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판을 다시 짜는 진정한 '예능의 신'

'놀면 뭐하니?'서 카놀라유와 함께 판 뒤엎는다

2021.01.21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MBC




지난해 12월29일 전파를 탄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이날 대상으로 커리어 통산 16번째의 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총 8분39초의 긴 수상소감을 말했다. 이 수상소감은 이후 방송가에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는데, 물론 지난해 세상을 떠난 후배 개그우먼 박지선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있었지만 막을 내린 KBS2 ‘개그콘서트’ 이후 무대를 잃게 된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유재석은 이 자리에서 “후배들을 위한 아주 자그마한 무대라도 하나 만들어주시면 좋겠다”고 MBC 경영진과 편성관계자들에게 부탁했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채널 등을 포함해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내는 그의 입장에서 굳이 이런 부탁을 할 이유는 없었지만 유재석의 어조는 단단했다. 물론 이 부탁이 어떤 식의 결과를 맺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일단 그의 영향력 안에 있는 MBC ‘놀면 뭐하니?’ 안에서는 변화의 기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가 또 다른 부캐 ‘카놀라 유’를 통해 유재석이 진행하는 예능쇼 론칭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배우 조병규를 비롯해 김소연, 영화감독 장항준, 개그맨 이진호, 랩퍼 이영지, 미국인 출신 가수 그렉 등이 등장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예능 유망주를 발굴해 자신의 예능쇼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들의 연착륙을 돕는 이벤트를 일굴 예정이다.

따지고 보면 유재석은 지금까지 다양한 예능 유망주를 건져 올려 기존 방송가에 중계하는 역할을 했다. 그 시작은 2000년대 인기 프로그램 ‘X맨’이 시초였던 듯하다. 당시에는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의 형태로 집단 출연자들이 나와 장기를 겨루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가수와 개그맨, 배우들이 ‘예능인’으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입었다.

사진제공=MBC


2000년대 중반 막을 올린 MBC ‘무한도전’도 예능인 발굴에 꾸준히 노력했다. 2009년 무인도로 떠난 ‘서바이벌 동거동락’을 시작으로 2012년 ‘못.친.소 페스티벌’, 2013년 ‘여름 예능캠프’와 ‘쓸.친.소 페스티벌’, 2015년 ‘식스맨 특집’ 등은 모두 그 형식은 갖가지였지만 묻혀있는 예능 유망주를 발굴한다는 취지는 비슷했다. 결국 이러한 형식을 통해 발굴되고 화제가 된 이들은 이후 전업 예능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새로운 활동의 지평을 열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후 유재석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습도 우리는 자주 봐왔다.

물론 지난해 유재석의 수상소감대로라면 코미디언들을 위한 공개 코미디 무대를 만드는 일이 가장 취지에 맞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개 코미디의 시효는 이미 오래 전에 만료된 듯하다. 1시간을 꾸리기 위해 40~50명의 출연자가 필요하고, 이들에게도 일주일 내내 회의와 연습이 필요한 공개 무대는 ‘짜 맞춘 것’을 싫어하는 최근 대중의 기호와 출연자들이 느끼는 비효율 체감치가 크기 때문에 쉬운 대안이 될 수 없다. 유재석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무대를 잃은 후배들에게 예능인으로 나가는 물길을 터주면서 그들의 업그레이드를 돕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한 듯하다. 판이 벌어진다면 일단 유망주가 모일 것이고 이 자리에서 기회를 얻는 이들은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유재석이 꿈꾸는 새로운 예능인의 수급은 십 몇 년째 정체돼 있는 방송가의 예능인 판도와도 관련이 깊다. 지난해 이미 체험한 독자분들이 많겠지만 지상파 방송 3사의 예능관련 시상식 특히 대상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예능인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 부각되기 시작한 양세형이나 전현무 등도 따져보면 양세형이 2003년 SBS 7기 특채로 경력이 20년을 바라보고 있고, 전현무도 2006년 KBS 공채 32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거의 비슷한 시기부터 예능밥을 먹기 시작했다. 2010년대 특히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부각되는 예능 유망주를 찾는 일이 굉장히 어렵게 됐다.

사진제공=MBC


결국 유재석이 ‘카놀라 유’라는 부캐로 꿈꾸는 큰 그림은 계속 방송가에 새로운 예능인을 수급하면서 신선함을 더해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는 우연히도 지금의 방송가 변화의 추세와도 떼놓을 수 없다.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는 1960년대부터 시작돼 50년이 넘게 유지됐던 방송사 의무편성비율을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지상파가 뉴스와 교양, 예능, 드라마 등을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인데 이것이 폐지되면 방송사 마음대로 편성이 가능하다.

가장 축소될 것이 유력한 것이 단위시간 당 제작비가 많이 들면서 최근 급격하게 시청률과 광고수주에서 하락세를 겪고 있는 드라마다. 그 자리를 가벼운 교양이나 예능 등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채울 수 있는 장르가 들어설 것이 유력하다. 이렇게 시장이 늘어나면 수요도 늘어난다. 유재석의 그림은, 물론 본인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단순한 세대교체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2021년 예능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유재석의 예능쇼는 신년벽두부터 올해 예능판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작은 시험대가 될 것이 유력하다. 2021년 예능의 지금 바로 현재는, 유재석에게 물어야 한다.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