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이 선을 넘지 않았다면…

2020.03.09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제공=쇼박스


전 생애를 거쳐 이리 힘든 인간을 또 만날까 싶다. ‘그 힘든 인간’을 연구하는데 딱 12년을 바쳤다. 그런데 일은 더 꼬이고, 난 이 인간을 더 모르겠다. 수학미적분보다 더 어렵고, 코로나19보다 더 무섭고 해결책이 없다. 사랑하는 남자냐고? 맞다. 연인이냐고? 아니다. 그는 고작 13살이다. 나의 아들이다.

 

중년여자인 나에게 사춘기 남자는 절대적인 불통의 상대. 내가 보기에 아들은 좀비 같고 반인반수 같고 아침에 정신이 나갔다가 밤에 살짝 돌아오는 치매 환자 같다. 한마디로 심히 감당하기 힘든 부담스런 존재다. 난 원래 인간들을 상대하기 참으로 힘겨워했다. 그래서 혼자 글을 쓰는 직업을 택했다. 그런데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을 만났다. 인간에게 가장 힘든 건, 사회와 정치와 역사가 아니다. 바로 내 코앞에 있는 인간과의 작고 작은, 말하기도 창피하고 치사한 정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젬스톤픽처스)을 보며 참으로 이병헌의 내면연기에 공감했다. 아들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 영화 속 박통(이성민)을 바라보는 김규평(이병헌)의 심정이었으니까…. “각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요!!!” 하고 총으로 머리통을 겨눌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쏴!!!”

     

 ‘남산의 부장들’은 그 전에 책으로 만났다. 김충식이라는 전직 동아일보 기자가 신문에 2년 2개월 동안 연재한 글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가 벌인 정치공작과 비화에 관한 내용이다. 정치에 ‘ㅈ’도 관심이 없는 내가 봐도 꽤나 사실적이고 디테일하며 구체적이고 극적이었다. 책은 878페이지의 아주 두꺼운 책인데, 영화는 그 중 10.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사건을 중심으로 네 인물들의 ‘작은 정치’를 파고 든 스토리였다.

 

그 네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죽인 김재규, 그리고 라이벌 관계였던 차지철,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리고 각 인물들은 다 가명으로 등장했다. 영화는 김재규를 기반으로 한 김규평 캐릭터의 심리묘사에 가장 중점을 두고 스토리를 진행해 간다. 그래서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도 쉽게, 그리고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10.26  박정희 대통령 서거 사건은 누구나 다 아는 사건이다. 영화에서도 특별히 새로운 스토리는 없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김규평을 연기하는 이병헌의 내면연기와, 우리가 알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의 대단한 카리스마보다는, 우울함과 두려움에 절은 모습으로 형상화한 이성민의 연기였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참 여러 가지로 엇갈린다. 그를 독재자라고 욕하는 사람들, 나는 그가 죽은 후 듣는 좋은 말, 나쁜 말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영화적으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남산의 부장들’이 재미있게 다가왔던 점은 그 안의 네 명의 정치인들에게 공통된 코드가 ‘실패’란 사실이다.

 

실패의 원인은 모두 똑같았다. ‘과욕’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은 것’. 박대통령부터 김재규, 김형욱까지 이기적인 욕망 말고, 진짜 나라와 정치를 위해 현명하게 사용했더라면, 지금 다른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면서 꽤나 위로를 받았다. 인간은 대부분 ‘정치’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정치를 잘 하지 못하게 디자인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지구의 모든 종 중에서 제일 욕망이 센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이성과 감정을 넘어서면 모두 ‘정치’에서 진다. 근데 욕망이란 놈은 본래 이성과 감정으로 다스릴 수 없는 좀비 같은 놈이다. 그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작은 정치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답은 너무 뻔하고 쉽다. 욕망을 최대한 누르고,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상대를 최대한 멀리 놓고 유유자적 바라봐야 상대가 바로 보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상대가 제대로 보이면 ‘정치’에 질 리가 없다. 욕망과 감정이 가득 찬 채로 아주 가까이서 상대를 보면 늘 착각과 ‘삑사리’의 연속이다. 근데 답은 너무 뻔하고 쉬운데 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닌 말로 ‘날 내려놓으라’는 것 아닌가? 인간이 내려놓지 못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고 동물들을 지배해 온 건데. 인간이 욕망을 잘 누르고 잘 내려놓는 동물이었다면, 지금쯤 사자나 호랑이 혹은 외계인이 지구를 지배하고, 우리는 동물원 우리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흥하게 한 것도 인간의 욕망. 망하게 한 것도 인간의 욕망.

 

어떻게 해야 ‘남산의 부장들’의 네 인물들처럼 선을 넘어 불행해지지 않게, 중심을 잘 잡으며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게(혹은 사람) 정말 좋을 때, 너무 싫을 때, 한 번씩 내 뇌에 ‘잠깐’하고 브레이크를 걸어서 한 번 돌아봐야겠다. 그리고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땐 쉬면서 천천히 가야겠다. 그럼, 죽진 않겠지.


고윤희(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CREDIT 글 | 고윤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