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바타가 대신해주는 삶 행복할까?

뮤지컬 '차미'가 던지는 시의적절한 질문

2020.05.07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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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객 중 절반 이상이 승차 중 휴대전화를 본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 옆에서 숨 쉬고 호흡하는 사람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 이미지로 존재하는 타인의 삶을 엿본다. 이미 현실은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뒤섞여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현실처럼 생활하는 메타버스(metaverse, meta와 universe의 합성어)의 세계가 실현되고 있다. 뮤지컬 '차미'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뮤지컬이다. 


차미호(유주혜)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부모님에게 생활비도 보태며 살아가는 취준생이다. 그는 찬란하지는 않아도 누구에게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살아가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은 차미호의 자존감을 고사시켜 버렸다. 그동안 모아놓은 근사하고 예쁜 이미지가 우연히 SNS에 게시되면서 삶의 변화가 생긴다. 짝사랑하는 선배 오진혁(문성일)이 SNS에 ‘좋아요’를 눌러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차미호는 온라인상에서 화려하고 빛나는 가짜 차미(@cha_me)의 삶을 즐긴다. 현실의 차미호 앞에 SNS의 가짜 분신인 차미(이봄소리)가 나타난다. 자존감 제로인 현실의 차미호와, 어떤 일이든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이상형인 아바타 차미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인기 많고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패션에 자신감 넘치는 차미는 차미호의 또 다른 자아지만 손쉽게 차미호가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다. 완벽한 존재가 대신 살아준다면 행복할까. 뮤지컬 '차미'는 현실의 나와 SNS 상의 나의 만남이라는 참신하고도 시의적절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작품은 “아무리 찌질하고 불만스러운 존재라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메시지를 향해 진행된다. 예측 가능한 메시지이지만 그 과정이 평이하진 않다. 만화적인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연출은 B급 유머로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준다. 90도로 인사하는 차미호의 등을 가볍게 짚고 넘어가는 짝사랑 선배 오진혁의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매력에 도취된 오진혁은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과 반응으로 작품 내내 즐거움을 준다. 가상의 인물 차미 역시 말이 완벽녀이지 오직 자신감 하나로만 꽉 차 있는 깃털처럼 가벼운 인물이다. B급 정서의 가볍고 과장되며 4차원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들은 마치 웹툰을 보는 듯 극을 즐기게 한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차미호와 그의 완벽한 아바타 차미 사이의 연계성이 거의 없어 메시지가 힘을 잃는다. 완벽한 존재가 대신해 주는 삶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인 만큼 아바타 차미의 삶이 차미호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극에서 보이는 둘의 관계는 거의 남남이다. 취업을 한 것도 카드를 긁으며 화려한 옷을 입은 것도 차미이지 그로 인한 기쁨은 차미호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미호는 차미가 쓴 카드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늘린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존재가 대신해 주는 삶이 행복할까’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아쉬움에도 뮤지컬 '차미'는 장점과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음악에 힘이 있다. 음악이 작품의 색깔에 맞게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극적인 상황에 잘 어울린다. 근래에 나온 창작뮤지컬 중 가장 뮤지컬 어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SNS의 가짜 이미지로 관심을 받고 기뻐하는 넘버 ‘좋아요’나, 현실에 나타난 차미가 당황하는 차미호를 안심시키는 ‘이해해’ 그리고 겹쳐 색칠한 물감에 스크래치를 내어야 진짜 안의 색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작품의 테마곡인 ‘스크래치’ 등 극을 음악의 매력을 살려 표현해낸다.

 

뮤지컬 '차미'는 시의적절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작품이다. 타 장르에 비해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뮤지컬은 동시대적인 고민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금 뮤지컬을 즐기는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를 다룬 '차미'의 등장이 더욱 반갑다.

 

박병성(공연 평론가) 

 



CREDIT 글 | 박병성(공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