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아인을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존재는?

2020.07.04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UAA



충무로에서 이름 석자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만한 30대 남자 배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연기력과 흥행력을 모두 갖춘 스크린 스타로 꼽혀온 하정우 공유 조인성 등도 이제 모두 불혹을 넘겼다. 이제훈 박정민 강하늘 송중기 박서준 등 30대 배우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췄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면에서 유아인은 현재 충무로에서 30대 배우로서는 드물게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독보적인 존재.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를 오가며 다른 배우들과 비교 불가능한 필모그래피를 완성해가고 있다. 이름만으로 관객들이 눈길을 돌릴 만한 신뢰감을 형성했다. 개봉 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1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철형, 제작 영화사집)도 유아인의 남다른 선구안이 돋보이는 작품. 한국형 좀비물에 재난 스릴러를 덧입힌 이 영화는 장르물 특유의 쾌감에 영화적 재미까지 잡으며 관객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유아인은 브레이크 없이 정신없이 달려가는 영화 속에서 선굵은 연기력과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시킨다. 개봉 직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아인은 튝유의 ‘문학소년’다운 만연체 어법으로 작품을 선택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다소 철학적이며 관념적인 그의 말속에서도 소년다운 섬세함과 천진함이 드러났다. 역시 카리스마 만렙 슈퍼스타가 아닌 '영원한 소년'이다.


“제가 원래 좀비물이나 공포물을 좋아해요. ‘28일후’부터 ‘부산행’ 최근 ‘킹덤’까지 인기 있는 좀비 영화들은 대부분 다 봤어요. 그런데 ‘#살아있다’의 시나리오는 좀 색달랐어요. 오락적인 장르물 특유의 전형성을 따르면서도 배우가 할 일이 많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영화를 끌고 가는 장르적인 힘이 강한데도 인물 내면에 깊숙이 들어간다는 게 신선했어요. 근데 우리 영화는 좀비의 특성을 갖고 있지만 명확히 좀비라고 정의되지는 않아요. 다른 좀비 영화에서처럼 멋있게 싸울 필요가 없어서 좋았어요. 싸울 때 허우적대며 엉성한 면이 매력 있게 다가왔어요. 최근 몇 년간 작품선택 기준이 많이 달라졌어요. 비중이 좀 적으면 어때, 망가지면 어때 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보고 선택하게 됐어요. ‘#살아있다’도 좀더 열린 마음으로 관객들과 재미있게 소통해보고 싶었어요.”


사진제공=UAA


‘#살아있다’에서 유아인은 하루아침에 원인불명의 증세로 통제 불능이 된 도시에서 홀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수 청년 오준우 역할을 맡았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가족은 모두 외출했고 도시는 아비규환인 상황. 영화가 시작하고 40여분 동안 유아인은 홀로 영화를 이끌어가며 무너져 내려가는 준우의 드라마틱한 감정의 변화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관객들이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명불허전’ 연기를 선보인다. 유아인이 "배우로서 할 일이 많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당연히 부담이 됐죠. 40여분간 홀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부분이 흥미로워 영화를 선택했어요. 배우로서 매우 큰 도전인데 편안하게 임하려고 했어요. 적극적으로 캐릭터에 다가가면서 표현에 있어서는 섬세하게 세공하려고 노력했죠. 관객들이 준우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느끼는 게 저에게 큰 숙제였어요. 준우가 저보다 나이 어린 친구 같다고요? (웃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시나리오상에는 몇 살로 언급돼 있지 않으니까요. 편안하고 평범한 옆집 청년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 속에서 준우는 음식과 식수가 떨어져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고 자살을 시도하려 하는데 그때 또 다른 생존자 김유빈(박신혜)이 준우를 막아선다. 두 사람은 각종 도구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삶의 의욕을 되살리고 탈출을 도모한다. 유아인과 박신혜는 아역 때부터 서로 알아온 지인. 이번이 의외로 작품 속에서의 첫 만남이다. 유아인은 비중은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 박신혜의 연기에 대해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영화 초반 중구난방으로 위태롭게 흘러가는데 박신혜가 등장하면서부터 무게감 있게 중심을 딱 잡아주니까 안정감이 생기더라고요. 동생이지만 정말 든든했어요. 의지할 수 있었죠. 신혜는 10대 때 처음 만났는데 의외로 작품에서 만나지지 않더라고요. 언제 한 번 만나 신혜의 한류 인기에 엎혀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고맙게도 우리 영화 출연을 수락해주더라고요. 신혜의 인기에 비하면 작은 역할인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줘 감사한 마음이 커요. 액션 연기도 정말 잘하더라고요. 본인이 몸을 사리지 않고 던지니 저도 더 적극적으로 연기하게 됐어요.”


사진제공=UAA


유아인은 ‘#살아있다’ 개봉을 앞두고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출연을 자청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2003년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한 이후 또래의 연기자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한 계단씩 올라 정상의 자리에 등극한 그의 배우 인생은 도전의 역사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노출해야만 하는 ‘나 혼자 산다’ 출연도 또 다른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유아인은 늘 대중과 소통을 시도해왔다. SNS로 대중과 설전을 벌이는 걸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소통을 중요시했다. 


“‘베테랑’ ‘사도’ 이후 사람들이 저를 두려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더라고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시더라고요. 말 붙이는 것도 조심스러워하시고요. 전 달라진 게 없는데.(웃음) 서운하기보다는 배우로서 제가 풀어야 할 숙제죠.  ‘나 혼자 산다’는 TV를 틀면 나오니까 보게 됐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보게 되더라고요. 유일하게 보는 예능프로그램이에요. 원래 예능을 안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려웠죠. 사실 예전에는 배우 일이나 영화가 뭔가 좀더 특별한 일인 걸로 착각했어요. 그러나 요즘엔 그게 얼마나 좁은 생각인지 깨달았어요. 대중들과 매주 만나서 자신의 몸을 던져 위로와 힐링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됐어요. 그러니 ‘나 혼자 산다’에 참여 안할 이유가 없었어요.”


유아인은 ‘#살아있다’ 이전에 이미 ‘소리도 없이’ 촬영을 마쳤고 하반기에 새 작품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를 캐스팅하고 싶어하는 제작자와 감독들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유아인에게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매개체는 뭘지 궁금해졌다. 도식적인 ‘영화’, ‘작품’, ‘팬’ 등의 대답이 나올지 알았는데 의외의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잠시 고민하다) 사랑하는 사람이요.(호기심 어린 기자의 눈빛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엄마가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최근 5년간 좀 많이 내려놓고 살 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빨리 인정받고 싶고 좋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중심에 서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그러나 이젠 그런 강박관념을 버렸어요. 좀더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살게 됐어요. 막 날 편하게 쓰게 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꼭 인생의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흥행도 걱정되죠. 그러나 현재 국가 상황이 내 입장만 강요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오셨을 때 기대했던 걸 충족시켜주는 작품만 됐으면 좋겠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만한 영화로 평가받으면 만족해요.”

 

최재욱기자 jwch69@ize.co.kr



CREDIT 글 | 최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