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막장보다 더 무서운 격공 시월드

2020.12.16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카카오TV



왜 처가월드라는 말은 없으면서, 시월드라는 말은 존재할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뼛 속 깊게 박힌 가부장 문화에 대한 반영일 테다. 언어는 그 시대의 거울이나 다름없다. 시월드라는 단어에는 여성이 새로이 겪는 남성 중심의 결혼생활에 대한 서러움이 짙게 배어있다.

 

21세기판 시월드는 어딘가 미묘하다. TV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극성맞은 시어머니도, 무개념 시누이는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다.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막장 시월드 사연이 화제가 되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요즘 시대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부장 제도의 불평등, 그로 인한 정서적 폭력이 존재한다. 미묘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며느라기’는 바로 이 미묘하지만 중요한, 미묘해서 괴로운 결혼생활을 조명한다.

 

주인공 민사린(박하선)은 대학 동기 무구영(권율)과 애틋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사린은 구영과 함께 눈 뜨는 행복한 아침을 갖게 됐지만, 동시에 며느리로서 불편부당한 일들도 겪게 된다.

 

원작 웹툰에서도 큰 화제였던 ‘시어머니 생일상’ 에피소드는 결혼한 이라면 무릎을 치며 격공(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린은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시댁에서 전날부터 하룻밤 보낸다. 새벽부터 일어나 홀로 푸짐한 아침상을 차린 사린이지만 식탁에선 왠지 모르게 소외된다. 자신은 모르는 시댁만의 언어, 시댁만의 대화에 사린은 밥알을 묵묵히 입으로 옮길 따름이다. 그 누구도 사린에게 많이 먹어라, 회사 일은 어떠니, 아침부터 고생했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 없다.


사진제공=카카오TV

 

또 다른 대목 ‘갈치조림’ 장면도 격공을 불러일으킨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우리 구영이 갈치 좋아하지”라며 토실한 갈치를 밥 위에 얹어준 뒤, 며느리 사린에겐 무 한덩이만 덜렁 건넨 것이다. 시어머니로서는 의도한 바가 아닐 테지만 그 순간 사린의 가슴에선 묵직한 뭔가가 밀려온다. 말로 내뱉는 순간 쪼잔해 보일 것 같아 혼자 끙끙 앓는 명백한 차별에 자꾸만 서럽다. 모르긴 몰라도 사린은 시어머니로부터 무 조각을 받은 순간 친정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을 거다.

 

필자 역시 신혼 시절 비슷한 일을 겪었다. 고기가 넘치게 담긴 남편의 국그릇과 버섯만 한가득 담겨 있는 내 국그릇을 나란히 보며 친정엄마의 밥상이 그리웠다. 왜 친정엄마는 남편에게 맛있는 것 하나 더 못 먹여 안달인데, 시어머니는 내게 그렇지 않으시는 걸까. 왜 시어머니는 아들만 챙기는 엄마와 사위를 아들처럼 챙기는 장모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

 

영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긴 일들. ‘착한 며느리’이고 싶어 꾹 삼키고 눈 감은 순간들이 쌓여 당연한 차별, 당연한 불편함이 돼 버리고 만다.


사진제공=카카오TV

 

성씨 다른 며느리가 시댁 제사를 차리는 일, 아들에겐 새로지은 따스한 밥을 주면서 며느리에겐 남은 찬밥을 건네는 시어머니, 백화점에서 사 왔다면서 며느리에게 앞치마를 선물하는 시어머니. 출장 간 사위에게는 사골국을 끓여다 주면서, 며느리가 출장 간다니 아들 밥부터 걱정하는 시어머니. 결혼 전 인사하러 오지 않았다고 쓴소리하는 시댁 식구들. 오직 며느리만 느낄 수 있는 가부장 제도의 날카로운 아픔들이다.

 

드라마 ‘며느라기’는 웹툰을 대부분 그대로 옮겨왔다. 팬들의 격공을 불러일으킨 원작의 대사와 장면들이 디테일한 미술과 연기가 더해져 더욱 생동감 넘치게 전해진다. 박하선은 예쁨 받으려 애쓰던 며느리에서 결혼생활의 모순에 조금씩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린을 일상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권율 역시 얼핏 착한 남편 같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는 남편 구영을 안정적인 연기로 소화했다.

 

사린은 “참 사소한 문제인데 힘들다”라며 한숨 쉰다. 이처럼 ‘며느라기’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차별을 향해 물음표를 던진다. 내가 속 좁아 보일까 말 안 했는데, 이거 어딘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잘못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리 이 문제에 대해 대화 좀 해보자고 말이다.

 

김수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김수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