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X코미디', 옷은 바꿔 입었는데 때갈이 안나

2020.07.10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JTBC




방송 프로그램도 크게 보면 하나의 생태계와 같다. 어딘가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수명이 다하면, 또 어디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탄생한다. 프로그램들은 결국 크게 출연자들을 순환시키며 방송계라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21년이 된 코미디프로그램이 끝나자 또 하나의 코미디프로그램이 탄생했다.

JTBC ‘장르만X코미디’는 지난 4일 오후 7시40분 첫 방송됐다. 지난달 26일 KBS2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리고 딱 일주일 만이었다. 어쩌면 새 프로그램의 방송 준비과정을 따진다면 이미 ‘개그콘서트’가 그 수명을 다하기 직전 ‘장르만X코미디’의 생명은 태동했는지 모른다. 이 두 프로그램의 교차는 공개방청 코미디와 영상 위주의 ‘숏폼(Short-Form)’ 코미디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장르만X코미디’의 기획자가 눈에 들어온다. 서수민PD는 1999년 ‘개그콘서트’ 태동 당시 조연출로 이름을 알려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개그콘서트’를 이끈 인물이다. 이후 ‘프로듀사’나 ‘최고의 한 방’ 등으로 코미디와 드라마의 교집합을 찾고 ‘마음의 소리’로 웹툰, ‘김생민의 영수증’으로 경제와 코미디의 접점을 찾던 그는 ‘장르만X코미디’를 통해 본격적으로 ‘하이브리드 코미디쇼’를 지향하고 있다.


더 이상 오랜시간 고안해 무대 위에서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의 형태가 이제 시효가 지났다고 생각한 그는 융합과 ‘숏폼’을 화두로 내세웠다. 장르부터가 다양하다. ‘장르만 코미디-끝보소(끝까지 보면 소름돋는 이야기)’는 미스터리극의 형식을 갖고 있고, ‘장르만X연예인’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다. 그리고 ‘억G&조G’는 아이돌 음악에 ‘병맛문화’를 끼얹었고, ‘찰리의 콘텐츠거래소’는 오디션의 형식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JTBC


프로그램은 저마다 하나의 코너 형태를 띠고 있지만 기반으로 하는 장르는 모두 다르다. 지난 4일 첫 방송에서 긴 시간을 할애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 패러디 ‘쀼의 세계’는 촬영기법이나 구성에 있어 원작에 뒤지지 않는 만듦새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개그콘서트’와 굳이 엮는 이유는 연출자에서만 있지 않다. 첫 회에 나왔던 주역 김준호, 유세윤, 안영미, 김준현, 김기리, 이상훈, 허경환, 김성원, 서태훈, 임우일, 오나미, 김민경 등의 얼굴들은 우리가 모두 ‘개그콘서트’를 통해 친근하게 봐왔던 모습이다. 당장 KBS의 공개 코미디가 없어져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장르만X코미디’는 다음 단계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일종의 피난처이자 도약대와 같다. 

첫회에서 보였던 모습은 확실히 과도기의 느낌이 강하다. 오랜시간 공개 코미디에 길들여져 있던 연기자들의 모습은 아직 영상시대에 걸맞게 자연스러워지지 못했으며 어떤 연기자들은 과거 ‘개그콘서트’를 짜던 연장선상으로 ‘장르만X코미디’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찰리의 콘텐츠거래소’에서 ‘2020 신상짤녀’라 자신을 소개했던 이현정이 보여준 ‘짤’ 개그나 ‘장르만X연예인’에서 이세진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과 맞닿는 부분들은 영상기반의 프로그램이기에 가능했던 시도이기도 했다.
사진제공=JTBC



또한 이미 오랫동안 방송돼 인기를 얻었던 tvN의 ‘SNL’ 시리즈에 대한 기시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무려 김준현과 유세윤이라는 메인 연기자가 이번에도 다시 출연해 정극느낌의 연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코너와 아이디어를 과연 일주일 안에 기획과 구성 그리고 촬영, 편집까지 이뤄낼 수 있을지, 시간과의 싸움도 ‘장르만X코미디’의 앞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여러 지표 중 하나로 생각될 듯하다.

하지만 어떻든 당장 일자리를 잃어버린 지상파의 코미디언들에게 그들의 끼를 발휘할 공간은 최소한으로 마련돼야 한다. 지상파인 KBS에서 포기한 그들의 미래를 종합편성채널로 나중에 개국하고 비교적 최근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여겨지는 JTBC에서 승계한 점은 눈길을 끈다. 과연 그 안에서 다시 기회를 받은 연기자들 그리고 오만석 등 배우로 색다른 모습을 보인 이들이 기존의 웃음공식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야만 ‘장르만X코미디’의 앞날은 보장될 수 있다. 

세상은 변한다. 더불어 방송도 코미디도 변한다. 하지만 지금의 방송 특히 코미디는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한참 뒤처졌던 것도 사실이다. ‘숏폼’ 그리고 ‘하이브리드’를 화두로 한 시도가 코미디언들에게 또 20년의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활시위는 당겨졌다.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