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 갬빗ㅣ 체스 1도 몰라도 인생 드라마①

2020.11.10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가 간만에 수작을 탄생시켰다. 7부작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를 유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연출, 연기, 각본, 미술, 편집, 음악 등 모든 분야에서 평균치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전 세계 넷플릭스 플레이리스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퀸스 갬빗’은 얼굴 가득 화장이 번진 베스(안야 테일러 조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베스는 머리를 깨부술 듯 고통스러운 숙취를 겨우 떨치고 일어나 초록색 알약을 하나 입에 털어 넣는다. 침대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바라본 그는 부랴부랴 체스 경연장으로 향한다.


의아한 첫 장면에 이어 이야기는 베스의 과거로 향한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홉 살 소녀 베스는 그곳에서 초록색 알약과 체스를 처음 접한다. 초록색 알약의 도움으로 보육원의 좁디좁은 침대에 누워 밤마다 천장에 환상 속 체스판을 그리는 베스. 그런 베스의 천재성을 알아본 보육원 관리실 아저씨는 베스에게 체스의 이론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알약과 함께 밤마다 체스의 세계에 빠진 베스는 아이들에게 초록색 알약의 복용이 금지되자 금단증상에 시달린다. 알약을 먹어야 간밤 나 홀로 천장 체스를 즐길 수 있기 때문. 결국 베스는 몰래 보관실에 들어가 알약을 입에 잔뜩 꾸겨 넣고 정신을 잃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퀸스 갬빗’은 첫 회에 베스의 현재와 과거를 단숨에 그려낸다. 이 초록색 알약의 정체는 무엇일지, 체스 경기 전날 그가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호텔방에 잠들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베스가 어떻게 보육원에서 나와 성장하게 되었을지 수많은 물음표를 관객에게 던진다. 또, 베스의 중독에 약한 모습과 체스 천재로서 될 성 부를 떡잎의 면모도 그 앞에 펼쳐질 만만치 않을 승부의 세계를 기대하게 한다.


베스는 보육원에 들어오기 전 이미 인생은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멀쩡한 가정이 있으면서도 엄마와 불륜을 저지른(것으로 짐작되는) 아버지의 문전박대, 결국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내몰고 마는 엄마. 무표정한 얼굴로 이 모든 것을 응시한 베스에게 자신이 진두지휘할 수 있는 64칸 체스판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런 베스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황홀한 체스판으로 자신을 이끌어주는 초록색 알약이었을 거고.


‘퀸스 갬빗’은 전형적인 듯, 전형적이지 않다. 베스가 성장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을 굳이 남성과 여성, 악인과 호인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베스를 입양한 새엄마 캐릭터가 유독 눈에 띈다. 담배와 술을 달고 사는 일견 불량스러운 이 엄마는 베스를 친딸처럼 다정하게 챙기지도, 그렇다고 폭력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거리감으로 베스를 대하는 모습이 서운하다가도, 무관심한 남편에 외로워하는 새엄마의 표정은 연민을 자아낸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새엄마는 베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의 매니저를 자처한다. 체스 대회 투어비를 지원해줄 테니 상금의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나눠달라 요구한다. 돈독이 오른 새엄마의 무자비한 악행이 이어지느냐? 그렇지 않다. 새엄마는 베스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가, 때로는 응석쟁이 딸이었다가, 종종 어른의 노련함으로 엄마의 본분을 다한다.


새엄마 캐릭터에서 이 작품이 인생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약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욕심 많은 악인 같지만 알고 보면 성실한 체스 플레이어인 인물 등, 오직 단면만 보고 쉬이 판단할 수 없는 현실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놨다. 더불어 제 아무리 체스 천재라 할지라도 사랑과 우정의 도움 없이 홀로 성장할 수 없다는 다소 할리우드적인 메시지를 이 전형성을 비튼 캐릭터들을 통해 사실감 넘치게 전한다.


‘퀸스 갬빗’은 체스 천재의 성장기이자 한 여성의 성장기이기도 한데, 감독은 성장의 순간들을 사려 깊게 그려낸다. 베스의 초경, 첫사랑, 첫 경험, 첫 일탈, 그리고 첫 우승. 성장의 길목에서 만나고 겪는 곡절들은 체스판 위의 승부만큼이나 흥미롭다. 그래서 체스를 전혀 모르더라도 앉은자리에서 푹 빠져 정주행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화투를 전혀 모르더라도 ‘타짜’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처럼.


김수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김수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