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지키려는 선생과, 괴물 학생들의 대결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9월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2020.07.02 페이스북 트위터


'존경하는 엘레나 선셍님'.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엘레나 선생님 댁에 네 명의 학생들이 방문한다. 고깔모자에 꽃다발을 준비한 학생들은 엘레나 선생님의 깜짝 생일 축하를 해준다. 감동받은 선생님과 사랑스런 학생들의 화기애애한 생일 파티는 이내 학생들의 진짜 방문 이유가 밝혀지면서 긴장감 넘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험을 망친 파샤와 비차는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지를 보관한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를 엘레나 세르게예브나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 열쇠를 지키려는 엘레나 선생과, 손에 넣으려는 학생들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로 작품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구소련 시대 가치를 추구하는 구세대의 몰락과 물질적 가치에 경도된 새로운 세대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1981년 소련 정부가 작가인 류드밀라 라주몹스카야에게 청소년을 위한 작품으로 의뢰해 완성된 작품이었으나 체제의 몰락을 그렸다는 이유로 곧바로 공연되지 못했다. 6년 후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으로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제작된 30여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작품이 지닌 시의성은 오히려 성장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더 큰 울림을 준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졸업을 앞두고 낙제를 면해야 하는 비차(최호승, 김효성)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A 성적표가 필요한 파샤(김현준, 오정택), 그리고 좋은 집안의 성공한 남자친구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랄라(김주연, 이아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도덕적 규범은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장 끔찍한 인물은 이들을 지휘하고 조종하는 발로쟈(김도빈 박

정복, 강승호)이다. 엘리트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타고난 머리로 이번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은 발로쟈는 시험지 금고 열쇠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이다. 그가 이 끔찍한 범죄에 참여한 이유는 양심과 도덕을 따르는 엘레나 선생을 무너뜨리고, 이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과 권력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는 선생님을 회유하고, 열등한 비차를 이용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파샤를 움직여 열쇠를 내놓는 일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학교에도 도움이 된다고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그래도 엘레나 선생이 동의하지 않자 학생들을 시켜 엘레나 선생의 몸을 수색하고 집을 뒤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양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패륜적인 행동이 발로쟈에게는 그저 승패를 가르는 게임에 불과할 따름이다.



발로쟈는 끊임없이 방법을 달리하면서 엘리자 선생님에게서 열쇠를 얻어내려고 하지만 선생님의 의지와 도덕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선생으로서의 직업적 환멸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버텨낸다. 마침내 버릇없는 제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 상황을 역전시킨다. 회유와 협박, 동정심 유발과 설득 등 열쇠를 얻기 위해 방법을 달리하는 학생들의 공격과,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를 훈계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방어는 흥미진지하면서도 소름 돋도록 혐오스런 욕망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다. 엘레나 선생님은 열쇠를 지켜낼 수 있을까? 성공을 위해 악마가 되어버린 학생과, 가치를 지키려는 엘레나 선생님의 대결은 끝까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치닫는다.

 

2007년 국내 초연한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올해 다섯 차례 재공연 되는 작품이다. 2017년부터는 객석 사이에 무대를 마련해서 사각의 링을 사이에 두고 관객들이 마주보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올해 공연에는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김태형 연출이 투입되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심리적인 음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괴물이 되어 버린 학생들의 이야기가 음산한 음향에 의해 스릴러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학생과 선생님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열연이 긴장감 넘치는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9월 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박병성(공연 평론가) 



CREDIT 글 | 박병성(공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