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진정한 고수'는 역시 달랐다!

2020.10.0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방송캡처




그야말로 ‘나훈아 신드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후 처음 맞은 명절, 가족과 친지조차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대중의 마음을 위로한 이는 고희를 훌쩍 넘긴 73세, 나훈아였다. 

"코로나19 때문에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며 15년 만에 안방극장의 문을 두드린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했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의 시청률은 29%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고, 그 후일담을 담은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 만의 외출’은 시청률은 18.7%였다.

그리고 무대 위 나훈아가 던진 폐부를 찌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어록’이 됐다. 그의 발언을 바탕으로 나훈아가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의 의미를 짚어봤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는 여러분들이 지켰습니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세계에서 1등 국민입니다."

나훈아의 공연이 전파를 탄 후 ‘위정자’(爲政者)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라왔다. 그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는 ‘정치를 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치인’을 지칭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위정자들의 잇단 도덕적 해이와 실정, 의미없는 정쟁 속에서 헤매는 여야의 모습에 일침을 가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권은 "여권을 향한 나훈아의 충고"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여권은 야권의 입맛에 맞춘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아우성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재차 실망감을 느끼고 있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당신이야 말로 ‘1등 국민’이라는 나훈아의 말에 위로를 얻었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코로나19, 이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것 때문에 ‘내가 절대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긍지를 가지셔도 됩니다. 분명히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대한민국 어게인’이라고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나훈아는 지난 2월 KBS로부터 공연 제안을 처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더 큰 규모의 야외 무대를 고려했으나, 지난 8월 코로나19가 다시 재확산되며 결국 비대면 공연으로 방침을 바꿨다. ‘공연의 신’이라 불리는 나훈아에게도 생소한 상황이었다. 공연을 포기한다고 해도 누가 무어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훈아는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무릎꿇는 모습을 보이길 거부했다. 이 발언에는 그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이 또 왜 저래’ 물어봤더니 모른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갈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하던 일을 해야 세월이 늦게 갑니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에서 여러 신곡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곡은 단연 ‘테스 형’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모티브로 삼은 이 곡은 하수상한 세월에 대한 나훈아의 관조가 고스란히 담겼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라는 가사는 명절 연휴 첫 날 그의 공연을 지켜본 이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아마도 이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기대고픈 누군가를 향해 외치고 싶었던 물음이리라.

사진출처=방송캡처


"신비주의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인데 꿈이 고갈된 것 같아 1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잠적했다, 은둔생활한다고 합니다. 뇌경색에 말도 어눌하고 걸음도 잘 못 걷는다고 하는데, 내가 똑바로 걸어 다니는 게 아주 미안해 죽겠습니다."

오랜만에 시청자들과 만난 나훈아는 여전히 건강하고,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지난 2007년 처음 잠적설이 제기된 이후 11년 간 공백기를 가졌다. 다시 활동을 재개했을 때도 공연 위주였다. ‘슈퍼스타’인 나훈아와 관련된 각종 의혹과 추측성 기사는 횟수만 줄었을 뿐, 여전하다. 그래도 나훈아가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2008년 기자회견, 딱 1차례였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시름하는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카메라 앞에 선 나훈아는, 흠잡을 데 없는 공연으로 건재함을 웅변했다. 그리고 나훈아다운 화법으로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숱한 ‘설설설’에 대해 시원스럽게 답했다.

"이제 저는 내려올 시간과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언제 내려와야 할지, 마이크를 놔야 할지 시간을 찾고 있습니다. 느닷없을 수도 있습니다. 길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나훈아는 공연 도중 오랜 지기인 김동건 아나운서와 대담을 가졌다. 나훈아는 노래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물음에 "내려올 자리나 시간을 찾고 있다. 이제 내려와야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 내려놔야할지 시간을 찾고 있다. 느닷없이 될 수도 있다. 길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김 아나운서는 "100세까지 노래해야 한다"라고 그의 마음을 다잡았다. 둘의 대화 과정에서 나훈아가 정부의 훈장 수여도 고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왜 훈장을 사양했냐"는 김 아나운서의 질문에 나훈아는 "세월의 무게도,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가 무겁다. 훈장 무게를 어떻게 견디냐. 우리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영혼이 자유로워야한다고 생각한다. 훈장을 받으면 어떻게 사냐. 아무것도 못한다. 저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술도 한잔 마시고 쓸데없는 얘기도 하고 이러고 살아야한다. 훈장을 받으면 그 값을 해야하지 않나. 그 무게를 못 견딘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저는 흐를 유(流), 행할 행(行), 노래 가(歌), 유행가 가수, 흘러가는 가수입니다. 뭘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런 거(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냐) 묻지 마소."

나훈아는 스스로를 ‘유행가 가수’로 규정했다. 이는 그에게 자꾸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는 몸짓이라 할 수 있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을 펼치며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남겼다. 역시나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이를 두고 그들 입장에 맞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나훈아는 말이 없다. 마치 "유행가 가수에게 뭘 더 바라나"라고 되묻는 듯하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