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포스트 봉준호'의 의미는?

시스템의 인내심이 관건

2020.03.10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A.M.P.A.S.®,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예상치 못했던 작품상 수상에 다양한 분석이 등장했고, 여기엔 트럼프의 ‘디스’도 이어졌다. 감독상 수상 때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에피소드는 진정 훈훈했지만, 작품상 무대의 ‘갑툭튀’였던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생가를 복원하고 동상을 세운다는 정치권의 ‘오버’에 감독은 “죽은 다음에 해달라”고 ‘쿨’하게 답했다. 감독이나 배우 못지않게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도 주목 받았다. 이른바 ‘봉하이브’의 시대. 봉준호는 한 명의 영화감독을 넘어, 현재 세계 영화계 최고의 셀럽이 되었으며, 한국영화계는 그를 심각한 화두로 끌어안게 되었다.


한동안 들끓던 ‘봉준호 신드롬’은 결국 ‘포스트 봉준호’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일단 ‘포스트 봉준호법’(가칭)에 대한 영화인들의 온라인 서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그 내용이 봉준호 감독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다고 보긴 힘들다. 대기업이 영화의 배급업과 극장업을 겸하는 걸 제한하고, 한 편의 영화가 개봉관을 지나치게 가져가는 걸 금지하고,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법의 골자다. 10여 년 전부터 영화계가 요구했던,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익숙한 내용이다. 여기에 굳이 ‘봉준호’라는 이름을 결합시킨 건, 향후 봉준호 같은 뛰어난 감독이 나오려면 영화계의 구조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듯하다. 다소 무리는 있지만, 일견 타당한 작명법이다.


그런데 걸리는 건 ‘포스트’ 봉준호, 즉 봉준호 ‘이후’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뭔가 착각하게 만든다. 마치 봉준호를 계기로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대론'의 관점에서 볼 때 봉준호는 큰형보다는 막내에 가깝다. 그는 새로운 세대를 이끌 리더 혹은 견인차보다는, 2000년 이후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 주목받았던 감독들 중 마지막 지점이다.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그리고 (이젠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거북해진) 김기덕 등의 감독들이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유럽의 영화제에서 거둔 성과는 괄목할 만했다. 그리고 김지운과 박찬욱은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러한 '형들'의 성과를 봉준호 감독은 이어받았으며,' 기생충'이라는 결정타로 집대성한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스트 봉준호' 세대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시작했던 르네상스 시기와 비교할 때 상황이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회’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로 흥행 실패를 맛보았지만 봉준호에겐 '살인의 추억'(2003)이라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만들 당시 박찬욱은 두 편의 실패작이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독립 제작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만, 홍상수 감독은 데뷔작을 포함해 10년 가까이 충무로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봉준호 세대’의 시스템은 지금과 비교할 때 좀 더 용기가 있었던 셈이다. 당대 시스템의 이러한 포용성이 없었다면, 류승완 감독 같은 입지전적 사례는 없었을 것이며, 현장 경험 전무했던 김지운 감독이 데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포스트 봉준호법’이 통과된다 해도, ‘제2의 봉준호’가 금방 나오긴 힘들 것이다.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이라도, 그의 성공을 좌우하는 건 시스템의 인내심이다.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현재 우리의 시스템은 적잖은 수리와 보수가 필요하다. 오히려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일으킨 신드롬은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 세계 영화산업의 심장부에서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국제영화상뿐만 아니라 각본상과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거머쥔 '기생충'의 혁명은, 비영어권의 열혈 영화인들에겐 거대한 복음이 될 것이다.


어쩌면 ‘포스트 봉준호’는 한국이라는 로컬이 아닌 글로벌한 현상이 될 것이며, 봉준호가 1인치 더 넓혀 놓은 문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효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와 방향으로 전개될지도 모른다.


김형석(영화 평론가)

 



CREDIT 글 | 김형석(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