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종영, 안방극장 코미디 빙하기 길어지나

2020.05.15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KBS


드디어 그날이 와버렸다. 누구나 올 거라고 예상했었고, 최근에는 확신을 넘어 무관심으로 변해버린 그날이다. KBS2 공개 방청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휴식기를 선언했다. 제작진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달라진 방송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 여러가지 이유로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밝혔다.

1999년 9월4일 첫 방송을 한 이후 21년간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제작진은 “잠시 휴식기”라고 표현하지만 그동안 방송사의 그러한 발표에 학습이 돼버린 개그맨과 시청자들에게 이 말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20세기 대한민국 방송 코미디의 한 획을 그었고 전성기를 맞았던 하나의 물줄기가 이제 명백하게 끊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표현을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개그콘서트’는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개그콘서트’가 늘 붙박이처럼 있던 일요일 저녁을 벗어나 지난해 12월 토요일로 자리를 옮기고,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금요일로 자리를 옮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대를 옮긴 이후에도 한 두 달간 2%대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2%라고 하면 예전 같으면 ‘애국가 시청률’이 3%로라고 하며 실패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청률이었다. 대부분의 방송 콘텐츠 시청률 기준이 반 토막 났지만 2% 시청률의 ‘개그콘서트’를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상황이 이렇게 된데 대해서는 수많은 분석이 있어왔다. 프로그램 내부적으로는 더 이상 ‘새 얼굴’이 나오지 않는 스타의 부재, 일주일을 거의 통으로 한 프로그램에 쏟아부어야 하는 구시대적인 비효율적인 제작환경이 꼽히고, 외부적으로는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생겨난 TV를 외면하는 분위기 그리고 촘촘해진 사회적인 시선과 그 속에서 좁아지는 개그맨들의 소재선택, 창의성 한계 등이 꼽힌다. 하지만 여러 말이 필요없이 사람들이 ‘개그콘서트’를 외면했던 이유는 한 마디로 ‘재미가 없어서’였다.

검열로 말하자면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가 더 심했을 거고, TV를 외면하는 시대라고 하기엔 ‘미스터트롯’ 등 아직도 새 지평을 개척하는 프로그램이 있기에 말하기가 겸연쩍다. 결국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완고하게 과거의 가치만을 붙잡고 ‘우리가 아직도 최고’라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개그콘서트’를 만들었다. 프로그램이 재미없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기에는 내부의 혁신 노력이 옹색해 보인다. 결국 시대는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한바탕 웃음으로’ 등 프로그램이 저물었듯 하나의 흐름을 마치고 새 흐름을 찾는 쪽으로 간다고 봐야 한다.

사진제공=KBS


‘개그콘서트’의 실질적인 종영에 따라 이제 지상파 방송사에서 공개 방청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없어졌다. 가장 먼저 MBC ‘개그야’가 2009년 막을 내렸고,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역시 2017년 막을 내렸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역시 막을 내리던 당시에 “잠시 휴지기를 갖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이미 3년이 지났고, SBS가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거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개그, 코미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대 방송사의 온실 밖에서 더욱 많이 움트고 있다. 유튜브 등 채널의 발달로 많은 현역 개그맨 뿐 아니라 개그지망생들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채널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소재가 아직은 편협하고 수위에 있어 조절이 안 돼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공채라는 시스템을 통해 계속 방송가에 새로운 얼굴을 수혈해왔던 주축이었던 ‘개그콘서트’ 종영의 여파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방송가에 영향을 끼칠 것은 명확하다. 당장 무명이나 신인 개그맨들의 살 길이 막막해졌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타사 동료들이 그랬듯 황야같은 벌판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변화의 시기를 맞닥뜨렸다.

‘개그콘서트’ 이후 KBS의 선택에도 관심이 모인다. ‘개그콘서트’의 종영을 굳이 휴식기로 표현했던 것은 그래도 국민 모두의 웃음을 책임지는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에는 하나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책임감의 표현이다. 다른 방송사와는 달리 공채 개그맨에 자부심을 느꼈던 KBS 입장에서 이미 뽑아놓은 개그맨들 그리고 활동 중인 개그맨들을 가지고 또 어떤 방식의 실험을 할지는 앞으로 유심히 지켜봐야 할 사항이다.

21년 전의 결단이 필요하다. 당시 ‘개그콘서트’는 스튜디오 녹화 콩트에 질려있던 대중들에게 대학로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활기찬 콘서트의 형식을 수혈하면서 코미디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개그콘서트’도 그 시작 때는 전유성, 백재현, 김미화 등 선배 몇에 모조리 신인 개그맨들로만 무대를 채우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 지금은 어떨까. 그 형식이 영상이든, 스튜디오든, 야외든 어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21년 전 그 절박함을 다시 떠올리지 않는다면 방송가 코미디 프로그램의 ‘빙하기’는 길어질 수 있다. 지금의 대중들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똑똑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 


CREDIT 글 |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