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 선과 악을 다 품은 우아한 복수퀸!

'펜트하우스' 입성으로 커리어하이 맞이하다

2020.11.27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SBS



사체 유기와 불륜, 왕따, 집단 폭행 그리고 사기. 자극적인 전개에 눈을 뗄 수 없는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는 그 화제성에 힘입어 또 한 번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제대로 ‘매운맛’인 이 드라마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도덕의식에 대한 고찰과 반성 없이, 도 넘은 자극적인 소재만으로 불편함은 물론 불필요한 감정 소모만을 자아낸다는 것과 그럼에도 시간은 순삭, 높은 강도의 흥미를 선사한다는 의견으로 팽팽하다. 그 가운데 홀연히 빛나는 건 배우 이지아의 존재감이다. 어쩌면 그는 ‘펜트하우스’를 통해 배우 인생 2막을 연 듯하다. 

이지아가 스스로 “모험이었다”고 밝힐 만큼, 심수련은 그가 전에 연기한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다. 최고의 로열 아파트로 칭송받는 ‘헤라팰리스’의 명실상부한 여왕이자, 태어나 한 번도 가난해본 적 없는,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재벌가의 딸이다. 그 덕에 모든 사람에게 따뜻하고 친절하다. 전형적인 온실 속 꽃 같은 인물. 이 지점까지는 그가 기존에 맡아왔던 우아하고 지적인 분위기에 캐릭터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심수련의 감정 진폭은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 역동적이고 극단적이다. 그가 몰랐던 비밀이 밝혀지는 4회차 만에, 심수련은 복수를 향해 그 무엇도 서슴지 않는 인물로 ‘흑화’한다.

사진제공=SBS


고층에서 추락하는 친딸의 얼굴, 그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남편이 이웃집 여자와 외도한 사실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자신의 옛 연인을 죽인 것도 모자라 친딸까지 바꿔치기한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바뀐 딸의 죽음 또한 그와 연루되어 있다. 별다른 굴곡 없이 곱게 자란 이 여성이 인생의 중반부에 느꼈을 가장 높은 정도의 좌절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이지아는 ‘헤라클럽’의 ‘여왕’의 자리에서, 제 손으로 ‘헤라클럽’과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가장 역동적인 인물로 극을 이끈다. 그의 처절한 연기는 혼란스러운 전개 가운데에서도 ‘펜트하우스’를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물론 악연으로 얽힌 김소연(천서진)은 물론, 유진(오윤희 역)과 엄기준(주단태 역), 신은경(강마리 역) 등 ‘펜트하우스’의 거의 모든 출연진이 제 캐릭터를 최선을 다해 열연하고 있다. 그러나 이지아는 특유의 매력으로, 스토리적 공감과 몰입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황후의 품격’ 등 그간의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들이 ‘인생캐’로 주목받곤 했다. 그에 비해 사이다를 통째로 마신 듯 속 시원함을 주는 이지아의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선인’적인 매력과 ‘악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선사한다. 선망받는 ‘퀸’의 온화하면서도 힘 있는 모습은 물론, 딸을 어처구니없게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모성애, 그리고 복수에 불타는 모습까지 애처롭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마냥 구원자들이 도움의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지도 않는다. 남편 주단태가 놓은 덫이나, 복수의 과정에서 닥치는 난관들을 주체적이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 또한 속 시원하다. 어찌 보면 다 갖춘 ‘완전체’에 가까운 복수형 캐릭터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연대’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철저한 계획 하에 오윤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며, ‘펜트하우스’의 새로운 2막을 기대하게끔 만든다. 

사진출처=SBS '펜트하우스' 방송 캡처


사실 배우 이지아는 그의 개인적 가정사나 배경으로 인해 그간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적 한계를 규정받곤 했다. 그러나 그의 필모그래피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느낄 수 있다. 데뷔작인 ‘태왕사신기(2007)’의 선머슴 수지니, ‘베토벤 바이러스’(2008)의 바이올리니스트 두루미, ‘스타일’(2009)의 사회초년생 이서정, 그리고 ‘아테나 : 전쟁의 여신’(2010)의 에이스 요원 한재희, ‘나도, 꽃!’(2011)에서 겉으론 걸걸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순경 차봉선까지. 그 스스로는 그런 틀 안에 결코 갇힌 적이 없었다. 다양한 캐릭터 스펙트럼과, 다각도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이후 ‘세 번 결혼하는 여자’(2013)나 ‘설련화’(2015) 최근작 ‘나의 아저씨(2018)’까지, 그는 한층 더 성숙해진 연기력을 세월감에 덧입히며 나이대에 맞는 역할들을 착실히 소화해왔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펜트하우스’를 통해 입증된 그의 배우로서의 존재감은, 유독 반갑다. 결혼이나 가정환경과 같은 개인사보다는, 연기와 캐릭터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지아는 ‘펜트하우스’의 기세를 몰아, 앞으로 어떤 배우 2막을 걷게 될까. 최근에는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통해 그간 가려져 있던 재치 있고, 활달한 매력들을 발산하며 ‘이지아의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또한 오는 28일 tvN ‘온앤오프’를 통해 한층 더 친숙하고 리얼한 삶 가까이의 모습을 공개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제야 ‘신비주의’로 규정됐던 그간의 이미지들을 제대로 벗은 그, 배우 이지아가 펼쳐 보일 다음 장막에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 

이여름(칼럼니스트) 



CREDIT 글 | 이여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