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9, 우리가 사랑했던 천재 감독들

2020.04.17 페이스북 트위터

'매트릭스' 스틸. 사진출처=포털 영화 게시판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문화 돌아보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JTBC ‘슈가맨’을 통해 ‘리베카’의 양준일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시대를 앞서갔던 패션과 음악으로 이슈가 됐다. 인터넷 보급이 지금과 같지 않았기에 획일화된 콘텐츠가 아닌 보다 개성 넘치고 다양한 문화를 씹고 맛볼 수 있던 시기였다. 

1999년은 숫자 그대로 세기말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던 때였다. 한 세기의 종식을 앞둔 그때 영화계엔 지금까지 회자될 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트루먼 쇼’가 펼쳐지고 ‘노팅힐’을 넘어 한국엔 100만 관객 영화 ‘쉬리’가 찾아왔다.

또한 새로운 21세기를 찬란히 빛낼 거라 생각했던 4명의 천재 감독이 등장했으니 바로 워쇼스키 형제, M. 나이트 샤말란, 가이 리치, 로베르토 베니니였다. 그때를 기점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 이도 있고, 혹은 '원 히트 원더'로 사라진 감독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 그들의 작품은 천재성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하여 외쳐본다. 응답하라 1999. 우리가 사랑했던 천재 감독들이여.

매트릭스 – 더 워쇼스키

20세기 마지막 해를 장식한 기념비적 작품.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인디스트리얼한 미장센을 가득 담았으니 세기말에 딱 어울리는 영화였다. 워쇼스키 형제(당시는 성전환 이전이었다)가 연출과 각본을 담당했으며,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에 마니아층을 거느린 영화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크리스토퍼 놀란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에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처럼 키보드 배틀의 초석이 됐던 작품이다. 

그만큼 다양한 철학과 종교관, 과학 이론을 갈아 만든 작품이었다. 하여 각 분야 전공의 대학생 혹은 사회인들이 각자의 해석을 만들어 논쟁을 펼쳤다. 어쩌면 이 또한 노림수였다. 영화 초반 네오는 숨겨둘 물건을 한 권의 책 속에 보관한다. 그 책의 이름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책 속의 철학처럼 메시지는 수많은 의미로 복제됐고, 결국 각자의 주장들이 진짜처럼 여겨지며 마니아를 양산해냈다.

영화적으로 많은 것을 남긴 작품이다. ‘매트릭스’만의 스타일리시한 액션은 지금까지도 많은 찬사를 받는다. 특히 네오가 뒤로 몸을 눕혀 탄환을 피하는 슬로 모션신에서 한 장면을 전방위에서 촬영해 360도에서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 폴로모션 기법은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후속인 ‘매트릭스 리로디드’와 ‘매트릭스 레볼루션’ 역시 후대 히어로 영화의 액션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쉽게도 워쇼스키 형제는 이후 워쇼스키 남매, 워쇼스키 자매로 그 호칭이 변하는 동안 ‘매트릭스 트릴로지’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제작을 맡은 ‘브이 포 벤데타’가 호평 받았을 뿐 ‘닌자 어쌔신’과 ‘스피드레이서’는 '폭망'했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주피터 어센딩’ 역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 8’으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았고, ‘매트릭스4’의 제작을 발표해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매트릭스4’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표류중이다.

넷플릭스에서 ‘매트릭스 트릴로지’ 세 편을 포함해 ‘브이 포 벤데타’ ‘센스 8’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식스 센스' 스틸. 사진 출처=포털 영화 게시판


식스센스 – M. 나이트 샤말란

‘유주얼 서스펜스’로 대변됐던 반전의 대명사를 한방에 갈아엎은 작품. 아직까지도 “’식스센스’급 반전”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스포일러’라 하면 요즘 세대에겐 지난해 개봉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떠올리겠으나, 당초 ‘스포일러’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문제로 대두시킨 작품이 ‘식스센스’다. “식스센스’를 보러 가는데 어떤 사람이 버스에서 창밖으로 결말을 크게 외쳤다”라는 사연은 아직까지도 도시전설로 남아있다.

