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56년째 '죽여주는' 배우

'미나리'로 16관왕 등극! 오스카로 GO

2021.01.2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판씨네마




역시 ‘죽여주는 여자’다.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를 통해 북미에서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눈앞에 두고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거듭 수상 소식을 알리고 있다. LA, 보스턴,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루이스 등 각 도시마다 비평가협회 등에서 받은 상을 모아보니 어느덧 벌써 16관왕이다. 딱히 라이벌이라고 부를 법한 작품이나 배우도 없는 터, “미리부터 김칫국 마시지 말아!”라고 한 마디 쏘아붙일 게 눈에 선하지만 감히 예상컨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지명을 넘어서 수상이 유력해 보인다.


영화 ‘여배우들’에서 한류 여신으로 활약 중인 후배들에게 “난 재래시장이나 지킬게”라 톡 쏘던 윤여정. 하지만 유럽의 칸국제영화제는 물론이요, 미국 오스카의 레드카펫까지 올라서게 됐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인터뷰 때 “인생이 내 계획대로 안 된다”고 투덜대던 것이 불과 4년 전의 기억인데, 정말 그의 인생은 계획대로 안 돌아간다. 예상보다 그리고 마음먹은 것보다 훨씬 엑설런트하게 흘러간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에 우뚝 서길 바라는 응원이 간절한 건 그가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아픔을 겪어봤기 때문일 터다. 영화 ‘미나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듯, 그 역시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심했을 70년대에 백인들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미국 사회 속 한국인이었다. ‘윤식당’이나 ‘윤스테이’에서 보여줬던 윤여정의 영어실력이 대단했던 이유다.(아이러니컬하게 영화 속에선  영어 한마디 못하는 할머니 역할이다)

도회적이고 우아한 이미지와 달리 결코 편하지만 않았던 인생, 가장 부침이 심했을 한 페이지인 미국땅에서 최고의 영화 어워즈에 선다는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괜히 벅차오른다. 아마 평소 주옥같은 멘트와 위트를 선보이는 윤여정이라면 봉준호 감독을 넘어서는 어록들을 남기며 대한민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을 만들 것이 분명하리라.

사실 요즘 10대 그리고 20대에게 배우 윤여정의 모습은 그의 경력에 비해 생각보다 낯설 수도 있다. 그저 평범한 배우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의 영화(榮華)가 가당키나 했을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가 여럿 있었고, 대중성보다는 작품성을 따지는 작품도 많았다. 하여 그들에겐 ‘윤식당’의 시크한 셰프, ‘윤스테이’에 말도 많고 정도 많은 사장님이 더 익숙할 터다. 허나 괜찮다. 데뷔 55년을 내세워 소위 꼰대처럼 자신의 발자취를 알아 봐주길 바라는 어른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사진제공=판씨네마


“멋있는 사람보다는 재미있는, 웃기는 여자라는 소리가 더 듣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던 윤여정이다. 그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모습이 영화이든, 예능이든 딱히 장르가 중요할 일이 아니다. 카메라 앞이라 하여 딱히 체면을 따지거나 가식을 챙기지 아니한다.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은 아니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면 일단 부딪힌다. 물론 그 도전엔 친분도, 금전도, 여타 여러가지 사정이 함께 한다 말하지만 결국 특유의 궁시렁과 함께 자신의 능력 밖의 임무까지 훌륭히 완수한다. 그렇게 늘 진실로 노력하며 다가오기에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그를 마주하든 오롯한 윤여정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인간 냄새에 누구나 홀딱 반하고 만다. 

언제부턴가 윤여정을 인터뷰할 때면 테이블 위에 손수 만든 여러 주전부리가 놓여 있기 마련이다. “말을 많이 하면 당이 딸려서”라 말하고,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로 들으면 되는 기분 좋은 선물이다. 한참 어린 연배와 대화하면서도 세월의 위세보다는 그런 나눔과 배려로 어른의 매력을 전한다. ‘윤스테이’를 찾은 손님들에게 듣기 좋은 빈말보다 시크한 조크를 날리지만, 하나라도 더 맛있는 것을 챙겨주고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하는 윤 사장의 모습은 방송으로 급조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죽여주는 여자’로 이야기할 때 당시 영화의 주제가 주제인지라 존엄사, 그리고 죽음에 대해 꽤 깊은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거라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당연하듯 사람도 85세쯤 되면 육체나 정신이 내리막길로 향해 가기 마련이라고. 하여 죽음에 대해 초연한 자세로 일관했던 기억이다. 올해 그의 나이가 한국 셈으로 75세. 허나 그 숫자가 가슴에 그리 와닿지 않는 건 언제나 “Be yourself”를 외치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살아갈 윤여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식상한 문구에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힘들다”라고 덧붙일 테지만, 앞선 말에 가장 어울리는 이도 바로 본인일 터. 앞으로도 오랜 시간 죽여주는 여자로, 죽여주는 배우로 우리 가슴에 심멎주의를 새겨주길 바란다. 

권구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