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2020 l 존재감을 밝힌 특별한 아이돌 ③

2020.12.31 페이스북 트위터

더 보이즈 주연, 사진제공=크래커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시장이 과포화라는 이야기도 10년이 넘어간다. 누적으로 치면 과포화의 과포화 상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한 시장에는 아직도 한 해 수십 팀의 새로운 이름마저 추가된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뭔지를 헷갈리는 걸 넘어 그룹명조차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그래도 빛나는 별들은 꾸준히 태어난다. 2020년 한 해, 자신만이 가진 빛과 노력으로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간 특별한 아이돌 멤버들을 모아봤다. 

# 더 보이즈 (The Boyz) - 주연

미니 5집 ‘The Stealer’ 무대에 선 주연은 확실히 무언가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훵키하고 타이트하게 쏟아지는 비트를 그보다 더 타이트한 가죽 의상으로 그대로 받아낸 그의 몸짓과 표정에는 전에 없던 독기와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한 해이기도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서바이벌인지 알 수 없었던 ‘로드 투 킹덤’ 우승이 남긴 상처뿐인 영광, 서버 문제로 인해 무료로 전환된 첫 온라인 콘서트 등 크고 작은 악재들을 딛고 그는 곡의 중심에 섰다.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는 주연은 젊은 육체와 제철을 만난 아이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과 탄력 모두를 쏟아부으며 무대 위를 구르고 누볐다. 곡의 엔딩, 카메라를 뚫어질 듯 응시하며 런웨이처럼 무대를 가로지르다 몸을 뒤집어 일으키는 강렬한 독무는 과연 그 기개의 정점이었다. 

카드 전지우, 사진제공=DSP엔터테인먼트


# 카드 (KARD) – 전지우

2019년 ‘컴백전쟁: 퀸덤’이 있었다면, 2020년에는 ‘굿 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가 있었다. 방송국이 차려놓은 상에 수저만 얹은 것이 아닌 준비된 빈 테이블에 출연자들이 직접 상을 차려 동네잔치까지 벌인 두 프로그램은 덕분에 지금껏 알려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숱한 화제의 이름을 낳았다. 카드의 전지우는 ‘굿 걸’을 통해 재조명된 케이팝의 대표적인 숨은 보석이다. 이영지, 제이미, 윤훼이 등 지금 장르 음악신에서 촉망받는 젊은 여성 음악가들 사이, 그는 지난 4년여간 전 세계를 누비며 온몸 구석구석 쌓아둔 내공을 자신 있게 펼쳐 보이며 누구보다 빛나는 프로그램의 주역이 되었다. 솔로로 꾸민 크리스 브라운의 'Take You Down'과 치타, 효연, 제이미, 장예은(CLC)과 호흡을 맞춘 ‘마녀사냥(WITCH)’ 무대는 올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영상임은 물론 카드의 막내가 아닌 솔로 전지우의 카리스마를 세상에 제대로 선보인 의미심장한 한 방이었다. 

위키미키 도연, 사진제공=판타지오뮤직


# 위키미키 (Weki Meki) – 도연 


도연이 소속된 그룹 위키미키의 캐치프레이즈는 ‘틴크러쉬’였다. 10대를 뜻하는 틴(Teen)과 이제는 케이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제가 된 ‘걸크러쉬’를 섞어 만든 이 단어는 얼핏 의미가 명확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개념이었다. 데뷔 1, 2년차 여성그룹들이 ‘난 나야’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그렇게 얼핏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보이던 이들 앞에, ‘COOL’이 등장했다. 그리고 ‘쿨’은 도연을 위해 준비된 단어였다. 그 언제보다 매력적인 눈빛과 거친 기세로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카메라를 응시하는 도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란 좀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가 처음 주목 받았던 서바이벌 예능 ‘프로듀스 101’의 ‘같은 곳에서’ 무대가 문득 떠오른다. 어떻게 해도 촉촉할 수 밖에 없었던 처연한 서사의 엔딩에서, 도연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꼿꼿하고 쿨한 자세로 오로지 정면을 응시했다. 그 숨 막히는 순간이 다시 돌아왔다. 

골든차일드 장준, 사진제공=울림엔터테인먼트



골든차일드 (Golden Child) – 장준

이제는 팀마다 하나씩 필수라는 아이돌 예능캐 중에서도 장준이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어찌 되었건 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정글보다 험난한 아이돌 예능 세상에서 그는 ‘선을 넘는’ 아이돌이 아닌 ‘선에 걸친’ 아이돌을 택했다. 디지털 미디어 ‘딩고(Dingo)’와 함께 만든 단독 예능 콘텐츠 ‘장스타’에서, 장준은 ‘시키는 건 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돼요’ 자세로 소속사 임원에서 유튜브 스타, 길거리 시민 등 다양한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아이돌로서는 다소 과한 자유도의 말투나 행동도 어쩐지 밉게 느껴지지 않은 건, 장준이 보유한 기막힌 선 걸치기 코어 덕분이다. 어디선가 선을 넘으려는 순간 극적으로 발휘되는 배려와 상식을 기반으로 한 기지와 타고난 긍정적 에너지는 그를 인터넷 예능에서 시사 예능까지 어디에 놓아도 자연스러운 인물로 만들었다. 더불어 아는 사람만 아는 장준의 훌륭한 무대 코어는 아이돌이자 퍼포머로서 장준이 가진 가장 큰 잠재력이기도 하다.

이달의소녀 츄, 사진제공=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 이달의소녀 (LOOΠΔ) – 츄

언제 어디서나 버튼만 누르면 포인트 안무를 추고 애교를 보여주는 것이 마치 아이돌의 의무인 것처럼 구는 불편한 세상에서, 츄는 그 모든 불편함을 찢고 나와 순도 100%의 사랑스러움으로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드문 존재다. 꼭 3년 전 같은 그룹의 멤버 이브와 함께 출연한 솔로곡 ‘Heart Attack’에서 보여준 호기심 많고 사랑 넘치는 소녀의 모습 그대로, 츄는 2020년에도 온 세상에 사랑을 뿌리고 다녔다. 선미, 하니, 유아, 청하와 함께 출연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달리는 사이’에서, 그는 멤버들을 처음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와 동시에 ‘너무 사랑해요’를 발사하며 다소 긴장된 촬영장을 온통 웃음으로 뒤덮이게 만들었다. 뒤이은 여행 첫날 밤 같은 침대를 쓰게 된 하니에게 ‘저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요?’라며 던진 돌직구에 단지 하니뿐만이 아닌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온통 무너뜨렸다. 만약 아이돌에게 사랑스러움이라는 포지션이 있다면 올해 그 왕좌는 응당 츄에게 주어지는 것이 옳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CREDIT 글 |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