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팬보다 더 무서운 건 '탈덕한 팬'!

첸 결혼 발표 둘러싼 팬덤 반발 이유는?

2020.03.1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최근 대중은 또 다른 신조어를 배웠다. 이른바 ‘택배 총공’. ‘총공’은 어느 정도 알려진 표현이다. 아이돌 가수의 팬덤이 지지하는 아이돌 가수가 신곡을 발표했을 때 이를 집중적으로 듣거나 구매해 순위를 끌어올린다는 측면에서 그들의 집단 행동을 ‘총공(격)’이라 부른다.


그런데 택배 총공은 정반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정 아이돌 가수를 향한 지지를 철회하는 의미로 관련 앨범과 MD 등을 훼손한 후 택배에 담아 소속사로 되돌려보내는 형식이다. 이쯤되면 ‘택배 테러’라 불릴 만하다.


‘안티팬보다 변심한 팬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무작정 "싫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안티팬보다, 그동안 일거수일투족을 좇던 팬들이 등을 돌리면 더욱 무섭고 강력한 안티팬으로 돌변한다는 의미다. 팬덤이 아이돌 가수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결혼 발표는 아이돌 가수의 금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이성 교제 사실이 공개되는 것이 연예 활동에 직격탄이 되던 과거와 달리, 팬들이 스타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0∼20대 어린 팬덤이 주류를 이루는 아이돌 가수들의 이성 교제 역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단순한 교제와 결혼은 의미가 달리 읽힌다. 결혼 발표는 여전히 아이돌 가수에게 금기로 여겨진다.


그룹 엑소의 멤버 첸은 지난 1월 결혼 발표와 동시에 혼전 임신 사실을 알리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정상급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결혼 발표도 놀라운데, ‘아빠’라는 타이틀까지 붙게 되며 팬들은 혼란에 빠졌다. "첸을 엑소에서 탈퇴시키라"는 요구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멤버 변동은 없다"고 못박자 팬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성난 팬심으로 불거진 현상이 바로 ‘택배 총공’이다.


택배 총공은 이달 초부터 시작됐다. 첸의 탈퇴를 요구하는 유료 팬클럽 회원으로 구성된 ‘엑소엘 에이스 연합’(EXO-L ACE·이하 엑소엘)은 지난 1, 2월 "첸을 탈퇴시키라"며 두 차례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택배 총공으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엑소엘 회원들은 첸과 관련된 굿즈(goods)를 훼손한 후 이를 상자에 담아 SM엔터테인먼트로 보냈다. 그 택배에는 "김종대(첸의 본명) 탈퇴해", "부재시 SM 후문에 던져주세요", "파손 위험 없음"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택배를 받지 않고 반송하면, 엑소엘 회원들은 택배 회사를 바꿔 다시 보내며 택배 총공을 이어갔다.


심지어 엑소엘 회원들은 첸의 고향인 시흥과 안산을 잇는 일부 버스 노선에 탈퇴를 요구하는 문구를 담은 광고를 진행했다. ‘#우리가_그리는_미래에_CHEN은_없습니다’, ‘그룹 이미지를 훼손하고 팬들의 믿음을 저버린 첸의 퇴출을 요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버스 광고의 경우 시청이나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옥외광고물로 분류돼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옥외광고물법은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등의 우려가 있는 광고 게재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엑소와 같은 소속사에 속한 선배 아이돌 가수인 슈퍼주니어 역시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지난 2014년 멤버 성민이 뮤지컬 배우 김사은과 결혼 후 군입대했다. 이후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성민의 탈퇴를 요구했고, 이후 그의 슈퍼주니어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당시 성민은 "혼자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답이 늦어졌다"며 "슈퍼주니어의 중요한 앨범이 잘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사과했지만 돌아선 팬심을 달래기는 어려웠다.


원조 아이돌 그룹 HOT의 멤버인 문희준 역시 결혼 발표와 함께 된서리를 맞았다. 그는 2017년 걸그룹 크레용팝 소율과의 결혼 과정에서 숱한 팬들의 비판을 샀다. 팬들은 그가 2016년 11월 결혼을 발표하면서 그 상대가 소율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 솔직하지 못했으며, 임신설에 대해서도 무작정 "강경 대응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속도위반’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 등을 꼬집었다. 이 외에도 팬들을 대하는 태도, 무성의한 콘서트 등을 이유로 문희준을 향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팬들이 이처럼 결혼에 특히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팬을 기만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가수들은 평소 방송 활동 뿐만 아니라 콘서트장에서도 얼굴을 맞대는 팬들에게 애인처럼 살갑게 대한다. 직접적인 일대일 만남을 갖지만 않을 뿐, 이건 연인이 나누는 감정 이상이다. 이런 감정이 없다면 팬들도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며 ‘팬질’을 할 이유가 없다.


