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홈즈’, 요즘 가장 만나야 할 바로 그 소녀

2020.10.16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넷플릭스





홈즈라는 이름은 마력과 같다.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 속 주인공 ‘셜록 홈즈’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명탐정이다. 가상 인물로는 독보적인 인기를 거느리고 있으니 2차, 3차 창작이 거듭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홈즈’라는 이름이 타이틀로 거론되면 이미 보장된 재미를 기대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에놀라 홈즈’가 공개 이후 늘 순위권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기대 심리 덕분일 거다. 심지어 ‘홈즈’라는 이름에 끌려 클릭을 했는데 ‘셜록 홈즈’에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헨리 카빌의 이름이 나오고, 그의 여동생이자 영화의 타이틀, 주인공 ‘에놀라 홈즈’ 역을 ‘기묘한 이야기’의 민머리 소녀 보비 브라운이 연기한단다. 이쯤이면 “어머 이건 꼭 봐야 해”를 외칠 수밖에 없다.

에놀라 홈즈’는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를 원작으로 한다. 열여섯 살 생일 아침, 에놀라는 엄마가 특이한 선물 보따리를 남겨둔 채 아무런 이유도, 단서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 에놀라는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두 오빠들의 속박을 견디지 못해 직접 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 와중에 젊은 귀족 실종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고, 역사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사건의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며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에놀라 홈즈’는 페미니즘 위에 서 있는 영화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게 아니다. 그저 “여성도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역사 속에 거대하게 움직였던 페미니즘의 조류를 되짚으며 그 당시엔 너무나도 생소했을 새로운 여성상을,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어머니마저 무시하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샘 클라플린)는 가부장 제도의 표본이며, 그나마 깨어 있는 셜록 홈즈는 자신(남성)에게 딱 맞는 세상 속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한량 같은 존재다. 하지만 엄마 유도리아(핼레나 본햄 카터)는 달랐다. 소중한 막내딸 에놀라에게 자신이 모든 행동의 주체임을 가르쳤고, 본인 역시 서프러제트(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및 운동가)로 활동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모전여전이 확실한 에놀라는 영화 초기엔 오빠들에 기대는 모습을 잠시 보여주지만 전통적인 여성상을 제시하는 기숙사에서 탈출한다. 너무나도 예쁘게 생겨 배우로서 앞으로의 미래가 촉망되는 귀족 나리(루이스 패트리지)와 사랑에 빠지면서도 주도권을 확실하게 손에 쥔다. 편한 복장을 추구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여성 억압의 상징인 코르셋도 마다 않는다. 그저 기득권 제도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 한 명의 인간이 가져야 할 주체성을 외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에놀라 홈즈다.

‘에놀라 홈즈’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즐거운 이유는 영화의 제1덕목인 ‘재미’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간 페미니즘을 내세우다 영화적 재미를 놓쳐 메시지마저 폄훼 당했던 작품과는 궤를 달리한다. 에놀라가 엄마를 찾아 나서고, 사건을 해결하고 사회에 여성 인권을 전달하는 과정이 러닝타임을 '순삭'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다만 ‘홈즈’라는 이름이 자칫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추리소설의 대표 명사인 만큼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물을 기대했던 사람은 다소 싱거운 추리에 김이 샐 수 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국 드라마 ‘셜록’의 시크한 향기에 익숙한 관객 역시 낯섦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가 아니다. 작품 내내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는 만큼 타인과, 혹은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이 사랑스러운 소녀를 대하는 예의가 아니다. 이미 속편 제작을 촉구하는 마니아가 양성됐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니 제한된 러닝 타임을 넘어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길 바라는 것도 괜한 기대는 아닐 것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