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한지현, 어려서 더 무서운 '김순옥월드' NEW 빌런!

2020.11.12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방송캡처




먼 훗날 어떤 역사가가 2000년대 TV드라마를 정리하는 역사책을 쓴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김순옥’이라는 이름은 꼭 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시청률에서의 성공에다 한국 드라마에 하나의 분명한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자취는 짚어줄 만하기 때문이다. 애석한 것은 그 자취가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쪽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TV드라마에서 작가 김순옥이라는 이름은 항상 ‘막장 드라마’와 동격으로 조명돼 왔고 시간이 갈수록 그 자극의 역치는 높아지는 중이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하나는 ‘복수’다. 그의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선한 주인공이 극단적으로 악한 인물에게 고초를 겪다 나중에 통쾌하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선징악이 거의 모든 작품의 기반이다. 처음에는 복수가 주인공의 선한 성격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차차 복수에 물드는 주인공이 인간성을 상실하는 쪽으로 변한다. 

또 하나는 ‘우연’이다. 그의 드라마에서는 우연한 기회로 등장인물이 악역이 되고 이 과오를 덮기 위해 악행을 거듭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주인공이 운명적으로 사건에 휘말리고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한다. 사건이 풀려나가는 과정도 개연성보다는 운명론이 앞선다.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살아 돌아온다던가, 우연한 기회에 악역의 과오가 세상에 드러난다. 악역은 이를 또 덮으려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처단을 받는다.

세 번째는 ‘악역’이 아닐까 한다. 김순옥 드라마의 복수는 절대적인 악역이 있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우연 역시 악역이 저지른 잘못이 너무 크기에 처단에 기대가 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서사가 헐거워도 감정의 진폭이 크기에 그 열기에 논리는 묻혀왔다.

SBS에서 방송 중인 ‘펜트하우스’에서 김순옥은 새로운 형태의 악역을 창조했다. 바로 배우 한지현이 연기하는 ‘주석경’이다. 주석경은 극중 최고급 주상복합건물 ‘헤라팰리스’의 가장 꼭대기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주단태(엄기준)·심수련(이지아) 부부의 딸이다. 아버지 주단태가 운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청아예술고등학교의 수석 입학생이며 거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집안의 자제답게 오만방자하다. 일반적으로 부잣집의 딸이 현실감각이 없거나 위악적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드라마의 클리셰(뻔한 설정) 중 하나다. 하지만 주석경은 그 선을 넘는다. 

사진제공=SBS



전통적으로 김순옥 작품의 악역은 주인공 연령대의 인물이었다. ‘아내의 유혹’ 신애리, ‘왔다! 장보리’ 연민정, ‘내 딸, 금사월’ 오혜상, ‘황후의 품격’ 태후 강씨 등 주로 만악의 근원은 주인공 또래였다. 비록 주인공 나이대 인물들 복수의 굴레는 그 전대 또는 주인공의 아역 때부터 비롯되지만 후대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역들은 영악하지만 귀여웠던 ‘아내의 유혹’ 정니노,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왔다! 장보리’ 장비단, 시련의 아이콘이었던 ‘내 딸, 금사월’의 진홍시 등 어느 정도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주석경은 여기에서 진일보했다. 이미 성인 나이대에 주단태, 천서진(김소연)이라는 최강급 ‘빌런’에다 갈수록 흑화할 예정인 오윤희(유진), 심수련의 참전이 유력하지만 아역들의 악행은 아연실색할 정도다. 주석경은 헤라팰리스 부모들의 아이들 모임을 주도하고 과외선생으로 왔다가 동급생인 것이 들통난 민설아(조수민)를 괴롭히는 일에 앞장선다. 수영장 물에 빠뜨리거나 차에 감금해 괴롭히기도 하고 뺨도 거침없이 때리며 권모술수도 부린다.

그의 악다구니는 가리는 대상이 없어 자신을 찍어누르는 주단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에게 대든다. 친어머니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심수련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직 밝혀진 것은 많이 없지만 그의 악행은 오롯이 아버지 주단태의 형질을 물려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순수한 악으로 점철되고 있다. 

자극적인 설정이 오가는 것이 김순옥 작품의 전형성이고 이 부분으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특히 이번 ‘펜트하우스’가 초반 많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것은 미성년자로 설정된 인물들에 대한 가학 그리고 살인행위였다. 극 초반 살해당한 민설아의 사건 중심부에는 악행을 저질렀던 주석경의 존재가 있으며 악의 DNA는 대물림된다는 김순옥 작가만의 신념이 투영된다. 주변의 아역들도 대동소이하다. 악은 빠르게 전파되고 이어받은 핏줄에도 위력을 펼친다.

주석경의 악행은 그동안 나름의 콤플렉스나 열등감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김순옥 악역들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악인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다는 새로운 명제를 꺼내든 듯하다. 물론 드라마는 심수련, 천서진, 오윤희를 중심으로 얽혀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꼭대기, 펜트하우스에는 주단태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다른 인물들도 드라마의 디스토피아적 정서를 배가한다. 하지만 악의 기운은 자녀들에게도 서려있다. 마치 SNS의 공유하기로 여러사람에게 콘텐츠가 퍼지는 것처럼 김순옥의 악인들도 공유되고 확산된다. 대를 잇는 악의 DNA, 그런 악의 연대기를 상상하는 것 자체로도 벌써부터 오한이 몰려든다. 얼마나 추락시키고, 얼마나 복수할 것인가.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