규정해놓은 후, 정작 후보에 올릴 때는 외국어영화로 규정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사진제공=판씨네마


#왜 윤여정은 배제됐나?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그의 연기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전미 비평가위원회 뿐만 아니라 LA, 보스턴, 노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콜럼버스,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샌디에이고, 뮤직시티,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루이스 등 미국 전역에서 20개가 넘는 여우조연상을 챙겼다. 그래서 골든글로브에서도 윤여정의 ‘후보 선정’이 아니라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정작 윤여정은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미나리’의 출연진은 후보 지명을 받을 만한데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성토했고, 미국 연예전문지 엔터테인먼트도 "더 큰 충격은, 여우조연상 부문의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윤여정은 조디 포스터의 깜짝 지명을 위해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여정이 후보에서 배제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그동안 골든글로브가 보인 성향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순 있다. 백인 감독과 배우를 더 높게 평가해 ‘오스카소화이트’(Oscar so white)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골든글로브는 백인 중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흑인 감독이나 배우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기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를 가진 시상식에서 생소한 동양인 배우가 연기상을 받는 것을 꺼린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던 윤여정은 영어 소통이 능숙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미나리’에서는 영어에 서툰 할머니를 연기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어권 관객이나 심사위원들이 한국어 연기를 하는 윤여정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평가하기에는 이미 20여개 여우조연상 트로프가 윤여정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며 "지난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여러 부문을 석권했던 ‘기생충’이 정작 연기상 수상자는 거의 배출하지 못했듯 인종과 언어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제공=판씨네마


#골든글로브의 성과, 아카데미에 영향 미치나?

골든글로브는 통상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린다. 골든글로브에서의 성과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시기적으로 봐도 2월말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끝난 후 아카데미는 3월 후보작 발표 후 4월 시상식을 연다. 


연기상만 놓고 본다면 흐름이 한번 꺾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두루 섭렵하며 아카데미를 향해 달려갔던 반면, ‘미나리’는 윤여정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강했다. 게다가 한국 배우가 아직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 컸다. 그러나 골든글로브가 그를 후보에도 올리지 않으면서 ‘김빼기’를 한 셈이다.

물론 실망하긴 이르다. ‘기생충’의 경우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ㆍ감독상ㆍ각본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감독상·각본상 부문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정작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모조리 수상한 데 이어 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

골든글로브 후보작 발표를 두고 현지 언론의 혹평이 쏟아지는 것도 ‘미나리’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한 것과 연기상 부문에서 배제한 것에 대한 언론의 질타와 영화 관객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아카데미 측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나리’를 두고 미국 현지 언론은 "‘기생충’에 이어 오스카에서 주목할 작품"(Deadline Hollywood Daily), "국경을 초월한 최고의 영화"(Vague Visages),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진실하고 따뜻한 이야기"(LA Times), "이 영화는 기적이다"(The Wrap), "자전적인 영화에 대한 아름다운 롤 모델로 남을 작품"(Rolling Stone), "마음 따뜻한, 착한, 그리고 완벽한"(Awards Radar) 등의 찬사를 내놨다. 이제는 아카데미가 답할 차례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