단순 교제의 경우, 헤어진 후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결혼은 불가역적인 상황이라 보는 것이다. 한 여성과 결혼 후 가정을 꾸린 아이돌 가수들이 팬들을 향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는 것에서 팬들은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숱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그 과정을 비밀로 하고 팬들에게는 일관된 사랑을 맹세해온 역시 거짓이었다고 판단한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대단하다.


또 다른 이유는 ‘그룹의 존속’을 위해서다. 엑소엘 회원들은 엑소에 대한 지지 철회가 아니라 첸의 탈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부남 멤버가 있는 엑소’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전히 발매하는 앨범을 100만 장 넘게 팔아치우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엑소에 유부남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을 반대하는 팬들은 첸의 탈퇴 후 재정비한 엑소를 원하는 것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맹목적으로 좇던 과거의 팬과는 다른 개념"이라며 "팬덤이 스스로 특정 그룹을 신인 시절부터 지지하며 함께 ‘키워왔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멤버 몇몇으로 인해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애착이 더 강하고, 그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성명 발표를 넘어 택배 총공과 같은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팬덤 없이는 아이돌도 없다?


아이돌 가수가 없다면 그들을 좋아하는 팬덤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팬덤이 없으면 아이돌 가수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팬덤은 아이돌 그룹을 존속시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가요계를 돌아보자. 김수희의 ‘애모’와 서태지와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KBS 2TV ‘가요톱텐’에서 1위를 놓고 다퉜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요즘 가요계를 보자. 중장년층의 아이돌로 자리매김한 진성의 ‘안동 역에서’가 방탄소년단의 ‘ON’과 KBS 2TV ‘뮤직뱅크’에서 정상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 가능할까?


앞서 김수희와 서태지와아이들이 함께 활동하던 때는 ‘대중가요’의 시대였다. 대중가요란 불특정 다수인 대중이 모두 그 멜로디를 알고 읊조릴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이다. ‘애모’의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난 알아요’의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이라는 첫 소절은 누구에게나 익숙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한국을 넘어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이 시점에 중장년층에게 ‘ON’의 첫 소절을 불러보라고 하면 과연 부를 수 있을까? 나잇대를 낮춰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가 아닌 10∼30대 중에서도 ‘ON’의 첫 소절을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결국 ‘대중가요’와 ‘K-팝’은 다르다. 불특정 다수가 즐기는 노래가 대중가요라면, K-팝은 철저하게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모든 사람이 그 노래를 아는 것은 아니어도, 앨범을 사고 콘서트에 오고 굿즈를 구입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팬덤 수만∼수십 만 명만 있는 K-팝 가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강한 생명력을 얻는다. 그 생명의 젖줄이 바로 팬덤의 사랑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던져보자. 팬덤이 스타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K-팝 가수로서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드림콘서트’와 같이 K-팝 아이돌 그룹이 대거 출연하는 콘서트장에 가면, 객석 구역 별로 팬덤이 형성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추종하는 그룹의 멤버와 열애설이 불거졌던 걸그룹이나 라이벌 그룹이 노래를 부를 때면 특정 구역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팬덤 간의 응원전이다. 여기서 압도적으로 많은 팬덤을 보유한 그룹이 그 시기를 주름잡는 최고 스타다. 반대로 객석에서 아무 반응이 없는 아이돌 가수를 상상해보라. 존재 가치가 퇴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팬들 내부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첸의 경우도 엑소엘 회원 중 일부는 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엑소에 남길 원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팬매니저는 "팬들은 이런 상황조차 싫어한다. 팬들이 하나로 단결돼 응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특정 멤버의 거취에 대해 팬덤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이라며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논쟁의 단초가 된 멤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팬덤 내부에서 더 확산된다. 그리고 K-팝을 기반으로 한 아이돌 그룹이 팬덤에 뿌리를 대고 성장한 것을 고려할 때, 팬덤이 등을 돌린다는 것은 더 이상 그룹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상징적인 단면"이라고 말했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