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송은이가 그리는 빅픽처

제작자형 예능인의 새 장을 열다

2020.08.28 페이스북 트위터

송은이, 사진제공=콘텐츠랩 바보


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한, 그래서 더 이상 방송사에서 잘 찾아주지 않는 예능인은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다양한 사례를 봐왔다. 첫 번째는 장르의 변화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던 연예인이 아침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홈쇼핑에도 나온다. 스스로의 값을 낮춰 시류에 적응한다. 두 번째는 직군의 변화다. 새롭게 주업이 될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 주로 요식업이 많다. 대도시 인근에 큰 가게를 열어 장사를 시작하고 그 모습이 가끔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라면 개그우먼 송은이의 지금 입지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는 1993년 KBS 특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데뷔 27년째를 맞고 있다. 하지만 출연 프로그램이 많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SBS ‘불타는 청춘’, JTBC ‘히든싱어’ 시리즈에 분신과도 같은 김숙과 함께 팟캐스트 ‘비밀보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출연작으로 그의 지금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의 대표이기도 하며 이 회사에서 파생된 기획사 미디어랩 시소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셀럽파이브라는 걸그룹의 리더다. 종잡을 수 없지만 송은이의 지금 활동은 여느 또래 예능인들과는 다르다. 그는 ‘제작자형 개그맨’의 새 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개그우먼 시절 송은이는 그렇게 두드러진 적이 없다. 키도 작고 친근한 외모가 있었지만 당대의 유행이었던 과격한 분장이 어울리지도 않았고, 당대 개그우먼에게는 필수적이었던 개성이 강한 외모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콩트를 하더라도 주인공의 친구나 주변인물 만을 맡았다. 방송가의 환경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급변하면서는 일도 줄었다.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에 오랫동안 출연했지만 남성 중심의 버라이어티 판도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그는 그래서 일찌감치 무리해서 일을 찾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방송이 없는 개그우먼, 방송사에서 찾아주지 않는 개그우먼이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벗어나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았다. 물론 기획사를 차린 예능인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 창조의 작업이 콘텐츠에까지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2015년 재미삼아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시작한 송은이의 입지는 빠르게 바뀌었다.

송은이의 콘텐츠가 지상파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연예가중계’ 외에는 나오지 않던 김생민의 캐릭터를 십분 이용한 ‘영수증’은 대박 콘텐츠였다. 지상파에까지 진출하며 영향을 끼쳤다. 스스로의 팟캐스트도 SBS에서 ‘언니네 라디오’로 재탄생했다. 이후에도 ‘밥블레스유’ ‘코인 법률방’ ‘송은이·김숙의 영화보장’ ‘판벌려’ 등 콘텐츠의 향연은 계속됐다.



스스로 제작자가 되자 그는 콘텐츠랩 비보라는 법인까지 만들어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그의 영역은 기존 지상파의 한계를 벗어나 주로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에서 빛을 발했다. 스스로 만든 ‘판벌려’가 유행이 되자 그 안에 출연자로 들어가 같이 하는 개그우먼 김신영, 신봉선, 안영미, 김영희 등과 함께 셀럽파이브라는 걸그룹도 만들었다. 가수까지 제작하게 된 송은이는 최근 김신영의 부캐릭터 ‘둘째이모 김다비’와 신봉선의 부캐릭터 ‘캡사이신’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저 자신의 역할을 지시받고 이를 잘 수행하는 ‘플레이어’형 예능인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콘텐츠의 경계는 없다. 오히려 타고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제작자’형 예능인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잘 나가는 예능인 누구나 스스로 기획자가 되는 유튜브 채널을 소유해야 한다는 점은 송은이가 이런 시류를 반박자 빠르게 이끌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코로나19로 방송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요소요소를 파고드는 그의 작은 기획들은 더욱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거인’ 송은이의 ‘빅픽처’는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