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틀을 깨고 다시 만개한 마성의 배우

'악의꽃'서 진가 확인시키며 시청자 사로잡다

2020.09.0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tvN




이준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준기가 아니었다. tvN 수목극 ‘악의 꽃’(극본 유정희, 연출 김철규)에 등장하고 있는 그 이준기 말이다.

이제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악의 꽃’은 그동안 궁금증을 모으던 연쇄살인 공범에 대한 윤곽을 확실히 드러냈다. 얼마 전까지 백만우 원장(손종학)일 듯 짐작됐으나 지난 방송이었던 11회에서 진짜 백희성(김지훈)이 공범으로 가닥이 잡혔다.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그의 존재가 드러난 순간부터, 게다가 그 배우가 김지훈인 것으로 확인됐을 때부터 이미 기류가 심상치 않기는 했다. 앞으로 김지훈이 어떤 활약 혹은 횡포로 ‘악의 꽃’을 클라이맥스로 이끌지 주목된다.

사실 극 초반에만 해도 백희성 행세를 하는 도현수(이준기)가 연쇄살인범 도민석(최병모)의 아들이자 사이코패스여서 역시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의심됐다. 물론, 도현수는 감금했던 김무진 기자(서현우)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며 2회부터 보란 듯이 예상을 뒤집더니 자신을 코너로 몰던 박경춘(윤병희)도 살려주는 등 의외의 전개를 거듭하며 그를 향한 의심을 희석했다. 그럼에도 공범이라는 의심을 거두기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이장을 죽인 진범은 누나 도해수(장희진)로 밝혀지고, 공범을 찾아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도현수의 행보가 이어질수록 시청자들은 의심의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수배 중인 도현수에게 아들 행세를 하게 해준 백만우에게로 의심의 화살이 돌아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치밀하게 짜여진 대본은 엄지손을 치켜들 수밖에 없다. 

사진제공=tvN


그런데 이준기인 줄 알았는데, 이준기가 아니었다고 하는 말은 비단 이러한 줄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주연배우로서 이준기를 바라보는 업계와 시청자들의 시선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간 보아온 이준기가 아니라는 감탄과 함께 물 오른 그의 연기력에 놀라는 중인 것이다.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영화 ‘왕의 남자’로 혜성처럼 나타났던 때부터 연기로 감탄하게 한 그였는데, 왜 새삼 ‘악의 꽃’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일까. 연기자들이 간혹 자신의 틀을 깨고 거듭난다고 표현하는 때가 있는데, 이준기에게 지금이 딱 그런 듯싶다. 

다양한 작품을 하는 동안 지켜본 그는 참 끼가 많으면서 동시에 성실했다. 그렇기에 늘 잘 해왔고, 늘 열심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소위 힘을 뺀 연기에도 성공했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 안으로 스며야 할 그의 끼와 노력이 화면 밖으로 도드라졌다면 ‘악의 꽃’에서는 이질감 없이 오롯이 캐릭터로서 몰입하게 하고 있다. 스타 이준기가 아니라 위태로운 도현수로 보이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도현수를 지켜보며 간담이 서늘했다가 이제는 안타깝고 애달파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서늘한 사이코패스가 행복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가 되려 노력하는 모습이 위장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어 복잡 미묘했다. 그러던 중 한 번도 차지원(문채원)이 사랑인 없다고 누나에게 말해 지원을 비롯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 도현수도 시청자도 깨닫기에 이르렀다. 간절한 도현수를 응원하게 하는데, 이준기의 흡입력 있는 연기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점에서 김철규 PD의 연출력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tvN ‘마더’, KBS2 ‘공항가는 길’ 등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였던 연출자의 손길에 이준기의 연기가 더욱 빛나고 있다. 김철규 PD의 마법은 다른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강력계 형사 역이 가당키나 한가 싶었던 문채원에게 그런 말이 쏙 들어가게 했다. 또한, 비중이 상당한 김무진 역에 인지도가 높지 않은 서현우를 발탁한 뒤 그를 더없이 믿음직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듬뿍 받게 했다. 

사진제공=tvN


현재 절절한 마음으로 눈물 흘리는 도현수-차지원 커플과 함께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것 역시 이준기와 문채원의 연기력을 아우르며 드라마를 총지휘하는 지금의 연출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악의 꽃’이 표방하는 고밀도 감성 추적극이라는 수식어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가 시작할 때만 해도 도통 와닿지 않았던 ‘악의 꽃’이라는 제목은 몰입도 높은 연기와 연출이 개연성이 되어서 가슴에 팍 꽂히는 것이 됐다. 제 아무리 첫 회 첫 장면을 남녀주인공의 감미로운 키스신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악의 꽃’은 사이코패스와 살인 및 폭행 사건이 난무하는 어두운 장르물의 인상이 강했다. 그런 속에서 도현수-차지원 커플이 기어이 사랑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심지어 도해수를 향해 첫사랑의 순정을 보이는 김무진의 러브라인까지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하고, 아웅다웅하면서도 진한 우정이 느껴지는 현수와 무진의 브로맨스도 부상하는 등 ‘악의 꽃’에서 로맨스가 가지에 가지를 치고 있다.

이처럼 도현수를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생사기로의 위기만 아니라면 핑크빛 무드 그 자체다. 드라마 밖 배우들에 대한 평가도 그러하니 이제 남은 숙제라면 드라마를 어떻게 잘 마무리 지을 것인가가 될 것이다.


배우를 새로이 보게 하고 장르물을 로맨스물로 보이게 만드는, 신묘한 경험을 하게 하는 ‘악의 꽃’이 과연 어떤 엔딩을 펼칠지 궁금해진다. 그동안 치밀하게 조이는 재미를 준 만큼 그냥 녹록하게 해피엔딩을 선사할 리 만무하다. 종영까지 5회가 남은 가운데 몇 번의 반전을 더 경험하게 될지, ‘악의 꽃’의 여운이 더 짙게 남을 강렬한 엔딩이 될기대가 높아진다.

조성경(칼럼니스트) 




CREDIT 글 | 조성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