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후보 없는 0% 시청률 순위 프로라니!

권위잃은 지상파 가요순위프로 의미있나?

2020.03.06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출처=방송캡처


1위. 영광스러운 자리다. 어떤 분야에서나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특히 승자 독식 구조인 연예계에서 ‘1위’라는 수식어가 주는 상징성과 수익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2월 초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팀이 감격에 겨워 트로피를 들고 포효하며 감동적인 소감을 내놓은 것을 비롯해, 방탄소년단은 세계 3대 음악시상식으로 불리는 빌보드뮤직어워즈, 아메리칸뮤직어워즈, 그래미어워즈에 초청받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라 칭송받는다.


그 저변에는 ‘권위’가 깔려 있다. 순위를 매기고, 상을 주는 주체의 권위가 핵심이다. 칸국제영화제, 아카데미, 빌보드, 그래미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권위가 없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는다. 권위가 없는 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다. 이제 한국으로 눈을 돌리자.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때다.

 

#"방송 출연 없이 1위를 차지했다"


2월 말 기준 지상파 3사 대표 음악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2월21일 방송된 KBS 2TV ‘뮤직뱅크’에서는 지코의 ‘아무노래’와 레드벨벳의 ‘싸이코’가 1위를 두고 다퉜다. 1위는 지코였다. 다음날 방송된 MBC ‘쇼 음악중심’에서도 지코는 레드벨벳의 ‘사이코’, 창모의 ‘Meteor’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3일 전파를 탄 SBS ‘인기가요’에서는 노을의 ‘늦은 밤 너의 집 앞 골목길에서’, 백예린의 ‘스퀘어’, 여자친구의 ‘교차로’가 자웅을 겨뤘고, 노을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 프로그램에 모두 트로피의 주인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1위 후보 중에서도 여자친구만 유일하게 참석했다. 다. 그리고 관련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포함된다. "방송 출연 없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놀랍지 않다. 1위 후보가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은 다반사다. 팬들도 익숙하고, 언론사도 무감각해졌다. 그러나 시계를 20여년 전으로 돌려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요즘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며 사랑받는 KBS ‘가요톱텐’에서는 1위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보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5주 연속 1위에 올라 ‘골든컵’을 받으면 아주 명예롭게 차트를 떠나기도 했다. 대중이 손꼽아 기다리던 스타부터 ‘타타타’의 김국환이나 중절모 패션으로 유명한 ‘당신’의 김정수 등이 오랜 무명을 딛고 1위에 올랐을 때 흘리던 뜨거운 눈물은 대중의 마음을 데웠다.


그때는 방송사의 순위 프로그램에서 주는 상의 권위가 있었고, 낭만이 흘렀다. 또한 인기를 얻어 1위에 오른 후 연말 ‘10대 가요제’에 참가한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남녀노소 누구나 알 만한 이들이었고,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연말 가요제는 아이돌 가수 일색이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니, 이를 탓하거나 폄훼 할 순 없다. 그러나 1위에 올라도 굳이 이 트로피를 받으러 오지 않는 가수, 그리고 이토록 권위없는 상의 주인이 된 방송국의 모습을 보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0% 시청률, 왜 권위를 잃었나?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월 21일 ‘뮤직뱅크’의 전국시청률은 0.6%. 올해 들어 내내 이날까지 내내 0%였다. ‘쇼 음악중심’(0.7%)과 ‘인기가요’(0.8%)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프로그램 모두 0%대 시청률 행진을 이어온 지 꽤 오래됐다.


그런데 2월말~3월초 방송 분량의 시청률은 껑충 뛰었다. ‘뮤직뱅크’와 ‘쇼 음악중심’은 각각 1.1%와 1.0%를 기록했고, ‘인기가요’는 1.7%였다. 올해 최고 시청률이다. 하지만 이를 내세워 ‘0%대 시청률’을 부인한다면 더욱 초라해진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컴백 효과였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라는 한 팀이 끌어올릴 수 있는 시청률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평소 지상파 3사 순위 프로그램의 영향력과 정체성은 더욱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이 권위를 잃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일단 순위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SBSMTV ‘더 쇼’(화요일), MBC에브리원 ‘쇼 챔피언’(수요일), Mnet ‘엠카운트다운’(목요일)까지 고려하면, 일주일 내내 ‘1위 가수’가 나오는 셈이다. 또한 각종 음원사이트에서는 실시간, 주간, 월간 단위로 순위를 알려준다. 포털 사이트에서 ‘1위 가수’를 검색하면 중구난방이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상의 가치와 권위가 떨어지며 하향평준화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이 후속 프로그램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취급 받는 건 자존심이 상할 법하다. 하지만 이는 방송사 스스로 만든 결과물이다. 10∼20대 팬덤을 기반으로 한 아이돌 가수들 중심으로 출연진을 꾸리며 중장년 시청층이 이탈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KBS 1TV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이 여전히 10%대 시청률을 구가하는 것을 고려할 때, 그들을 배척한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 하락은 명약관화였다.

 

정작 아이돌 가수를 좇는 10∼20대는 좀처럼 TV 앞에 앉지 않는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VOD 서비스나 하이라이트 ‘짤’을 선호한다. 여전히 ‘시청률 우선주의’를 택하면서도 시청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등진 방송사가 받아볼 수밖에 없는 성적표였던 셈이다.

 

#고개숙인 지상파, 필연인가?


지상파 방송사만 탓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다채널 시대와 플랫폼의 다변화로 인해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과 권위 하락은 필연이었다는 분석도 많다.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은 이미 지상파 못지않은 수준의 콘텐츠로 어깨를 견주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를 앞세운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의 성장은 지상파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명도 높은 가수들은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들은 신곡을 내며 아예 "별도의 활동은 없다"고 못박기도 한다. "출연 안 하니 섭외 요청도 말라"고 전제를 까는 식이다. 하지만 예능 출연 등의 활동만 없을 뿐, 그들은 소속사에서 제작한 영상에 등장하고 SNS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도 소통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신곡을 홍보한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TV 출연 외에는 대중에게 신곡을 알리고 활동 모습을 보여줄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숱한 플랫폼을 통해 홍보하는 세상이 열렸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반면 수익성은 낮은 TV 출연에 목매지 않는 이유"라며 "또한 0% 시청률이 나오는 프로그램보다 조회수 수십∼수백만 건이 나오는 온라인 동영상을 만드는 것이 더 홍보 효과가 높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상파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특정 팬덤이 아니라 대중 전반의 사랑을 받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TV를 통해 도약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런 폭넓은 유통망을 가진 전파를 활용해 특정 연령층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을 만족시킬 만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33%가 넘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한 TV조선 ‘미스터트롯’이 좋은 예다. 트로트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모두를 트로트로 대동단결시켰다. ‘뮤직뱅크’와 ‘쇼 음악중심’의 1위 가수는 몰라도, ‘미스터트롯’의 중간 평가에서 임영웅, 영탁 등이 1위에 올랐다는 것은 대중이 아는 세상이 됐다. ‘미스터트롯’이 TV라는 전국구 매개체를 통해 방송되지 않았다면 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음을 고려했을 때, 향후 지상파를 포함해 TV를 기반으로 한 방송사들의 가야 할 길이 보다 명료해진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CREDIT 글 | 윤준호(칼럼니스트)