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친근해져 더욱 강해진 '찐' 배우!

'반도'서 강렬한 모성애의 전사 역으로 열연

2020.08.0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NEW



이제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자배우’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았다. 


전국 35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 제작 ㈜레드피터)의 주인공 이정현에게 이제 ‘가수’보다 ‘배우’란 호칭이 더 어울렸다. 오랫동안 불려온 ‘테크노 여전사’란 별명은 본모습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 같은 느낌이 들 정도. 19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으로 혜성같이 등장하며 영화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망주가 아주 먼길을 돌고 돌아 본인의 근원으로 귀환한 것이다.


‘반도’ 개봉 직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현은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 덕분인지 편안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이 강했다.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가 가득했던 10~20대 때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이미 어느 경지를 넘어선 베테랑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좀비가 창궐한 세기말 세상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전사가 돼야만 했던 극중 민정 역할에 아직도 푹 빠져 잇는 이정현은 연상호 감독의 러브콜을 받았던 때의 감회를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연상호 감독이 갑자기 저한테 전화해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으시더라고요. 그러며 ‘영화 한 편 하시죠”라며 ’’부산행‘ 4년 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다’고 말씀하셔서 정말 기뻤어요. 시나리오를 읽어봤는데 예상대로 정말 재미있었어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된 엄마 민정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처음부터 절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씀하셔 더욱 감격했어요. 평범한 주부였던 민정이 모성애를 무기로 전사가 되는 모습이 정말 공감가면서 매력적이었어요. 저라도 그런 상황을 맞으면 그런 전투력이 생길 것 같아요.“


이정현에게 ‘여전사’란 수식어가 가수시절부터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정작 작품 속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전사’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 ‘반도’에 캐스팅된 이후 의욕이 넘쳤던 이정현은 액션 스쿨을 다니며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촬영장에서 써먹을 기회는 없었다. 촬영 전 1년간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이미 모든 장면이 CG(컴퓨터 그래픽)로 완성돼 있었기 때문에 이정현은 블루 스크린 앞에서 컷 별로 연기만 하면 됐다.


“한국 영화 기술력이 이렇게 발전이 됐다는 걸 ‘반도’ 촬영장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기다리며 위험한 액션을 여러 번 찍을 필요가 없었어요. 이미 감독님 머릿속에 모든 그림이 다 있기 때문에 준비된 배경에 맞춰 연기만 하면 됐어요. 효율적으로 짧게 짧게 찍으니 촬영 시간도 예정보다 빨리 끝나 힘들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실사로 찍었으면 엄청 힘들고 다치는 사람도 많았을 거예요. 연상호 감독님은 정말 천재예요. 평소에는 장난꾸러기 같고 재미있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카리스마가 넘치고 통솔력이 엄청나세요. 감독님만 믿고 전 연기만 신경 쓰면 됐어요. 촬영 전 의상도 나름 고민해 빈티지 의상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촬영장 가보니 민정 의상이 이미 준비돼 있더라고요. 시나리오에 묘사된 딱 그 모습이었어요. 준비한 옷들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도로 들고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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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이 연기한 민정은 희망이 없는 일상 속에 갑자기 뛰어든 정석(강동원)을 통해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모든 걸 올인한다. 민정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려는 모습은 영화 후반부 신파 코드를 극대화하기 위한 과장된 장치로 보일 수도 있다. 지난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해 아직 아이가 없는 이정현은 그런 지적에 대해 ‘모성애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민정은 어쩌면 판타지적인 인물일 수 있어요. 그러나 충분히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민정에게 딸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을 거예요. 딸들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 살아야 했고 전사가 된 거죠.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모성애의 위대함은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몰라요. 민정은 정말 수없이 많은 일을 겪었어요. 그런 지옥 같은 삶에 한줄기 희망이 비쳐졌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어요. 잡아야죠.”


‘반도’에서 이정현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톱스타 강동원과 두 딸 이레, 이예원, 선배 권해효 등과 차진 호흡을 선보인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하나의 ‘대안가족’의 느낌을 주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축은 ‘엄마’라는 이름의 민정이다. 이정현은 한 살 동생인 강동원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환한 미소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로서 정말 완벽해요. 액션연기뿐만 감정연기도 정말 완벽하더라고요. 촬영 내내 한 번도 NG를 낸 적이 없어요. 호흡이 진짜 잘 맞아 예상보다 촬영이 항상 빨리 끝났어요. 이레와 예원이와는 촬영장에서 진짜 엄마와 딸처럼 지냈어요. 촬영장에서 엄마 엄마라며 따라다니는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저런 딸이 있다면 나도 민정처럼 강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상시에는 정말 천진난만한 애들인데 촬영 들어가면 완벽히 역할에 빠져들더라고요. 정말 대견했어요.”


이정현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중견 여자배우 중 한 명이다. 현재 문정희 진서연과 스릴러 영화 ‘리미트’를 맹촬영 중인 이정현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수두룩하다는 후문. 너무나도 강렬했던 가수 이미지 때문에 배우로서 긴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던 그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준 가장 큰 은인은 박찬욱 감독. 이정현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 절절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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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술자리에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꽃잎’에서의 연기를 칭찬해주시며 ‘왜 영화를 안하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안하고 싶어서 안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안 불러준다고 말하니 놀라시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단편영화 ’파란만장‘ 출연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 영화 이후 하나씩 일이 들어왔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박감독님이 추천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여우주연상도 받고 현재의 자리에까지 오게 됐죠. 정말 평생의 은인이에요. ’파란만장‘에서 너무 짧게 호흡을 맞췄는데 장편 영화에서 꼭 한번 연출자와 배우로 호흡을 맞추고 싶어요. 작품 제안들은 감사하게도 지난해 결혼 후 많아졌어요. 꼭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은 감독님은 윤가은 감독님이요. 연상호 감독님과도 다시 한 번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드라마도 오랜만에 해보고 싶은데 제안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아요 연락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이정현은 올 봄 KBS2 ‘편스토랑’에서 그동안 숨겨둔 요리실력을 과시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요리를 하면서 주위에 긍정 에너지를 전파하는 이정현의 모습은리스마  넘치는 기존의 이미지를 지우고 친근한 옆집 언니의 느낌을 심어주었다. ‘편스토랑’을 통해 얻은 인기로 최근에는 요리책을 출간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재 영화 촬영 때문에 ‘편스토랑’을 하차했지만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요리를 통해 얻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각오다.


“10대와 20대 때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기쁜 건 너무 기쁘고 힘들 때는 넘 슬펐죠. 30대 때 요리란 취미가 생기면서 내려놓는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요리를 배우면서 힐링되고 마음이 안정됐죠. 그렇게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되니 결혼도 하고 40대를 맞게 됐어요. 주위에 맛있는 걸 요리해 먹이며 행복감을 갖는 건 엄마한테 배운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늘 주위 사람 불러 해먹이는 걸 좋아하셨어요. 전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왜 고생을 사서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이젠 그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게 됐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족들과 맛있는 걸 요리해 나눠 먹을 때예요. 이 기쁨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최재욱기자 jwch69@ize.co.kr

 



CREDIT 글 | 최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