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지효, 숨겨둔 포텐 터뜨린 '옆집 언니'

'침입자'서 미스터리한 빌런 역으로 호평 이어져

2020.06.12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주)무비웍스


오랫동안 집을 나갔던 여동생이 돌아온 느낌이라고 할까?


코로나19를 뚫고 흥행 청신호를 켠 영화 ‘침입자’(극본 손원평,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의 주인공 송지효는 기대이상의 열연으로 배우로서 재평가 받고 있다. 송지효는 현재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자들이 탐내는 주연급 연기자지만 10년째 출연 중인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멍지효’ 캐릭터가 대중에게 좀 더 알려진 게 사실. 그러나 ‘침입자’에서 보여준 강렬한 연기와 미친 존재감으로 아직 발굴되지 않은 배우로서 포텐셜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케 해주었다. 단아한 외모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던 데뷔 초반 유망주 송지효가 오랜만에 고향인 스크린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다소 맹하지만 밝고 귀여운 예능 속 ‘멍지효’ 못지않게 다크하면서도 섬세된 감정선이 살아있는 ‘영화배우 송지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영화 ‘침입자’는 아내를 잃고 시름에 빠졌던 서진(김무열)의 삶에 25년 전 실종됐던 동생 유진이 갑자기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그 후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서진이 동생의 비밀을 쫓다 충격적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 송지효는 아무리 까도 까도 새살이 드러나는 양파처럼 수많은 비밀에 둘러싸인 유진 역할을 맡아 끊임없이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하며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송지효에게 ‘침입자’의 대본은 오랜 가뭄 끝에 만난 단비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런닝맨’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높은 인기를 누려도 채워지지 않은 배우로서 갈증이 가슴 속에 내재돼  있었던 것. 그래서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하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대본이라는 걸 감지한 것이다.

 

“별다른 정보나 기대 없이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특히 유진 캐릭터가 욕심이 나더라고요. 이건 꼭 내가 맡아 내 걸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런닝맨’ 때문에 밝은 이미지가 강해 이런 결의 작품을 제안 받는 기회가 최근에 많지 않았어요. 캐릭터적으로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게 배우로서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최근에는 있는 모습 그대로 연기하면 됐지 내가 만들어가야 할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는 적었어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제 연기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시지만 전 제 부족함만 보여요. 영화를 보고나서야 감독님이 진짜 원하시는 유진 캐릭터의 윤곽이 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연기가 많이 아쉬웠어요. 좋게 봐주셔 감사할 따름이에요.”


송지효가 연기한 유진은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 베일에 꽁꽁 싸여 있는 인물. 자식을 잃고 25년 동안 슬픔 속에 살았던 서진의 부모와 서진의 죄책감을 교묘히 건드리며 등장한 그의 정체와 실제 속셈을 추리하는 게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아무리 관객의 미움을 받는 악역이어도 그걸 연기하는 배우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사랑하려 노력해야 하는 게 숙명. 송지효는 유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가 서진의 시점으로 흘라가기 때문에 유진이 매우 얄미워 보일 수 있는 걸 알아요. 그러나 전 유진이 너무 불쌍했어요. 유진의 모습은 매우 단면적으로만 그려지기 때문에 그 속내는 관객들이 알기 힘들어요.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온 세상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에 사고 체계가 다른 거예요. 자기가 알고 누리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거예요. 아쉬운 건 촬영할 때는 유진이 처음으로 가족을 접하고 흔들리는 심리묘사가 있었는데 편집상에서 걸러졌어요. 그 부분이 살아있다면 관객들이 유진을 좀더 이해하고 측은하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유진이 진짜 딸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저도 감독님에게 안 물어봤고요. 물어봐도 안 가르쳐주실 게 뻔하니까요. 딸이어도 비극이고 아니어도 슬프잖아요? 모르는 게 연기를 하는데 편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딸인 적도 있고 딸이려 한 적도 있고. 순간순간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했어요.”


송지효와 영화 속에서 팽팽한 대립각을 이루는 오빠 서진을 연기한 김무열은 사실 한 살 어린 동생. 평소 친분이 없었던 두 사람은 촬영이 시작한 후에도 서로 대립하는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지냈다. 촬영이 끝난 후 오히려 가까워졌다고. 송지효는 김무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열씨는 한 살 동생이지만 오빠 같은 듬직한 면이 있는 친구예요.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좋았어요. 또한 원래 스릴러 영화를 많이 하신 ‘스릴러의 장인’이시잖아요. 기대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 중에는 서로 붙는 장면도 별로 없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어요. 홍보 활동이 시작하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무열씨는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최고의 신랑감이었어요. 와이프를 정말 인간적으로 소중히 대해주더라고요. 얼마나 아끼는지 실감할 수 있었어요. 부럽지 않았냐고요?(웃음) 전 지금 내 자신의 상황에 만족해요. 나이가 많아졌다고 인위적으로 사람을 만나 현재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운명적인 사람이 나타난다면야 모르겠지만 현재 제 상황에 만족하고 정말 행복해요.”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침입자’로 ‘재발견’됐다는 찬사를 받은 만큼 연기자로서 계획이 궁금해졌다. 송지효의 배우로서 저평가된 부분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이제 나이도 불혹을 넘겼고 기회가 한정돼 있으니 예능에서 손을 떼고 연기에 몰두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송지효는 미래를 철저히 계획해 맞춰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물 흐르는 대로 놔두고 지켜보는 사람이다. 연기도 사랑하지만 10년 넘게 가족처럼 지내온 ‘런닝맨’도 그의 삶속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전 현재의 내 모습과 상황에 만족해요. ‘런닝맨’은 저에게 은인 같은 프로그램이에요. 스태프들은 다 가족이고요.  사실 ‘런닝맨’에 출연하기 전에는 제가 내성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였어요. ‘런닝맨’에 출연하면서 밝은 이미지로 바뀌어갔어요. 매회 게스트들이 오는데 제가 낯가리면 그분들이 불편해하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맞춰주려 노력하다보니 성격이 밝게 변하더라고요. 차기작요?  제가 무엇을 막 계획해서 움직이기보다 주어진 것에 충실하는 스타일이에요. 작품선택 기준도 별다른 것 없어요. 저한테 주어진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걸 해요. 다크한 ‘침입자’를 했으니 다음 작품은 밝은 로맨틱코미디예요. 현재 JTBC 드라마 ‘우리, 사랑했을까’를 촬영하고 있어요. 이제 나이도 있으니 로맨틱코미디는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촬영을 하고 있어요.”


송지효도 이제 데뷔한 지 17년차.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타고난 빛나는 미모 때문에 길거리 캐스팅돼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많던 옆집 여동생은 이제 후배들이 친해지고 싶고 기대고 싶은 편안한 ‘옆집 누나’의 이미지를 가진 베테랑이 됐다. “다시 길거리 캐스팅 될 때로 돌아간다 해도 배우 일을 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잠시 고민하다 수줍게 말을 이어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하지 않을까요? 곧바로 '네'라고 대답은 못하겠네요. 끼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표현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돼요. 아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한다고 했을 것 같아요. 연기 일을 안했으면 어땠을까요? 무슨 일이든지 묵묵히 한 우물을 파지 않았을까 해요. 전 그런 사람이니까요.”

 

최재욱 기자 jwch69@ize.co.kr

 



CREDIT 글 | 최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