지금 20대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다면 결말이 예상될 수도 있다. 하여 “뻔한 반전”이라며 영화의 매력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반전을 예상할 수 있는 눈을 길러준 것이 바로 ‘식스 센스’다. 1999년 개봉 이후 반전 매력을 앞세우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식스 센스’의 연출을 따라 했고, 오로지 반전만을 위한 영화가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졌다. 반전이 없으면 뭔가 심심한 이야기 같은 강박까지 만들어냈을 정도. 허나 아직까지도 ‘식스 센스’를 넘어서는 반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식스 센스’에서 반전이란 하나의 맥거핀일 뿐이다. 반전이 시사하는 팩트를 영화 앞에 두었다 하더라도 아동 심리학자 말콤(브루스 윌리스)과 소년 콜(할리 조엘 오스몬드)이 엮어내는 성장 스토리의 재미를 다한다. 스릴러 서스펜스의 요소도 강력하다. 다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반전을 선택했고, 그것을 감안하여 모든 부분을 배치하는 연출의 묘를 발휘했다. 실로 천재적인 감각이다. 덕분에 N차 관람을 할수록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득 품고 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식스 센스’ 이후 ‘언브레이커블’ '싸인’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자신만의 색깔이 확고한 감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감독 역시 ‘반전’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여기에 ‘라스트 에어밴더’ ‘애프터 어스’가 혹평 받으며 M. 나이트 샤말란에 대한 평가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이후 ‘언브레이커블’에서 이어지는 ‘23아이덴티티’ ‘글래스’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식스 센스’를 비롯해 ‘언브레이커블’ ‘글래스’ ‘싸인’ ‘레이디 인 더 워터’를 서비스하고 있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틸. 사진 출처=포털 영화 게시판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 가이 리치

가이 리치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 제목이 길고 독특한데 마약을 뜻하는 ‘Lock’과 돈을 뜻하는 ‘Stock’ 그리고 총을 쏜 후 연기를 내고 있는 두 자루의 총신 ‘Two Smoking Barrels’의 의미를 담았다. 영화 전체에서 주인공들이 좇는 중요한 플롯이다. 더불어 ‘lock, stock and barrel’은 ‘모조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조리 하나의 이야기를 위한 중요한 퍼즐이었음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제목이 된다.

영화는 실로 재기 발랄하다. 영화 초반 다섯 집단이 소개된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 집중이 필요하지만, 그 진입장벽만 통과하면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로 인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세피아톤 영상과 리듬 있는 편집, 적절한 배경음악과 영국 런던 서민의 억양인 코크니를 살린 대사 등 날것의 느낌을 가득 담아 거친 코미디를 완성했다.

지금은 최고의 액션배우 중 한명인 제이슨 스타뎀의 연기적 이면을 볼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그의 데뷔작이긴 한데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반전이겠다. 지금은 1967년 생으로 알려진 것과 비교해 보면 이미 데뷔가 꽤 늦었던 셈. 이때 가이 리치와 연을 맺은 제이슨 스타뎀은 이후 ‘스내치’ ‘리볼버’에도 출연한다. 영국의 유명 가수 스팅이 주인공 에디의 아버지 JD로 깜짝 출연한 것도 흥미롭다.

가이 리치의 행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의 천재성은 베니시오 델 토로, 브래드 피트와 함께한 ‘스내치’로도 이어져 ‘가이 리치의 범죄 영화’라는 스타일을 구축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주드 로 주연의 ‘셜록 홈즈’ 시리즈로 스타 감독 반열에 올랐고, ‘알라딘’으로 통해 한국에서도 1000만 감독에 등극했다. 허나 점차 옅어만지는 가이 리치 스타일을 그의 팬들은 우려했는데, 올해 개봉한 ‘젠틀맨’을 통해 그 걱정을 불식시켰다. 다만 코로나19로 해외 성적에 비해 국내 흥행에 참패한 게 아쉬울 뿐이다.

왓챠 플레이에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및 ‘스내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찾아 볼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사진 출처=포털 영화 게시판


인생은 아름다워 – 로베르토 베니니

단 한 작품으로 많은 이의 가슴 속에 인생작 순위를 바꿔놓은 작품이다. 제 5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으며, 제 7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남우주연상과 음악상, 외국어영화상을 가져갔다. 당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로베르토 베니니가 의자 위에 올라 환호하며 앞사람의 의자 위로 뛰어 나가는 모습은 아직도 역대급 세리머니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개봉 당시엔 홀로코스트를 신파로 꾸며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암울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 안에서 그려지는 귀도와 그의 아내 도라, 그리고 아들 조슈에의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데 충분하다. 인류사 최악의 학살 현장이었기에 그 안에서도 부서지지 않았던 부모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렇기에 제목 역시 아이러니의 끝을 보여주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아닐까?

감독과 주연을 모두 로베르토 베니니가 맡았다. 사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천재적인 연출가는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만큼은 그였기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3년간 생활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치료의 일종으로 어린 로베르토 베니니에게 당시 상황을 게임에 비유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내 도라를 연기한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실제 부인이다. 지고지순한 사랑 연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로베르토 베니니의 연출력은 그 뒤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당초 연출보다는 연기에 두각을 드러냈던 인물이고, 이탈리아에 한정된 필모그래피라는 장벽이 있었다. 훗날 ‘피노키오’를 통해 제 23회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각본, 감독, 작품상 등 여러 부문의 후보에 올랐고, 결국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티빙에서 감상할 수 있다.

권구현(칼럼니스트) 


CREDIT 글 |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