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멍하게 바라만봐도 묘하게 힐링되는

2020.06.08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tvN



나의 주말, 시작과 끝은 TV프로그램 시청이다. 다양한 미디어가 사랑받는 이 시대, 그렇다. 나는 이다지도 구식이다. 정확하게는 게으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좋은 콘텐츠를 찾고 구독하고, 업로드되길 기다렸다 시간 맞춰 보는…그런 것은 부지런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것을 포기한 나는 그저 리모콘 버튼을 누르면 펼쳐지는 세상에 만족하기로 했다.


주말의 마무리는 ‘구해줘 홈즈’를 보는 것이라고 이미 일전에 쓴 바 있다. 이번에는 시작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슬슬 발동이 걸린다. 이제, 그거 볼 시간이 되어 가는데.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고작 TV 시청하는데 무슨 준비?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즐거운 주말을 시작하는 나만의 룰이다. 맛있는 저녁 겸 안주를 준비하고, 맥주나 와인을 한 잔. 가족이 함께해주면 감사하지만 혼자도 좋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작하길 기다리는 건 바로 tvN의 ‘삼시세끼 어촌편’이다.

 

그런데 사실 이 프로그램은 별 것이 없다. 말 그대로, 하루에 밥 세끼를 해 먹는 것. 두 끼나 한 끼를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 아닌가. 맨 처음 프로그램 제목을 들었을 때 역시 참, 나영석 피디는 독특한 사람이구나 했다. 그런데 이렇게 중독되어 버렸다니, 고약한 심보가 동해 대체 원인이 뭔지, 무엇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끌리는지 곰곰이 따져보기도 했다. 결국 내린 결론은 나의 일상과 달라서였다. 그래서 가장 크게는 부럽고, 그 다음은 따라하고 싶고, 이내 포기하고 그저 마냥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 무인도에서, 해가 뜨면 눈을 뜨고 불을 때 아침을 한다. 설거지를 하고 또 쉬고, 바다가 내어줄 먹을거리를 찾아나선다. 주면 고맙고 안주면 그만, 텃밭에 의지하면 된다. 자연이 주고, 신선한 노동으로 완성한 한 끼. 바람은 얼마나 청명할 것이며 햇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아무 걱정도 할 필요없다. 고기가 안 잡힐까 하는 것밖에. 그런데 참, 그게 가장 큰 걱정이겠지만.

 

아침은 거르거나 대충 때우고, 점심에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며 사는 도시 생활.‘밥’은 그저 때마다 돌아와 해결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일 때가 많다. 제 손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않고 식구들의 끼니까지 챙겨야 하는 이에게는 더 어려운 숙제. 그런데 이 끼니 해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한 끼를 먹는다는 것이 저렇게 큰일이었구나, 그리고 끼니만 생각하면 저렇게 삶이 담백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굴도를 품은 드넓은 바다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 사는 게 별거 있겠니?


사진제공=tvN


거창한 스토리와 화려한 서사로 무장한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서 삼시세끼는 여백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냥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 힐링이 되는. 그런데 여기에 생각할 거리까지 주면 반칙이다. 지지난 주에는“색깔이 없어서” 고민하는 손호준과 오히려 “색깔이 너무 짙어져서 경계한다”는 유해진의 대화가 슬쩍 지나갔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막상 그 색이 정해지고 나면 돌이키기 힘들다. 주목받는 색으로 평생을 사는 것과 묻히는 색으로 평생을 사는 것,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까.

 

그러더니 이번주에는 손님으로 온 이광수에게 “자주 놀러와!”라고 한 한마디에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설흔, 창비)라는, 오래전에 읽은 책 제목이 생각났다. 책 제목처럼 놀러온 것처럼 이 세상에 머물다 가면 좋겠다, 그리고‘멋져서 놀러왔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생각했기에 오래도록 마음에 새겨둔 문구였다. 잠시 섬에 머무는 것, 잠시 이번 생에 머무는 것.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멋지게 만드는 건 오롯이 내 몫이리라….이 프로그램을 보며 고민하는 것은 반칙이므로,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한다. 이렇듯 함정처럼 문득 문득 생각거리가 튀어나오는 것. 그 또한 이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다.

 

(본인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찐’같은(?) 특유의 웃음소리만으로 자신의 색을 확실히 드러내는 손호준을 포함해) 색깔 진한 세 사람이 섬 사람으로 지내는 일상. 고작 풍로 하나로 최고의 신문명을 접한 것처럼 신나 하는 세 사람을 보며 나는 이번 주말에도 심심한 위로를 얻을 것이다.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이사)



CREDIT 글 | 이현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