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은 이제 안녕을 고하나?

2020.09.04 페이스북 트위터

김성수 카카오M 대표. 사진제공=카카오M


"TV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지난 7월 중순 열린 종합 콘텐츠 기업 카카오M의 미디어 간담회에서 나온 김성수 대표의 의미심장한 출사표다. 온미디어의 수장이었던 김 대표는 이 회사가 CJ ENM으로 인수된 후에도 줄곧 대표 자리를 유지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상파 3사의 높은 아성을 허물고 케이블채널 시장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김 대표가 카카오M으로 이적한 후 처음으로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방송 채널에서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됐다. 고객 입장에서는 TV보다 훨씬 유용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대안 매체가 나왔는데 TV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카카오M 외에도 국내 굴지의 1위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역시 자체 플랫폼을 활용한 콘텐츠를 늘리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로 3분할되던 기성 플랫폼 시대는 이미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파상공세로 균열이 가기 시작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카오M과 네이버의 ‘참전’(參戰)은 또 한번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의 시대로


콘텐츠 자회사인 카카오M을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와 네이버는 국내 양대 포털로 불린다. 세계적인 검색엔진인 구글이 통 힘을 못 쓰는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두 포털을 사용한다. 검색만 따지자면 네이버의 점유율이 단연 높지만, 카카오톡이라는 범 국민적인 모바일 메신저를 보유한 카카오의 대중 접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듯 두 회사는 탄탄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이렇게 뻥 뚫린 고속도로에 어떤 콘텐츠를 올려서 유통시킬 지 여부가 관건이다. 그래서 요즘 두 포털은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카카오는 지난 9월1일 큰 물길을 열었다. 이 날 카카오TV를 론칭하고 오리지널 디지털 드라마와 예능 콘텐츠들을 대거 공개했다. ‘아만자’ ‘연애혁명’ 등 디지털 드라마와 ‘찐경규’ ‘내 꿈은 라이언’ ‘카카오TV 모닝’ ‘페이스아이디’ ‘아름다운 남자 시벨롬(si bel homme)’ 등 5개의 디지털 예능 콘텐츠가 동시에 막을 올렸다. 이들 모두 회별 10∼20분 내외로 구성된 콘텐츠로, 일부 예능 콘텐츠는 모바일 시청 환경을 고려해 세로형 콘텐츠로 제작, 공개된다.카카오M 측은 "드라마부터 마스코트 서바이벌, 모닝 예능쇼, 리얼리티까지 각 콘텐츠들의 첫 회를 동시에 공개, 각양각색의 재미와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1일 이후에는 콘텐츠별 일정에 따라 요일별로 주 1∼2회씩 공개된다"고 밝혔다.

참여하는 스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예능 대부라 불리는 이경규를 비롯해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이효리를 포함해, 방송인 김구라, 가수 김희철, 박지훈 등이 참여했다. 

카카오M은 향후 2023년까지 오리지널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총 3000억 원을 투자해 총 240개 이상의 타이틀을 제작할 계획이다. 게다가 카카오M은 지난 2년 간 배우 이병헌·공유·현빈 등이 속한 매니지먼트사 7곳을 비롯해 유력 드라마·뮤지컬 제작사 등 약 20개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현재까지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쇼트 폼(short form) 프로그램에 집중했지만, 향후 이들을 활용한 드라마와 영화 등 롱 폼(long form)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사진제공=카카오M


네이버 역시 고삐를 바투 잡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와는 방향성이 다소 다르다. 네이버가 추구하는 콘텐츠 사업모델을 지탱하는 주요 축 중 하나는 브이라이브(V LIVE)다. 지난 9월1일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인 ‘핫100’ 정상에 오른 그룹 방탄소년단은 브이라이브를 통해 가장 먼저 팬들과 소통하고 소감을 전했다. SNS를 기반으로 글로벌 팬덤을 확보해 온 방탄소년단이 그 동안 브이라이브를 적극 활용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브이라이브 강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활동이 줄고 언택트(untact·비대면) 콘텐츠가 각광받는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그룹 엑소, 슈퍼주니어, 레드벨벳, NCT 등이 속한 SM엔터테인먼트에 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네이버는 지난 4월 SM과 업무 협약을 맺고 세계 최초의 온라인 전용 콘서트 시리즈인 ‘비욘드 라이브’를 론칭했다. 게다가 SM은 지난 8월 JYP엔터테인먼트와도 손잡고 ‘비욘드 라이브’를 기획·운영하는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Beyond LIVE Corporation·BLC)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브이라이브를 통해 생중계된 걸그룹 트와이스의 ‘비욘드 라이브 - 트와이스 : 월드 인 어 데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네이버가 공고히 다지고 있는 또 다른 기둥은 웹툰 사업이다. 네이버는 지난 2004년 네이버웹툰을 선보인 후, 장기적 관점으로 웹툰작가들을 키우고 유저를 확보해갔다. 그 결과 ‘온라인 콘텐츠=무료’라는 선입견을 깨고 2012년에는 웹툰의 유료화에 성공했고, 2013년에는 광고와 콘텐츠 판매를 결합한 ‘PPS’(Page Profit Share)를 도입했다.

박나래가 진행하는. 네이버 now '대외비', 사진제공=네이버


#네이버 vs 카카오, 경쟁과 협업
 
네이버와 카카오는 대한민국 포털 시장을 양분하는 라이벌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콘텐츠 시장으로 넓힐 때 네이버와 카카오는 기성 플랫폼과 매체의 저항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후발주자로서 ‘한 몸’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때로는 협업한다.

9월1일 공개된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연애혁명’이 대표적이다. ‘연애혁명’은 네이버웹툰의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 중 하나다. 카카오TV는 이를 영상화해 공급했고, 공개 2일 만에 누적 조회수 350만 회를 돌파했다. 카카오가 경쟁사 플랫폼인 네이버가 보유한 IP를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라며 "기성 플랫폼과 신생 OTT가 득세하는 시장 속에서 후발주자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언제든 협업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합작품"이라고 평했다.

일단 "출발은 좋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워낙 탄탄한 유통 플랫폼을 가진 ‘공룡’인 터라 기성 플랫폼들과 네이버와 카카오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 시장에서 두 업체가 주도권을 잡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반응이 적잖다. 콘텐츠 제작 중심의 기성 플랫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상파 3사는 이미 OTT 플랫폼 웨이브를 만들며 온라인 시장에 걸맞은 오리지널 콘텐츠을 내놓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유명 콘텐츠인 MBC ‘나 혼자 산다’, tvN ‘신 서유기’와 ‘삼시세끼’,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여은파’, ‘나홀로 이식당’, ‘오늘부터 운동뚱’ 등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지상파 등이 온라인에 최화된 MZ세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자구책을 계속 내놓고 있는 셈이다. 

결국, 하루 빨리 킬러 콘텐츠를 내놓는 것이 관건이다. 지상파 3사 중에서도 후발주자였던 SBS는 ‘귀가시계’라 불렸던 ‘모래시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위상이 달라졌다. tvN와 Mnet은 ‘슈퍼스타 K’ 시리즈로 오디션 시대의 서막을 열며 지상파와 어깨를 견주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TV조선이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잇단 성공으로 트로트 붐을 조성하며 지상파와 케이블채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탄탄한 플랫폼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기억하고 즐겨 찾는 킬러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로운 플랫폼에 접근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재미를 가진 콘텐츠가 네이버와 카카오의 콘텐츠 시장 진출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준호(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