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황정민 임윤아가 그리는 '기자판 미생'

기자보다 회사원일 수밖에 없는 모습 잘 그려

2020.12.14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JTBC



'허쉬'는 “쉿! 조용히 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영어단어다. 


JTBC 금토드라마 '허쉬'(연출 최규식 극본 김정민)가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트린 와중에 제목처럼 조용히 지난 11일 밤 방송을 시작했다. 원작 침묵주의보(정진영 작가)는 2018년 출간된 소설이다. 제목만큼이나 조용히 막을 올린 이 드라마에 황정민이 출연을 한다고 해서 보았다.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황정민이 왜 갑자기 드라마에 출연했을까 궁금해서다. 그는 주로 영화나 연극, 뮤지컬에 출연해왔다.

 

“사람들은 우리를 기자라고 부르지만, 여기는 그냥 회사다.”

 

기자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자들의 이야기라기보단 정글 같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버텨가는 회사원들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였다. 제2의 미생(윤태호 원작. tvN 2014년 방송) 같은 이야기였다. 

 

황정민은 기자정신을 잃어버리고 단지 밥벌이를 위해 타성에 젖어버린 한준혁 기자를 연기했다. 임윤아는 인턴기자로 막 입사한 이지수. 과거에 황정민이 실수로 이지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악연이 있는 관계다. 그리고 단 2회 출연했는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오수연 역의 경수진. 그나마 제대로 기자정신을 지키며 사는 정의로운 여기자 양윤경 역의 유선. 썩은 언론의 상징인 나성원 역의 손병호. 소신을 지키며 살고 싶지만 좌천밖에 갈 길이 없는 정세준 역의 김원해. 정의와 비리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가장 현실적인 기자같은 엄성한 역의 박호산. 늘 방관자처럼 관조하기만 하는 햄릿유형의 인간인 김기하 역의 이승준까지.


사진제공=JTBC

 

1회엔 사건보단 주로 인물소개에 치중했는데, 주인공인 황정민와 임윤아 외에도 인물들이 모두 아주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살아있었다. 모두 우리 주위 어디선가 다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들의 모음이어서 더 현실감이 살아났다. 원작을 아직 보진 못했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경우 가장 힘든 작업이 캐릭터 구축이다. 소설 속의 캐릭터는 글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영상 속에 캐릭터를 녹여낼 땐 대사와 행동으로 짧게 압축해서 표현해내야 해서 더 힘들고, 어떻게 소설 속의 캐릭터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가 있어서다. '허쉬'는 캐릭터도 아주 좋았고, 특히 대사들이 아주 맛깔나게 살아있어 좋았다.

 

1회를 볼 때까진, 그냥 평범하게 그럭저럭 잘 만든 드라마구나 생각했다. 2회에서부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었는데, 1회는 가볍고 웃겼는데, 2회부터 분위기가 확 심각해졌다. 나쁜 쪽으로 심각해진 게 아니라, 좋은 쪽으로 확 깊어졌다.


2회는 오수연(경수진)이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등을 했는데도, 국장이 은밀히 한준혁(황정민)을 불러 그런 애가 우리 회사에 있으면 안 된다고 도려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바로 칸막이가 쳐진 옆 방에서 회식을 하던 네 명의 인턴이 그 말을 다 들어버린다. 그 안에는 오수연도 있었다. 설상가상, 다른 선배기자가 오수연에게 야간당직까지 맡기고 가버린다. 오수연은 기사에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유서를 작성하고, 신문사 건물에서 투신자살한다. 양심에 찔린 한준혁이 막 오수연에게 줄 커피를 들고 오던 길에 그 장면을 목격해버린다. 신문사는 그 기사를 막고 덮기에 급급하다. 지방대 나온 한 비참한 취준생의 죽음에 그 누구도 애도를 하지 않는 현실을 정말 날카롭고 뜨겁게 그려냈다. 2회에 와서야 왜 황정민이 출연했는지 이해가 갔다.

 

“쿵”하고 투신해서 차에 그대로 떨어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되, 시체나 피는 절대 보여주지 않고 한준혁의 관점에서 감정만 최대한 집중해 보여주었다. 기성세대들의 미안함, 난감함, 죄의식을 아주 깊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진제공=JTBC


인턴을 주기 위해 사 온 커피가 땅바닥에 엎어져 흘러넘치는 것으로 흐르는 피를 대신해 보여주는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다. 투신하는 오수연에 집중하는 장면이었다면 “어머”하고 놀라고 시청률도 조금 더 올랐겠지만, 오롯이 그 장면에서 황정민의 감정을 깊이 보여주는 걸 보고, 이 드라마가 무슨 주제를 전달하려는지 느껴졌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쉬쉬 하고 덮으려 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장면들이 그 다음 이어졌는데,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누구나 큰 조직에서 투명인간이나 먼지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살아서 너무 억울해서 죽었는데 죽어서조차 사람 취급 못 받는 이 사회. 나도 이 세상이 나에게 대접하는 게 억울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죽어서도 똑같을 걸 알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우리 주위에 “너도 그렇게 공부 안하다가는 좋은 대학 못 간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이 드라마 '허쉬'를 보면서 지방대 출신이어서 오수연 이름을 빼라 했던 그 국장이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지켜봤으면 좋겠다. 

 

그런 꼰대 기성세대들을 뼈때리기 위해 오수연은 “NO gain, no pain”이란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했지만, 난 그 말을 반대로 바꾸고 싶다. “NO pain, no gain” 얻고자 하지 않으면, 고통이 없는 게 아니라 고통 없인 얻을 게 없으니, 이 고통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원하는 걸 얻으리라.


고윤희(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작가) 



CREDIT 글 | 고윤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