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보다 선남선녀의 멜로에 머무른 아쉬움

잘 만든 멜로물임에도 여주 캐릭터 묘사는 올드해

2020.11.0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tvN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 업(극본 박혜련 연출 오충환)은 상당히 재미있는 멜로드라마다. 내 일을 스타트 업 시키려고 정신 없는 10월을 보내고, 뒤늦게 넷플릭스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기 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공중파 채널에는 어울리지만 OTT플래폼인 넷플릭스에 왠지 어울리지 않컨텐츠로 보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왜 '스타트 업'을 사서 틀었는지가 궁금했지만 1분 만에 궁금증이 풀렸다. 봐도 봐도 예쁜 수지가 나오고, 남주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수지는 어떤 샷에서도 다 예쁘고 남주혁은 '보건교사 안은영'보다 약 20프로 멋졌다. 물론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멋졌지만 더 멋져졌다. 그래, 넷플릭스가 이 드라마를 구매한 건 이 두 배우 때문인 것 같다.

 

최근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쓴 '규칙없음'이란 책을 읽고 있어서, '스타트 업'이 창업스토리라 넷플릭스가 구매한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스토리를 접하고 보니, '스타트 업'은 창업스토리라기엔 많이 어설프고, 멜로로치면 아주 훌륭하고 쌈박했다. 늘 모든 장르에 멜로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공중파 채널에서 틀기엔 아주 딱 맞는 드라마지만, 넷플릭스에선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을 주로 공개하는데, '스타트 업'은 스타트 업 스토리면서도 새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주 많이 본 익숙한 클리셰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과거와의 인연에 꼭 등장하는 오르골 같은 거다. 왜 그렇게 드라마에선 오르골 클리셰가 많은지 모르겠다. 내 눈엔 예쁘지도 멋져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진짜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리도 아닌, 젖이 부족한 배고픈 아기양이 우는 소리 같은 오르골 소리가 뭐가 좋다고 계속 ‘추억의 클리셰’로 쓰이는지...사실 드라마에서 오르골 소리를 들으면 지겹다. 이젠 진부해 보인다.


사진제공=tvN


그럼에도 '스타트 업'은 굉장히 안정적인 구성과 배우들의 관계와 감정의 주고받음이 정말 차지고 따뜻한 멜로드라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수지의 스토리 라인이다.물론 이건 개취(개인의 취향)다^^

 

남도산(남주혁)의 스토리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수지가 연기하는 서달미가 아빠를 위해 성공하고 싶다는 점이 잘 와 닫지 않는다. 남도산은 부모님께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부모의 돈을 끌어다쓰고 속을 썩이면서도 끝까지 자기가 원하는 한 길에만 집념을 불태운다. 반면 서달미는 너무 관계중심적 인물이다. 자기가 미치고 좋아서 일을 하는 것보다, 할머니를 위해, 아빠를 위해, 자신의 버린 엄마와 언니에게 복수하고 싶어서가 더 크다. 모든 스타트 업은 누가 말리고 때려죽인다고 해도 결코 자신이 포기가 되지 않고 반은 미쳐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인간관계와 상관없이 자신이 진짜 좋아서 미친 일이어야 가능하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흙수저로써의 설움을 보여줘야 2030대가 얼마나 취업이 힘들고 일하는 게 힘든지 설명이 돼서 그런 설정을 그렸을 것이다. 근데 하필 예쁜 수지가 아주 예쁘게 하고 나와서 과거에 만나보지도 못한 첫사랑 비스무레한 애매한(?) 남자만 찾아다니니 조금 답답하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스타트 업을 꿈꾸는 야무진 사회초년생이, 과거에 펜팔하던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찾아다니겠나....그 이유가 성공한 친자매 때문이라고 해도 크게 공감이 가진 않는다. 서달미가 천재 투자자와 천재 IT맨 두 남자의 사랑의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아닌, 남자와 경쟁하고 싸우는 좀 더 주체적인 여자였다면 더 좋았을 걸.


사진제공=tvN


이해는 간다. TV드라마는 거의 여자들이 많이 보기 때문에, 속 썩이는 남편이 이혼하고 싶은 소릴 지껄일 때, 말 안 듣는 애들 때문에 확 가출해버리고 싶을 때, 유일한 비상구이자 특효약이자 신경안정제가 드라마를 통한 대리만족과 위안이다.그래서 드라마 속에선 늘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 해주는’ 남자가 등장하고, 늘 ‘알아서 엄마 속 알아주고 알아서 잘 자라주는 효자 자식’이 등장한다. 그래야 보는 여자들 가슴이 뻥 뚫리며 시청률이 오르니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대리만족과 위안을 별로 추구하지 않는 나는 차라리 넷플릭스의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규칙없음'에 나오는 창업스토리 같은 진짜 스타트 업 스토리를 보고 싶다. 사랑으로 위로받기엔 내 마음은 이미 말라버렸다. 현실에서 먹고 살기가 넘 힘들어서. 내 상태도 늘 드라마 속의 서달미인데, 나에겐 남도산이나 한지평 같이 막 퍼주는 멋진 남자 대신, 막 퍼갈려고만 하는 후줄근한 남자들만 꼬였다.


수지가 연기하는 서달미와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의 차이는 한끗 차이인 것 같다. 바로 미모! 미모가 대체 뭐라고? 비정상적인 억하심정과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사랑받는 여자보단, 이 악물고 혼자 힘으로 악착같이 성공하는 질긴 마녀 같은 여자의 성공스토리를 보고 싶다. 


고윤희(시나리오 작가) 






CREDIT 글 | 고윤희(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