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파리에 가다’, '좋아요' 시대의 '섹스앤더시티'?

2020.10.2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미리 밝히지만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대단히 잘 만든 드라마는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 인물들은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묘사된다. 촌스러운 시카고 출신 주인공(릴리 콜린스)과 불륜을 취미처럼 일삼는 게으른 성차별주의자 프랑스인이라니!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는 돈 많은 중국인 유학생이라니! 정말이지 빤하디 빤하다. 이처럼 미국인과 유럽인에 대한 구시대적 편견이 드라마의 주요 장치들로 기능한다.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메인 프로듀서인 대런 스타가 참여했다는 이유로 ‘섹스 앤 더 시티 파리판’으로 불리는(정확히는 불리고 싶은)듯 보이지만, 일단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등급부터 15세 이상 관람가. ‘섹스 앤 더 시티’의 뜨거운 섹스담이나 디테일한 남녀 묘사 따위는 없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브런치 문화처럼 뉴욕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다면,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담아낸 파리의 모습은 종종 우스꽝스럽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프랑스 현지에서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숱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에밀리, 파리에 간다’를 앉은 자리에서 모두 봐버렸다. 에피소드 한 편에 20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이라 부담 없이 보기 좋았을뿐더러, 정확한 레시피로 만들어낸 유명 프랜차이즈의 달콤한 빵을 먹는 듯 딱 기대한 만큼의 재미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인 주인공이 로망의 도시 파리에서 겪는 좌충우돌이 꽤 사실적으로 그려져 높은 몰입도로 끝까지 정주행할 수 있었다. 물론 다소 파리를 정형화된 이미지로 묘사하긴 하였으나, 주인공이 겪은 당혹스러움, 이른바 ‘파리 증후군’을 필자 역시 겪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파리 증후군’은 웬만한 파리 여행자라면 모두 공감할 일이다. 파리에서 아파트 1층은 사실은 2층이라는 것, 좁고 달그락거리는 엘리베이터의 공포와 그마저도 없는 빌딩이 대부분이라는 것. 한국의 수압은 기대하기 힘든 낡은 상하수도, 센강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좋아요’ 시대의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주인공 에밀리가 파리 명품 홍보 마케팅 회사로 발령이 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의 원제인 ‘Emily in Paris’는 에밀리가 파리 일상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이다. 에밀리는 인스타그램에 자신만의 유쾌한 시각으로 포착한 파리의 면면을 업로드하고, 유명 인플루언서가 된다. 인스타그램 계정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인스타그램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기도 한다.

 

물론 에밀리의 마케팅 아이디어가 실행하는 족족 성공하는 것 역시 이 드라마의 한계이지만, 그 과정은 나름 성실하게 그려진다.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침대 마케팅, 성차별을 투표로 접근해 이슈를 선점하는 노이즈 마케팅,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역발상 패션쇼는 이 드라마가 등장 인물들을 단편적으로 다룬 것을 고려해보면 꽤 신선한 접근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쇼퍼홀릭’ 등 2000년대 초중반 쏟아진 여러 칙릿 작품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올드한 이야기이지만, 또 그만큼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하나, 코로나19로 비행길이 막힌 이 시국에 이보다 더 좋은 랜선 여행이 어디 있겠나. 정작 파리 사람들은 극불호였다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이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파리의 공기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만 해도 “이 불친절하고 냄새나는 도시를 다시 오면 인간도 아니다!”라고 외쳤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에 뭔가에 홀린 듯 다시 파리를 찾았고, 또 실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장 그리운 도시가 파리이다. 오래된 것을 존중하다 못해 사랑하는 듯한 고집스러움, 불친절과 여유로움이 교차하는 오묘한 매력의 파리가 무척이나 그립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불러일으킨 그리움을 오늘도 파리 사진에 ‘좋아요’를 찍으며 달랜다. 아, 필자처럼 파리 여행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라면 넷플릭스 시리즈 ‘파리에선 사랑을’도 추천한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등장하는 파리 관광 명소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파리지앵들의 일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다시 ‘에밀리, 파리에 가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드라마는 시즌2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시즌2에서는 에밀리의 만만치 않을 러브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섹스 앤 더 시티’만큼 인기 시리즈로 거듭날 수 있을지, 시즌2에 벌써 관심이 집중된다.

 

김수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김수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