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작가님 막장 넘어 막가자는 거죠?"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에도 축하 보낼 수 없는 이유

2020.11.0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방송캡처


"SBS에서는 무슨생각으로 PD,작가를 선택하고, 왜 드라마 내용도 안보고 방송 결정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 드라마는 너무 자극적이고  심장이 아프네요."

4회까지 방송을 마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의 시청자게시판에 시청자 홍**씨가 올린 반응이다. 이 글 외에도 대다수가 ‘펜트하우스’의 자극적인 설정과 도 넘은 표현에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다.


반면 ‘펜트하우스’ 측에서는 이 드라마가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성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3일 방송된 4회의 전국 시청률은 13.9%.(닐슨코리아 기준) 최근 방송된 드라마가 시청률 5% 안팎을 전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공공의 전파를 사용하는 공중파인 SBS는 과연 이 상황을 보며 웃고 있을까? 아니면 편성 방송사로서 반성을 하고 있을까? 

‘펜트하우스’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사람이 얼굴에 점하나 찍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알아보지 못하는 인물로 탈바꿈하는 희대의 막장극 ‘아내의 유혹’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왔다 장보리’와 ‘내 딸 금사월’을 비롯해 ‘황후의 품격’ 등 일련의 작품을 내놓으며 막장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행 불패 신화를 쓰고 있어서 "막장극도 하나의 장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제공=방송캡처


문제는 작가로서 ‘진일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해외 유명한 드라마들도 막장극적인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위기의 주부들’도, ‘가십걸’도 마찬가지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고전 중에도 불륜과 복잡한 가족사 등 막장의 단골 소재가 담긴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장치에 그치고, 전체적으로 탄탄한 틀거리를 갖추고 그 안에 곱씹을 만한 깊은 메시지를 심는다. 그래서 오랜 기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나 ‘펜트하우스’에서는 이러한 고민의 흔적도 찾기는 힘들다.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라는 헤라팰리스에 사는 소위 상류층들의 살인과 폭력, 집단 괴롭힘과 갑질, 가정폭력과 불륜 등으로 점철될 뿐이다. ‘구실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이런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내러티브가 필요한데, ‘펜트하우스’는 이런 지점이 결여됐다. 그러니 불필요한 자극만 난무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대중 드라마에 고전의 깊이를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을 본 끝에 찝찝함과 스트레스만 남는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항상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다. 상당히 빠른 전개로 시청자들이 의심을 품거나 자신의 생각을 담을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된다’는 평이 나온다. 예를 들어 주인공 심수련(이지아)이 현재 자신이 키우는 아이가 친자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은 직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를 확인한다. 친자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찾아갔다가 음모의 전모를 알게 된 후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이야기가 모두 한 회에 담긴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2∼3회 동안 우려먹을 소재를 일거에 해소한다. 그래서 김 작가의 드라마를 보며 속이 시원하다며 ‘사이다’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남는 건 불편함과 끔찍한 잔상 뿐이다. ‘펜트하우스’는 여러 모로 고품격 막장극으로 불렸던 ‘SKY캐슬’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SKY캐슬’이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에 경종을 울리고, 각 등장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표현에 힘써 ‘명작’이라 불렸던 반면 ‘펜트하우스’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왜’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꽤 괜찮은 연기력을 지난 배우들조차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악다구니를 쓰기 바쁘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예를 들어보자. 왜 헤라팰리스에 사는 부자들은 죄다 악할까? 이들에게 일일이 당위성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악했던 인물’, ‘부자=악인’이라는 식의 도식화는 위험하다. 따지고 보면 김 작가가 보여준 일련의 작품 속에서 돈이나 권력을 쥔 자는 항상 악했다. 단순히 ‘못된’ 수준을 넘어 수십 년의 징역형을 받아야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식으로 그들을 일말의 동정도 줄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든 후, 그들을 향한 통쾌한 복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권선징악을 일구는 식이다. 해피엔딩을 좋아하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의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심리를 잘 읽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초신경만 자극하고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드라마가 난무한다면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과의 경쟁에서 지상파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 

김 작가의 이러한 작법은 주동민이라는 연출자를 만나며 자극성이 배가됐다. 전작인 ‘황후의 품격’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펜트하우스’에서 다시금 손을 잡았다. 전작에서 호흡이 잘 맞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펜트하우스’의 연출은 마치 제동 장치가 고장난 폭주기관차 같다. 

‘펜트하우스’ 1회에서는 헤라팰리스 고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소녀가 피를 철철 흘리며 동상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다. 3회에서는 심수련의 현 남편인 주단태(엄기준)가 심수련의 전 남편 살해를 사주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장면이 삽입됐다. 이 과정에서 심수련의 전 남편은 머리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이 때 나무의 가지를 자를 때 쓰는 공구 가위를 들고 온 주단태는 이미 죽은 전 남편의 손가락을 노려보다가 잘라 낸다. 게다가 이 잘린 손가락은 봉인 된 채 주단태의 사무실에 있었고, 심수련은 이를 발견했다. 4회에서는 시체 유기 장면도 삽입됐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더욱 불편하다. 헤라팰리스의 거주자들이 미성년자를 납치 감금하길 서슴지 않고, 그들의 자녀들은 동급생들을 집단 폭행한다. 폭행에 그치지 않고 다수가 한 명의 학생을 수영장에 빠뜨리고, "세탁비에 보태쓰라"며 돈을 던진다. 간혹 사회부 기사를 통해 접하던 천인공 노할 상황이 눈 앞에 상세히 묘사된다. 도무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공중파 드라마라 보기 어렵다. 이런 논란이 거듭되자 SBS는 "‘펜트하우스’ 4회를 19세 이상 시청 등급으로 편성했다"며 "앞으로 방영될 다른 회 차에 대해서도 내부 심의 규정에 맞춰 시청 등급을 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츌처=방송캡처


찬찬히 되짚어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동안 김 작가가 집필한 작품들은 매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주 PD가 연출했던 ‘리턴’ 역시 선정성과 폭력성 등을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두 사람이 뭉쳐 글을 쓰고 연출을 하니 그 강도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는 있다. 시청률이 5%가 나오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공중파 드라마다 태반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펜트하우스’는 시청률도 월등히 높고, 비판일지언정 관련 기사와 댓글이 쏟아진다. 시청자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중파의 위기’라는 상황에 직면한 방송사로서는 도무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송사가 가진 공적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재미있다"며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시청자 못지않게, 시청자게시판을 통해 "불편하다"고 외치고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을 곱씹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대중은 막장극이 아닌 공중파 드라마는 아예 선택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품격’이라는 것은 오랜 기간, 많은 공을 들여야 일굴 수 있다. 하지만 ‘펜트하우스’와 이 드라마를 편성한 SBS에서는 좀처럼 품격 있는 대처를 찾아 볼 수 없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