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ㅣ 유진, 인형의 틀을 깨고 배우로 거듭나다 ③

2021.01.07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SBS


아주 전형적인 캔디형 캐릭터일 줄만 알았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착하고 씩씩한 모습을 잃지 않는 김순옥 드라마에 단골로 나온 착한 흙수저 여주인공일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건 철저한 오산이었다. 한층 진화된 김순옥 월드에 출몰한 새로운 유형의 변종 캔디라고 할까.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없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선과 악을 오가는 극적 서사를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수많은 화제를 양산하며 시즌1이 끝난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에서 마지막회까지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오윤희(유진)의 이야기다.


방송 내내 모성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오윤희가 자초한 파국에 시청자들은 배신감, 실망감, 안쓰러움, 안타까움,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복수를 완성하지 못하고 비운의 생을 마감한 심수련(이지아)에 대한 안타까움에 시즌2에서 오윤희가 로건 리(박은석)와 함께 펼칠 것으로 보이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뺨치는 복수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연기할 시즌1에서 배우로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배우 유진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진제공=SBS


사실 ‘펜트하우스’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진의 존재감은 커 보이지 않았다. 함께 주연을 맡은 이지아, 김소연에 비해 배우로서 중량감이 떨어져 보이고 이들이 연기할 심수련, 천서진에 비해 오윤희 캐릭터가 다소 밋밋해 보였기 때문. 걸그룹 SES 활동을 끝낸 후 연기자로 데뷔해 늘 1번 여주인공을 독식해온 그가 왜 출연자 크레디트 3번에 위치한 오윤희 역할을 맡았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라는 게 설득되지 않는 청춘물 여주인공의 톤을 벗어나지 못한 듯한 유진의 연기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지아, 김소연에 비교되면서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져만 갔다.


그러나 김순옥 작가는 유진과 오윤희를 위한 아주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 어차피 돌고 돌아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올 걸 알고 있던 걸까? 유진은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 차곡차곡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리며 ‘오윤희’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오윤희가 심수련의 도움으로 인생역전하고 복수극에 선봉에 나서 맹활약을 펼칠 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오윤희의 편이었다. 가난과 천서진과의 악연에 모든 꿈을 접어야 했던 오윤희가 심수련의 복수를 도우면서 딸 배로나(김현수)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박복해도 어찌 그리 박복할 수가 있을까? ‘펜트하우스’는 오윤희가 그리 빨리 행복을 꿈꿀 세상이 아니었다. 오윤희가 심수련의 복수극를 펼친 진짜 이유인 친딸 민설아(조수민)를 죽인 진짜 범인인 게 드러나면서 드라마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던 오윤희가 그날 사건의 진실을 깨달으면서 흑화하는 모습은 안방극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브레이크가 망가진 폭주기관차처럼 전속력으로 폭주하는 드라마 속에서 유진은 비로소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의 진가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사진제공=SBS


유진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오윤희의 드라마틱한 삶의 행적을 가슴이 절절할 정도로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오윤희가 아무리 흑화돼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그 본심을 알기 때문. 꼬일 때로 꼬인 잡초 같은 인생에서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보려는 모습은 못된 짓을 해도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절대악’ 주단태(엄기준)를 유혹하며 심수련을 배신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결코 정당화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펼치지만 유진의 호연 덕분에 시청자들이 오윤희를 안타까워하고 측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연기자로서 승부수를 던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혼신을 다한 유진의 열연은 탄성을 자아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오윤희가 로건 리와 펜트하우스의 절대악 군단에 맞선 복수극의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시즌2 방송 시작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유진이 2002년 ‘러빙유’로 연기자로 전업한 지도 내년이면 20년. 그동안 수십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 꾸준한 사랑을 받았지만 도전하기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는 안정된 선택을 해왔다. 그래서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새길 만한 대표작을 꼽기가 쉽지는 않다. 그동안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닌 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펜트하우스’ 오윤희를 통해 비로소 배우로 거듭났다. 이러기에 ‘펜트하우스’에서 배우로서 성장해가는 유진의 도전이 더욱 빛을 발한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대부분 방송이 끝난 후 착한 여주인공보다 악녀 캐릭터가 더욱 오랫동안 회자되는 게 사실. 그러나 유진의 오윤희는 선과 악을 모두 품었기에 악녀 천서진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을 듯싶다. ‘펜트하우스’를 기점으로 연기인생의 제2장을 쓰기 시작한 유진의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최재욱기자 jwch69@ize.co.kr



CREDIT 글 | 최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