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오랜 기다림에 더 빛난 찐 '대상'

25년 힘찬 발걸음 끝에 '대상' 역 도작

2021.01.0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KBS 연예대상 방송캡처



"난 꿈쩍도 안 할 거다."

김숙다운 ‘진짜’ 수상 소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24일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품에 안았다. 데뷔 25년 만에 거둔 쾌거다. 이날 김숙은 "상상도 못했다. 대상 수상이 장난처럼 제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며 "여기가 25년 전에 공채로 들어와서 처음 상을 받았던 곳인데 큰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인 속내였다.
 
28일 김숙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는 다시금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꿈인 줄 알았다. 꿈인 줄 알고 일어나서 휴대전화를 다시 확인했다"며 "(대상을 받아도) 내 인생은 똑같다. 난 꿈쩍도 안 할 거다. 들뜨지도 않고, 그대로 있을 거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대상 수상을 실감한 후 그가 또 다른 25년을 기약하며 전한 다짐이라 할 수 있다. 찬찬히 지난 그의 25년을 살펴보면, 김숙은 들뜨지 않고 25년 간 아주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올라왔다. 그렇게 밑짐이 든든하니 웬만한 외력에도 그는 꿈쩍 않을 것이다.

#원조 ‘센 언니’, 그는 약한 적이 없었다


최근 방송가가 선호하는 캐릭터 중 하나는 걸 크러시(girl crush) 혹은 ‘센 언니’다. 남성 중심적인 판을 깨고 강한 캐릭터로 승부하는 여성들을 칭한다. 하지만 김숙은 20여년 전부터 이 캐릭터를 고수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약했던 적이 없다.

김숙은 1995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후 해당 방송사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가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에게도 무명의 시간은 있었다. 2002년 그의 시작을 알린 캐릭터인 ‘따귀소녀’로 주목받기까지 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따귀를 맞았을 때 얼굴과 머리칼이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캐릭터는 반항아 이미지를 극대화하며 웃음을 자극했다. 그 때부터 ‘김숙표(標)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듬해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로 이적한 김숙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타 방송사에서 선보였던 따귀소녀를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됐지만, ‘난다김’이라는 새로운 옷 또한 그에게 썩 잘 어울렸다. 따귀소녀가 어른이 된 후 경제적 부를 축적했다면 난다김이 됐으리라. 당시 세간을 뒤흔든 ‘린다김’을 패러디한 이 캐릭터를 선보인 김숙은 "4000만 땡겨줘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재차 대중의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됐다. 이 유행어를 활용한 노래까지 발표할 정도였다. 


이러한 김숙 특유의 캐릭터가 정점에 올랐다고 평가받은 프로그램은 종합편성채널 JTBC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이하 님과 함께)이다. 여기서 그는 동료 방송인인 윤정수와 가상 결혼 생활을 통해 생활력 강하고 주도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며 ‘가모장’이라는 트렌드를 일궜다. 한국 전통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가부장’에 대한 반발처럼 등장한 이 키워드는 그 해 방송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진출처=김숙TV 캡처


이 프로그램은 리얼과 가상을 절묘하게 오가는 관찰 예능을 표방하기 때문에 대중이 느끼는 쾌감은 더 컸다.  실제로 개인 파산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정수를 향해 김숙은 "남자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패가망신한다"고 꾸짖고 "돈은 알아서 벌어올 테니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을 하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식이다.

김숙이 더욱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이런 그의 유머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막말’을 통해 상대방을 당황시키며 웃음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김숙은 강한 어조를 풍기되, 시의적절한 상황극과 농도 조절로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솜씨가 탁월하다. ‘강한 여성’을 표방할 뿐, 남성에 대한 반발 심리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에게 대상을 안긴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와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도 할 말을 하는 캐릭터로 존재할 뿐, 한 쪽 성별의 편을 드는 편향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김숙,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다

김숙은 카메라 밖 행보 역시 주목받았다. 동료들의 토크를 통해 공개된 그의 일화는 웃음과 동시에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거북이’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사오라는 선배의 지시에 "난 거북이 싫어"라고 말하고, 담배 심부름을 시키며 10만 원을 건넨 선배에게 담배 10만 원 어치를 사줬다는 것은 레전드급 에피소드다.

이는 단순히 김숙의 반항기로 볼 순 없다. 그의 신인 시절이던 1990년대는 희극인실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다. 선배들에게 얼차려를 받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는 일화가 수두룩하다. 당연히 이를 두려워 한 후배들은 ‘알아서 기는’ 문화가 형성됐다. 하지만 김숙은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았다. 지금은 신인 시절 김숙의 독특한 행보 정도로 읽히지만, 선배들의 기세가 서슬 퍼렇던 그 당시 김숙의 이러한 언행은 옳지 못한 시스템에 대한 반기이자 이를 무너뜨려 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오랜 기간 방송가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왔다. 연예대상 역시 이경규,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남성들의 독차지였던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과 더불어 여성 방송인을 중심에 세운 프로그램도 늘어났고, 이영자와 박나래 등이 배턴을 이어받듯 연예대상을 받았다. 결국 그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기회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리고 김숙은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단짝인 송은이와 함께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회사를 꾸리며 판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다. 두 사람은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하고 직접 설계자로 나섰다. 팟캐스트 ‘비밀보장’이 그 결과물이다. 이 프로그램은 4년간 방송된 SBS 러브FM ‘언니네 라디오’로 이어지기도 됐다. TV를 통해 스타가 된 후 다른 영역으로 활동폭을 넓히던 과거와 달리 타 플랫폼을 통해 인기를 얻은 후 방송사로 입성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콘텐츠랩 비보를 통해 예능 ‘밥블레스유’와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 등을 방송사와 공동 제작했다. 스스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여성 예능 전성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 쟁취해낸 결과라 볼 수 있다"며 "특히 기획력과 캐릭터 소화력이 뛰어난 김숙은 그 중심에 서 있으면, 그의 대상 수상은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